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사라진 구상나무숲…심는다고 복원될까

김정수 2017. 06. 12
조회수 3086 추천수 0
온난화로 쇠퇴하는 아고산 침엽수
지리산·한라산서 고사율 37~45%
환경부, 어린나무 심어 복원 추진
5월 300그루 이어 이달 2000그루
 
기후변화 지속 상황선 효과 의문
국립공원 보존지구 자연에 맡겨야
인위적 개입하면 되레 훼손 위험
전문가들 “무용지물 대책” 비판


gu1.jpg » 한라산에서 고사하고 있는 구상나무들. 환경부는 겨울철 고온과 봄철 가뭄 등 기후변화가 한라산과 지리산, 설악산 등의 아고산대 침엽수림에서 나타나고 있는 집단고사의 주원인이라고 보고, 지난해 증식·복원까지 포함한 ‘기후변화에 따른 아고산대 침엽수림 관리대책’을 세워 추진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환경부가 기후변화로 지리산과 한라산 국립공원 등에서 사라지는 구상나무 숲을 관리하겠다며 국립공원관리공단과 제주도를 통해 공원 안 자연보존지구에서 숲 복원 사업을 추진해 타당성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소나무과 상록침엽수인 구상나무는 빙하기 때 번성하다 빙하기가 끝나 기온이 올라가면서 높은 산으로 이동해 살아남은 한반도 특산종이자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
 
국립공원공단은 지난달 18일 지리산국립공원의 세석평전과 벽소령, 삼각고지 등 세 곳에 구상나무 묘목 300그루를 심었다. 공단은 “기후변화에 취약한 국립공원 안 상록침엽수 숲 보호를 위해 지난해 수립한 ‘국립공원 아고산생태계 보전계획’에 따라 본격적인 보전 사업을 시작했다”며 “지리산 구상나무 복원사업을 시작으로 국립공원 내 아고산 침엽수종인 눈잣나무,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등 7개 수종에 대해서도 복원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단은 ‘아고산생태계 보전계획’에 5년간 114억여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gu2.jpg » 국립공원관리공단이 기후변화에 취약한 아고산대 침엽수림 보호를 목표로 하는 ‘국립공원 아고산생태계 보전계획’에 따라 지난 달 지리산 아고산대 지역에 심어놓은 구상나무 묘목.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기후변화는 독특한 서식환경에 맞춰 진화해온 생물종에게 특히 위협적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서식환경에 적응하거나 자신에게 맞는 새로운 서식지로 이동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환경부가 1984년부터 2015년까지 국내에서 나온 관련 연구논문 83편을 분석한 결과, 한라산 구상나무의 평균 고사율은 43.5%, 지리산 구상나무의 평균 고사율은 37%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공원공단은 2009년부터 설악산·지리산·덕유산·오대산·소백산 등 5개 국립공원 36개 조사구에서 진행한 ‘아고산대 침엽수림 모니터링’을 통해 겨울철 고온과 봄 가뭄 등 기후변화와 강풍이 구상나무를 말라죽게 하는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 결과를 얻었다. 그래서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아고산생태계 보전 및 관리’라는 비전을 내건 ‘보전계획’이 나왔다. 
 
기후변화를 근본적으로 막아줄 국제사회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큰 성과를 보이지 못하면서 여러 분야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강풍과 집중호우 등 극한기상에 대비해 기반시설을 확충하고, 가뭄에 잘 견디는 작물 품종을 개발하고, 이상 고온에 특히 취약한 계층을 보호할 대책을 마련하는 것 등이 그런 예다. 기후변화로 멸종될 위험이 높은 생물종을 지키는 것은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적응 대책이다. 문제는 이런 대책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매우 다양할 뿐 아니라 실행에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적응 대책을 시행하기에 앞서 타당성을 엄밀히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00669740_P_0.JPG » 구상나무 어린 순. 기후변화 시대에 구상나무의 생존은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 한겨레 자료사진
 
구상나무 숲이 쇠퇴하는 곳에 묘목을 심어 숲을 유지하려는 기후변화 적응 대책에 대부분의 전문가는 부정적이다. 호남대 조경학과 오구균 교수는 “구상나무를 고사시키는 기후변화가 그대로 진행되는 상황에선 무용지물이다. 인간이 직접 훼손한 것 때문이라면 복원해야겠지만, 기후적으로 생태학적으로 일어나는 자연현상이라면 묘목을 심어 막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기상청은 <한반도 기후변화 전망 보고서>(2012)에서 지금처럼 온실가스가 계속 배출되면 한반도 기온은 이번 세기 후반(2071~2100년)까지 1981~2010년 대비 최대 5.7도 올라갈 것으로 내다봤다. 이렇게 되면 강원도 일부 산간지역을 뺀 남한 대부분이 아열대 기후구로 바뀐다. 전 세계가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고는 기후변화를 막을 방법은 없다. 오 교수는 “기후변화에 의한 생태계 변화는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함부로 손을 대기보다 정밀하게 조사하고 모니터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기후변화가 고사의 주원인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보는 전문가도 복원에 부정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조우 상지대 관광학부 교수는 “구상나무의 쇠퇴 원인이 다 밝혀진 것도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복원하겠다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 또 기후변화 때문이라면 새로 심는 나무는 그 영향을 안 받으리라고 보장할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환경단체에서는 특히 국립공원공단이 구상나무 묘목을 심은 아고산대 지역이 공원자연보존지구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공원자연보존지구는 국립공원에서도 특히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것을 원칙으로 관리해야 하는 국립공원의 핵심지역이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윤주옥 처장은 “절대 보존해야 할 국립공원 자연보존지구에 복원도 아닌 식재 개념으로 나무를 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환경부와 공단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기후변화가 구상나무 쇠퇴의 원인이라면 더욱 인간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gu3.jpg » 지리산에 심은 구상나무 묘목. 국립공원 자연보존지구에 나무를 심어 관리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논란이 일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환경단체와 학계에서 이런 논란이 일자 국립공원공단은 구상나무 보전 전략에 반영하기 위한 연구 목적의 시범식재였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남성열 공단 생태복원부장은 “본격적으로 복원을 한다기보다 장기 모니터링을 해가면서 어떻게 성장해가는지 보려고 심었다. 복원한다고 하는 것은 오해”라고 말했다. 
 
구상나무 식재가 공단 해명대로 연구 목적이라고 해도 최종적으로 복원을 염두에 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환경부가 지난해 8월 수립한 ‘기후변화에 따른 아고산대 침엽수림 관리대책’에도 ‘아고산대 침엽수림 증식·복원사업’이 포함돼 있다. ‘관리대책’ 자료에는 이 사업 담당기관이 국립공원관리공단으로 명기돼 있다.
 
국립공원 자연보존지구 구상나무 묘목 식재는 한라산에서도 이뤄진다. 제주도가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와 함께 이달 중 한라산 영실의 구상나무림 쇠퇴 지역 1500평에 3~5년생 구상나무 묘목 2000그루를 심기로 한 것이다. 이 사업도 환경부 예산 지원으로 진행되고 있다.  
 
기후변화의 영향이 지속될 아고산대에서의 구상나무 복원사업은 국제 가이드라인에도 맞지 않을 수 있다. 멸종위기종 복원에 적용해야 하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재도입 및 기타 보전이입 가이드라인’은 모든 이입계획 결정이 심각한 개체수 감소나 절멸을 초래한 과거의 원인이 앞으로 이입될 개체에 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상태에서 이뤄질 것을 요구한다.
 
환경생태학회 국립공원 및 보호지역 분과위원장인 최송현 부산대 교수는 “구상나무를 국립공원 안에서 지켰으면 좋겠지만 기후변화는 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종 보존 차원에서 구상나무를 지키고자 한다면 서식지 외 보전 같은 것에 의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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