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 열매 먹고 ‘응가’, 바퀴도 씨를 퍼뜨린다

조홍섭 2017. 08. 14
조회수 6584 추천수 0
수정난풀이 맛없는 열매 맺는 이유…산바퀴가 퍼뜨리도록
4600종 바퀴 가운데 해충은 소수, '농부 바퀴' 더 있을 것

YASUHIRO UEHARA AND NAOTO SUGIURA-3.jpg » 산바퀴가 나도수정풀(오른쪽)의 열매를 먹고 있다. 씨앗은 멀리 이동해 배설된다. 우에하라 야스히로, 스기우라 나오토

식물은 달콤한 열매로 유혹해 동물이 씨앗을 퍼뜨리도록 만든다. 반달가슴곰이 지리산의 산벚나무 씨앗을 여기저기 뿌리고 다니는 것처럼 포유류, 조류, 파충류가 이런 ‘농부’ 구실을 한다. 곤충 가운데는 개미가 유명한 씨앗 확산 자이다. 그런데 우리가 몰랐던 농부 곤충이 더 있었다. 바로 바퀴다.
 
일본 구마모토대 연구진은 산바퀴가 나도수정초의 씨앗을 퍼뜨린다는 사실을 확인해 지난 4일 학계에 보고했다. 나도수정초는 스스로 광합성을 하지 않고 균류에 기대어 살아가는 식물인데 줄기·잎·꽃이 모두 흰색이어서 수정처럼 아름다운 부생식물이다. 산바퀴는 집바퀴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숲 바닥 낙엽층에 서식하는 곤충이다. 둘 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아시아에 자생한다.
 
r.jpg » (A) 나도수정풀의 열매를 수평으로 자른 모습. 수많은 작은 씨앗이 즙 많은 과육에 묻혀 있다. (B) 숲 바닥에 떨어진 나도수정풀 열매. 잘 눈에 띄지 않는다. (C) 열매에 몰려든 산바퀴. (D) 손상되지 않은 나도수정풀 씨앗이 든 산바퀴 배설물. (E) 소화관을 통과한 씨앗. 채색된 것이 살아있는 씨앗이다. 우에하라 외(2017)

연구자들은 나도수정초가 달거나 향기도 없고 색깔도 없는 열매를 맺는 데 주목했다. 새나 포유류의 눈길을 끌지 못하는 이 열매에 산바퀴가 밤중에 부지런히 찾아들었다. 

이 식물 열매에는 길이 0.3㎜의 작은 씨앗 수백개가 들어 있는데 씨앗은 딱딱한 껍질로 싸여 있다. 열매를 먹은 산바퀴는 3~10시간 뒤 멀리 떨어진 곳에 배설했는데, 그 속에는 씨앗이 대부분 온전한 채로 들어 있었다.
 
연구자들은 열매가 익어 땅에 떨어지는 시기와 산바퀴가 우화하는 시기가 일치하는 점 등을 들어 나도수정초가 산바퀴에 특화해 씨앗을 퍼뜨리는 전략을 편다고 설명했다. 또 세계에 4600종이 넘는 바퀴가 있어 씨앗을 확산하는 바퀴가 더 많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YASUHIRO UEHARA and NAOTO SUGIURA, Botanical Journal of the Linnean Society, 2017, XX, 1–6, DOI: 10.1093/botlinnean/box043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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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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