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 나는 ‘쥐방울’ 먹고 태어난 ‘선녀’ 꼬리명주나비

이강운 2017. 0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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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라 나비’로 거론된 우아한 나비, 쥐방울덩굴 베어내 덩달아 사라져
먹성 좋은 애벌레, 돌아서면 또 밥 달라…똥 치우고 허물 벗기고, 아기 키우듯
 
p1.jpg » 꼬리명주나비 수컷. 쥐방울덩굴을 먹고 번식하는 우아한 나비이다.
 
밤은 가장 짧고 낮은 대략 15시간 쯤, 1년 중 낮이 가장 길다. 태양이 뜨거운 열기를 발산하고 생물을 키우는 에너지를 내뱉는, 해가 가장 길게 드리워 더 받을 수 없을 만큼 꽉 찬 하지(夏至). 가뭄에 대지가 목이 타고 힘이 들어도 힘이 넘치는 날들, 여름에 이르렀다. 
  
새벽 4시쯤 되면 멀리서 동이 트고 저절로 눈이 떠진다. 해 뜨기 전 제일 먼저 멸종위기 곤충인 붉은점모시나비 산란 실험실로 가서 조심스레 알을 뗀다. 방금 낳은 알을 바로 떼다가는 터지기 일쑤고 게으름 피우며 하루 이틀 놔두면 집게벌레, 개미 같은 천적에 먹히거나 알벌 같은 기생벌이 알에 알을 낳아 버린다. 
 
p2.jpg » 멸종위기종인 붉은점모시나비의 알.

p3.jpg » 흑집게벌레. 붉은점모시나비 알을 제때 수거하지 않으면 이 벌레의 몫이 된다.

p4.jpg »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붉은점모시나비 기생 알벌.
 
온도가 떨어지는 새벽녘, 붉은점모시나비가 사람의 인기척에 놀라지 않아 실험실 출입이 자유로우면 딱딱해지고 천적으로부터 목숨을 건진 알을 뗀다. 바닥에 붙은 알을 떼느라 쭈그리고 앉거나 천장에 붙은 알을 조심조심 떼느라 목을 길게 빼다 보면 온몸이 뒤틀린다. 알 떼는 일을 주로 하는 아내가 절로 내는 앓는 소리가 마음에 걸린다. 3시간여 알 떼기를 마치고 아침 밥상에 앉아 멸종위기종 벌레를 생각한다. 기쁜 마음으로 일은 하지만 힘이 든다. 

종일 붉은점모시나비 생각하고 붉은점모시나비 눈으로 세상을 보며 오랜 기간 노력 끝에 사육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새벽부터 일만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고 붉은점모시나비가 나에게 보내 준 ‘살려달라’는 메시지를 잘 읽은 덕분이다. 
  
대를 이어 번식시킬 방법은 터득했지만 계속 성공한다는 확신은 없다.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절기도 예전보다 많이 흐트러진 듯하고 철없이 제시간을 잃고 마구잡이로 변하는 계절이 걱정된다. 생태·생리적인 연구는 착착 진행됐지만 점점 더워지는 지구에서 차가운 곳에 적응해 진화한 곤충이 온전할지 확신이 없다. 온도 발육 실험을 근거로 붉은점모시나비 우화 실험을 시작한 지 7년이 지났다. 2011년보다 무려 14일이나 빨리 날개를 달고 나오고 있다. 

p5.jpg » 야외실험실의 붉은점모시나비 우화 패턴. 번데기가 깨어나는 시기가 점점 일러진다.
  
밑은 축축하고 위로는 해가 잘 드는 연꽃 연못 주변에 부처꽃이 떼 지어 예쁘게 피었다. 가난한 서민들이 연꽃 대신 부처님께 공양했던 흔하고 화려한 꽃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 '부처꽃'. 꽃봉오리 여러 개가 피었다 지기를 반복하며 오랫동안 많은 양의 꿀을 낸다. 꺼지지 않은 등불 같은 부처꽃이 곤충들에겐 부처고 낙원이다. 선명한 붉은색 부처꽃에 호랑나비, 산제비나비, 노랑나비, 꼬리박각시가 꽃봉오리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부처꽃의 향기와 숨소리를 들으며 꿀을 빤다. 자연이 선물하는 한 폭의 그림이다. 

p.jpg » 부처꽃.
  
이른 봄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들이 요즘은 입이 미어터지도록 먹어댄다. 이즘은 ‘각종 벌레가 우글거리는’ 시기로 애벌레의 극성기라 할 수 있다. 참나무 잎을 먹는 참나무산누에나방과 개암나무를 먹는 네눈박이산누에나방 그리고 자두나무를 먹는 대왕박각시와 오리나무를 먹는 긴꼬리산누에나방 애벌레는 애벌레의 마지막 단계로, 고치를 만들고 뒤이어 고치 안에서 번데기를 만들어야 하므로 매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해 먹성이 좋을 수밖에 없다. 

p6.jpg » 긴꼬리산누에나방 애벌레.

p7.jpg » 네눈박이산누에나방 애벌레.

p8.jpg » 참나무산누에나방 애벌레.

풍성하게 주었던 나무가 줄기만 앙상하게 남아 오전에 밥을 주고 돌아서면 또 밥을 달라 한다. 똥을 치워주고 새로 준비한 신선한 먹이를 주며 힘이 달려 탈피를 하지 못하는 애벌레 껍질을 조심스레 벗겨주고, 내 아이 키우는 것만큼 공을 들여 키운다. 그 긴 하루도 벌레 돌보느라 짧기만 하다..
 
p9.jpg » 애벌레의 탈피를 도와주는 모습. 마치 아이 기르듯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온종일 먹어대니 배설량도 어마어마하다. 아침, 저녁으로 애벌레가 싼 똥을 모아 고추에 거름으로 주고 있다. 애벌레는 식량이나 사료용으로 또한 신약의 원료로 가치가 충분하지만 애벌레의 똥도 퇴비와 비료로서 가능성이 크다. 단 하나도 버릴 게 없는 생물자원-곤충, 애벌레다. 
  
알에서 번데기까지 약 60일 동안 잘 버텨서 아름다운 나비가 되었다. 꼬리명주나비가 날아다니는 자태는 마치 바람 타고 온 민들레 씨가 살포시 내려앉았다 다시 떠오르는 것처럼 가뿐하고 우아한 모습이다. 아직 나라 나비가 없는 우리나라의 국접(國蝶)으로 꼬리명주나비가 거론된 적이 있었는데, 이 정도 아름다움이라면 충분히 자격이 있지 않을까?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대표하는 귀엽고 예쁜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 녀석에게 붙여준 이름이 프시케였는데, 아름다운 여신과 나비가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나비는 ‘아름다움’의 상징인 게 틀림없다. 나비의 속뜻은 결국 ‘아름다움’ 아닐까.
  
p10.jpg » 꼬리명주나비 암컷.

p11.jpg » 꼬리명주나비를 주제로 한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케릭터.

꼬리명주나비의 학명은 세리키누스 몬텔라(Sericinus montela)이다. 여기서 세리키누스는 고운 명주를 뜻하고, 뒷날개 끝에 길게 나 있는 돌기가 꼬리 같아 꼬리명주나비가 되었다. 암컷은 검은 바탕에 흰무늬, 수컷은 흰 바탕에 검은 무늬가 있다. 반전된 암수의 색 ‘흑과 백’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더욱 돋보인다. 
  
통처럼 생긴 동그란 열매와 지독하기 짝이 없는 냄새 때문에 붙은 까마귀오줌통이라는 재밌는 별명이 있는 쥐방울덩굴은 꼬리명주나비 애벌레 먹이식물이다. 잡초라며 이 식물을 마구 베어 꼬리명주나비도 덩달아 없어지고 있다. 
 
p12.jpg » 꼬리명주나비 애벌레의 먹이식물인 쥐방울덩굴.
 
많은 생물이 슬금슬금 없어지고 있지만, 무관심으로 존재가 잘 드러나지도 않고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연명하는 멸종위기종은 벼랑에 섰다. 강원도 삼척 하장에서, 석회석 광산 지역인 자병산 자락에도, 강촌 옛 서식지와 폐광 지역인 강원랜드 꼭대기에서도 붉은점모시나비 모습을 보게 될 날을 고대하며 복원 행사를 했다. 기업과 지자체 원주지방환경청과 함께 뜻을 같이한 생명 존중의 복원 노력이었다. 
 
p13.jpg » 2017년 6월8일 경기도 강촌의 옛 서식지에 붉은점모시나비를 방사하고 있다.
 
이렇게 한 종이라도 보내지 않으려는 노력은 희망적이지만 종 수준의 부분적 복원은 근본 해결책이 아니다. 서식지 자체를 보전하는 일이 우선 진행되어야 한다. 국립공원은 우리나라 동물 종의 60%, 식물 종의 77%가 분포하고 멸종위기종의 60% 이상이 사는 생태·환경의 핵심축으로 멸종위기종을 비롯한 야생 동식물의 마지막 피난처이며 가장 넓은 서식지이다. 
  
문화재위원회가 어렵게 국립공원 설악산에 케이블카 설치를 불허하여 정상으로 돌린 것을 다시 행정심판위원회가 추진 근거를 만들어 주었다. 사업 재개까지는 마지막 관문이 하나 남아 있다.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 절차다. 
  
자연공원법 개정안을 입법하여 케이블카를 쉽게 설치하도록 여지를 남겨 주었던 환경부가 개발 정책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오히려 좋은 기회다. 엉터리로 진행되었던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차분하고 제대로 활용하여 법대로 처리하면 된다. 
  
태고의 자연을 다 부수어놓고 산림의 가치와 생명의 소중함을 되살리겠다고 가리왕산 ‘복원’ 행사를 준비한다니, 얼마나 한심한지 개가 웃을 일이다. 
  
온전히 시민의 힘으로 탄생한 제대로 된 대한민국에서는 많은 국민의 뜻을 받아 다른 생물의 안전과 목숨도 사소하게 취급되지 않아야 한다. 국립공원 지정을 시작한 지 벌써 50년, 국립공원에 대한 애정과 생명의식이 앞서가고 있는데 발목 잡는 일을 해서야 하겠는가? 
  
전문성과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한다. 
  
글·사진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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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한국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 국립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겸임교수. 저서로는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Caterpillars of Moths in Korea)>(2015.11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캐터필러>(2016.11 도서출판 홀로세)가 있다.
이메일 : holoce@hecri.re.kr      
블로그 : http://m.blog.naver.com/holoce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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