공룡시대 바다 괴수의 이빨이 오징어·문어 낳았다

조홍섭 2017. 0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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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룡·상어 등 새 포식자 대응 패각 버리고 민첩한 형태로 진화
패각 고집한 암모나이트는 멸종…오징어, 문어 특별한 이유 밝혀져

Jonathan Jackson and Zoë Hughes, NHMUK.jpg » 완벽하게 보존된 1억 6600만년 전의 오징어 조상 화석. 멸종한 이 오징어의 몸속에는 골격이 있었고 현재의 오징어보다 느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Jonathan Jackson and Zoë Hughes, NHMUK

머리와 다리가 붙어있다 해서 ‘두족류’라고 불리는 오징어와 문어, 갑오징어 등은 그런 체형 말고도 여러 가지 점에서 특이한 동물이다. 피부의 무늬와 색깔을 자유자재로 바꾸어 위장하거나 동료와 의사소통을 하고, 접근하는 포식자에게 먹물을 뿜어 도망칠 시간을 얻는 행동은 다른 동물에서 보기 힘들다. 물을 제트 분사해 빠른 속도로 이동해 포식자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무척추동물로서 두뇌가 발달하지 않았으면서도 학습능력이 뛰어나 비슷한 크기의 포유동물 수준의 지적 능력을 보이는 점도 두드러진다. 특히 문어는 장난을 즐기고 사람 얼굴을 알아보는 능력도 있다(■ 관련 기사: 개와 문어 누구 머리가 좋을까).

open cage.jpg » 무척추동물이지만 문어는 같은 크기의 포유동물에 견줄 만한 지적 능력을 보인다. open cage

연체동물이면서 조개나 고둥처럼 단단한 패각으로 몸을 보호하지 않는 점도 특이하다. 느릿느릿한 다른 연체동물과 달리 동작이 빠른 것도 다르다. 오징어는 중형 포식자로서 바다에서 물고기와 당당하게 겨룰 만한 생태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2015년 과학저널 <네이처>에 문어의 유전체(게놈)를 발표한 과학자들은 다른 연체동물이나 무척추동물과 유전자가 너무 달라 ‘외계인’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문어가 외계에서 온 생물이란 뜻은 아니며 너무 특이해 이런 농담을 했다고 연구자들이 밝히긴 했다.

Hans Hillewaert_800px-Loligo_vulgaris.jpg » 오징어는 단단한 패각을 벗고 재빠르게 행동하는 변신을 통해 물고기와 견줄 만한 바다생태계의 중형 포식자로 성공했다. Hans Hillewaert

그렇다면 오징어와 문어는 동료 연체동물과 언제,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이런 궁금증을 푸는데 어려움은 이들이 딱딱한 뼈나 패각이 거의 없어 좀처럼 화석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런데 분자생물학적 방법으로 이런 한계를 넘어선 연구결과가 나와 눈길을 끈다.

앨러스테어 태너 영국 브리스톨대 박사과정생 등 국제연구진은 과학저널 <왕립학회보 비>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두족류 26종을 대상으로 유전자를 분석해 이들이 언제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알아본 결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오징어와 낙지가 중생대 중·후반에 급속히 다양하게 분화한 것이다.

MCDinosaurhunter _Platecarpus_planifrons_Clean.jpg » 연체류의 단단한 패각 보호를 무력화시킬 날카로운 이로 무장한 새로운 바다 파충류 모사사우루스의 일종. MCDinosaurhunter 위키미디어 코먼스

중생대 쥐라기에서 백악기에 걸친 약 1억~1억6천만 년 전 사이 육상은 공룡 시대가 펼쳐졌다. 육지에서 공룡의 지배가 지루하게 이어지는 동안 중생대의 바다에선 ‘중생대 해양 혁명’으로 불리는 커다란 격변이 진행되고 있었다.

고생대 동안 바다 밑에는 다양한 생물이 진화해 살고 있었다. 암모나이트나 원시 오징어인 벨렘나이트처럼 패각으로 몸을 감싼 연체동물이 많았다.
그런데 중생대 들어 이런 바다 생물을 위협하는 새로운 포식자가 출현하기 시작했다. 맷돌 같은 이로 패각을 으스러뜨리거나 날카로운 이로 구멍을 뚫을 수 있는 바다 파충류가 잇따라 등장한 것이다.

800px-Macroplacus_raeticus.JPG » 두터운 패각을 으스러뜨릴 맷돌 같은 이를 갖춘 새로운 바다 파충류 플라코돈트의 일종. 위키미디어 코먼스

플라코돈트, 옴팔로사우루스, 모사사우르스, 어룡 등의 해양 파충류와 원시 상어가 새로운 포식자였다. 턱이 단단한 어류와 새로 진화한 두족류도 낡은 디자인의 연체동물을 먹이로 삼았다. 달라진 포식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동물은 멸종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Dmitry Bogdanov_Omphalosaurus-s.jpg » 중생대 새로 등장한 해양 파충류 옴팔로사우루스의 일종 상상도. Dmitry Bogdanov 위키미디어 코먼스

Petter Bøckman_Omphalosaurus-s.jpg » 단단한 패각을 으스러뜨기에 적합하게 진화한 옴팔로사우루스의 이 모습. Petter Bøckman 위키미디어 코먼스

Dmitry Bogdanov_Tylosaurus_pembinensis_모사.jpg » 강력한 이를 지닌 중생대 해양 파충류 모사사우루스의 일종. Dmitry Bogdanov 위키미디어 코먼스

FunkMonk_Mosasaurus-s.jpg » 모사사우루스의 이 화석. FunkMonk 위키미디어 코먼스

고생대 데본기부터 3억년 이상 바다를 지배해 온 암모나이트도 같은 운명에 놓였다. 중생대 백악기에 이르면 암모나이트의 패각에는 복잡한 장식이 늘어나 새 포식자에 대응하려 애쓴 모습을 보여준다. 또 공격받아 껍질에 난 손상을 수선한 흔적도 자주 드러난다. 중생대와 함께 지구에서 자취를 감춘 암모나이트의 마지막 몸부림 흔적이다.

Hectonichus _Placenticeratidae_-_Placenticeras_whitfieldi-s.jpg » 모사사우루스의 이에 물린 것으로 보이는 암모나이트 화석. 위키미디어 코먼스

주 저자인 태너는 “공룡시대 바다에서 오징어와 물고기 그리고 그들의 포식자는 진화의 ‘군비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 결과 포식자와 그 먹이는 점점 더 빠르고 잽싼 방향으로 진화했다”며 “우리가 현재 보는 두족류도 이런 큰 변화를 겪으면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껍질을 잃고 역동적이며 독특하게 적응한 해양 동물로 진화해 갔다”라고 브리스톨대 보도 자료에서 말했다.

연구자들은 오징어류는 중생대 백악기에 급속하게 분화했고 문어류는 이보다 뒤인 백악기에 주로 분화했는데, 둘 다 독립적으로 딱딱한 패각이 줄어드는 쪽으로 진화했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문어는 연체류의 보호 뼈대를 완전히 버린 쪽으로 바뀌었지만, 오징어는 그것이 몸 안쪽으로 들어가 빠른 유영을 할 때 몸을 지탱하는 쪽으로 진화했다.

연구자들은 “중생대 해양 혁명이 고생대 바다 동물을 우리에게 익숙한 신생대 바다 동물로 바꾸는 구실을 했다. 속도가 수동적 방어를 압도했다”라고 논문에서 적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Tanner AR et al. 2017 Molecular clocks indicate turnover and diversification of modern coleoid cephalopods during the Mesozoic Marine Revolution. Proc. R. Soc. B 284: 20162818. http://dx.doi.org/10.1098/rspb.2016.2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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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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