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 먹는 나방 애벌레, 플라스틱 공해 해결할까

조홍섭 2017. 04. 25
조회수 24391 추천수 0
벌통 밀랍 먹는 꿀벌문패명나방 애벌레, 성분 비슷한 비닐봉지도 '냠냠'
생분해 세균보다 40배 이상 속도, 효소 추출·대량생산이 다음 단계

p2_César Hernández_CSIC2.jpg » 비닐봉지를 먹어치우는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 봉지에 10마리를 넣고 30분 지났을 때 모습이다. César Hernández, CSIC

취미로 꿀벌을 기르는 어느 아마추어 양봉가가 벌통에서 기생충을 잡아 비닐봉지에 담았다. 이튿날 보니 비닐봉지는 여기저기 구멍이 나 누더기가 돼 있었다. 애벌레가 플라스틱을 먹이로 갉아먹은 것이다.

영국과 스페인 연구자들은 이 우연한 발견을 지나치지 않았다. 애벌레의 정체를 알아보니 꿀벌부채명나방이었다. 이 나방은 꿀벌이나 말벌 벌통 안에 알을 낳는데,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벌집의 밀랍을 먹고 자란다.

00502441_20160919.JPG » 포장재로 널리 쓰이는 폴리에틸렌 재질의 비닐봉지는 대표적인 플라스틱 환경오염을 일으킨다. 매립장에 묻혀도 잘 분해되지 않고 바다로 흘러가 생물에 해를 끼친다. 소각장에서 태우면 해로운 부산물이 나온다. 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애벌레가 먹어치운 봉지의 재질은 폴리에틸렌으로, 포장재로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플라스틱이다. 석유로 만드는 이 플라스틱은 가볍고 질겨 포장재로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환경 속에서 분해가 되지 않아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킨다.

세계적으로 해마다 1조개의 폴리에틸렌 재질 비닐봉지가 쓰인다. 환경에 버려진 비닐봉지는  쓰레기 매립지에 묻혀 토양을 질식시키거나 바다로 떠내려가 환경오염의 원인이 된다.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가 이 세계적인 플라스틱 환경오염 문제의 해결사가 될 수 있을까.

Galleria_mellonella_1.jpg » 비닐봉지를 먹는 것으로 밝혀진 꿀벌부채명나방의 모습. 우리나라를 비롯해 유럽과 아메리카까지 널리 분포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Galleria_mellonella_dorsal.jpg » 꿀벌부채명나방의 날개를 펼친 등의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연구자들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실험에 나섰다. 애벌레 100마리를 슈퍼마켓에서 받은 비닐봉지에 담았더니 40분 만에 구멍이 나기 시작했는데, 평균적으로 시간당 2.2개의 구멍을 뚫었다. 12시간 뒤에 비닐봉지의 무게가 92㎎ 줄었다.

연구자들은 이런 애벌레의 분해 능력을 기존의 생분해성 플라스틱의 사례와 비교해 봤다. 특수한 세균과 곰팡이가 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속도는 매우 늦어 생분해성 플라스틱이라도 좋은 조건에서 여러 달 걸려야 분해된다. 

가장 최근 발견된 분해 능력이 뛰어난 세균도 하루 ㎠당 0.13㎎의 플라스틱을 분해했다. 그런데 연구자들이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를 으깬 뒤 비닐봉지에 발라 실험한 결과 14시간 동안 13%가 줄어들었다. 하루에 ㎠당 5.52㎎꼴로 분해한 셈이다. 최고의 플라스틱 분해 세균보다 40배 이상 뛰어난 분해 능력이다.

p3_Paolo Bombelli.jpg » 슈퍼마켓에서 받은 비닐봉지를 갉아먹는 꿀벌문패명나방 애벌레.

그렇다면 왜 이 나방 애벌레는 질긴 플라스틱을 먹게 됐을까. 페데리카 베르토치니 스페인 칸타브리아 생물의학 및 생명공학연구소(CSIC) 연구원은 “(꿀벌 통의) 밀랍은 폴리머이고 일종의 ‘천연 플라스틱’이어서 화학구조가 폴리에틸렌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영국 케임브리지대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애벌레는 벌통의 밀랍을 소화시킬 능력이 있기 때문에 비슷한 화학구조의 비닐봉지를 먹어치웠다는 것이다.

애벌레가 비닐의 복잡한 화학구조를 단순하게 바꿔 분해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잘게 쪼개는 것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결국 미세 플라스틱 공해문제는 그대로 남게 된다.

그러나 연구자들이 애벌레를 으깨 분광기로 분석한 결과 고분자 중합체인 폴리에틸렌의 구성성분인 단량체인 에틸렌글리콜 성분이 다량 검출됐다. 파올로 봄벨리 영국 케임브리지대 생물공학과 연구원은 “애벌레는 플라스틱의 화학적 구조를 변형시키지 않은 채 그저 먹어치운 것이 아니다. 실험 결과 나방 애벌레는 폴리에틸렌 플라스틱의 중합체 사슬을 실제로 깨뜨린 것으로 밝혀졌다.”라고 말했다.

p1_César Hernández_CSIC.jpg »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 플라스틱 분해물질을 만드는 효소를 추출해 생물공학 기술로 대량생산한다면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 해결에 일대 전환기를 불러올지 모른다. César Hernández, CSIC

연구자들은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물질이 애벌레의 침샘이나 장내 공생세균에 들어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다음 연구 과제는 그 물질을 규명하고 효소를 분리해 내는 것이다. 봄벨리는 “만일 그 화학반응에 작용하는 효소를 찾아낸다면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해 그 물질을 대량생산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며 “그렇게 된다면 산업적 규모로 플라스틱 폐기물을 처리하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는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 25일치에 실렸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Paolo Bombelli et al, Polyethylene bio-degradation by caterpillars of the wax moth Galleria mellonella, Current Biology 27, R1–R3, April 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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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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