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바꾸고 내는 뻐꾸기 ‘최후의 웃음’의 비밀

조홍섭 2017. 09. 08
조회수 4388 추천수 0
암컷 뻐꾸기 탁란 직후 ‘킥-킥-킥∼’
개개비는 포식자인 줄 알고 경계 몰두
탁란 성공률 높이는 새로운 속임수 


Cuculus_canorus_vogelartinfo_chris_romeiks_CHR0791_cropped.jpg » 자신의 알을 다른 새 둥지에 맡겨 기르도록 하는 기생(탁란)으로 유명한 뻐꾸기. 숙주를 속이는 새로운 전략이 밝혀졌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른 여름 숲을 울리는 ‘뻐꾹∼’ 소리는 사람에게는 평화롭게 들리지만 개개비나 뱁새 등 뻐꾸기에 탁란 기생을 당하는 새에게는 전쟁 선포나 마찬가지다. 뻐꾸기가 슬그머니 낳은 알을 품고 뻐꾸기 새끼를 키우느라 자신의 새끼는 모두 또는 대부분 잃을 수 있다.
 
그러나 실험을 해 보았더니 탁란 숙주 새들이 ‘뻐꾹∼’ 소리에는 무관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작 무서운 건 ‘킥-킥-킥∼’ 하는 뻐꾸기 암컷이 내는 소리이다. 이 소리가 탁란을 완성하는 뻐꾸기의 두 번째 속임수임이 밝혀졌다.
 
천적의 새끼를 힘들여 키우는 결과를 빚는 탁란은 당하는 새들에겐 너무나 치명적이다. 그래서 다양한 대응 전략이 나타났다. 먼저 둥지 주변을 철저히 감시한다. 뻐꾸기가 얼씬거린다면 덩치가 크지만, 목숨을 걸고 공격해 쫓아낸다. 잠깐 자리를 비우는 사이 둥지에 낯선 알이 나타난다면 밖으로 내던진다.
 
뻐꾸기라고 손 놓고 당하지는 않는다. 암컷은 숙주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잽싸고 은밀하게 둥지에 침입한다. 이어 자기 덩치에 비하면 아주 작지만, 숙주가 미리 낳아놓은 알과 크기와 색깔이 비슷한 알을 하나 얼른 낳고 달아난다 .

00232102_P_0.JPG » 뻐꾸기가 검은머리오목눈이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둥지에 알을 낳으려고 내려앉는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그런데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뻐꾸기의 새로운 전략이 있었다. 연구자들은 암컷 뻐꾸기가 탁란한 직후 ‘킥-킥-킥’하고 운다는 데 주목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자들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이 소리가 탁란의 성공률을 높이는 최후의 무기임이 드러났다고 과학저널 <네이처 생태학 및 진화> 7일치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연구자들은 암·수 뻐꾸기의 울음소리, 천적인 새매의 소리, 멧비둘기의 소리 등을 주요 숙주인 개개비와 탁란을 당하지 않는 박새에게 들려주고 각각 다른 반응을 녹화하는 방식으로 실험했다. 무엇보다 개개비가 수컷 뻐꾸기가 내는 유명한 ‘뻐꾹∼’ 소리에 무덤덤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멧비둘기가 우는 소리보다도 덜 반응했다.

41559_2017_279_Fig1_HTML.jpg » 개개비와 박새가 암컷 뻐꾸기가 내는 소리에 새매 소리를 들었을 때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실험 결과. 그래프 위부터 비둘기, 수컷 뻐꾸기, 암컷 뻐꾸기, 새매 순으로 음파의 모습(a)과 소리를 듣고 경계에 나서는 비율(b, c). 알을 품던 개개비(d)와 먹이를 먹던 박새(e)가 소리를 듣고 경계하는 모습. <네이처 생태학 및 진화> 제공.

사실 수컷 뻐꾸기는 잘 드러난 장소에서 경쟁 상대인 다른 수컷 뻐꾸기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운다. 그러나 종종 주변에 암컷이 없어도 운다. 탁란 숙주들은 이런 사실을 잘 안다.
 
그러나 개개비는 암컷 뻐꾸기가 내는 ‘킥-킥-킥’하는 소리에는 새매가 내는 소리만큼 예민하게 반응했다. 사람이 듣기에는 새매와 암컷 뻐꾸기의 소리는 전혀 다르다. 새매는 ‘키이-키이-키이’ 하고 운다. 
 
연구자들이 암컷 뻐꾸기의 소리를 박새에게 들려주었더니 새매 소리 때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박새는 탁란을 당하지 않기 때문에 뻐꾸기를 경계할 필요가 없지만, 소리 자체는 새매와 비슷한 효과를 냈다. 연구자들은 “피식자는 포식 위험을 나타내는 아주 미묘한 단서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라고 논문에서 설명했다. 천적이 내는 소리와 똑같지 않더라도 특정 양상이 비슷해도 대응하기엔 충분하다.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주변을 한 번 더 경계하는 편이 현명하다.
 
연구자들은 암컷 뻐꾸기가 내는 소리가 알을 품는 개개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했다. 어미가 자리를 비웠을 때 마지막인 네 번째 낳은 알을 꺼내 갈색으로 칠하고 다시 넣은 뒤 녹음한 소리를 들려줬다. 반응은 놀라웠다.
 
낯선 알이 들어온 둥지 70개 가운데 한 곳은 어미가 둥지를 버리고 떠났고 32곳에서는 낯선 알만 둥지 밖으로 내버렸다. 그러나 둥지 주변에서 암컷 뻐꾸기 소리를 들려준 둥지에서는 낯선 알을 버린 비율이 절반으로 줄었다. 새매 소리가 난 곳과 비슷한 비율이었다. 

41559_2017_279_Fig2_HTML.jpg » 개개비의 알 하나를 꺼내 갈색 칠을 해 다시 넣은 실험(a). 소리를 듣고 낯선 알을 제거하지 않은 비율(B). 왼쪽부터 비둘기, 수컷 뻐꾸기, 암컷 뻐꾸기, 새매 순이다. <네이처 생태학 및 진화> 제공.

포식자는 은밀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그 소리를 들은 피식자는 한동안 경계를 늦추지 못한다. 암컷 뻐꾸기가 노린 것은 바로 이것이다. 탁란한 직후 새매와 비슷하게 들리는 소리를 냄으로써 둥지에 돌아온 개개비가 포식자를 경계하느라 정신이 팔려 낯선 알을 가려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암컷 뻐꾸기는 숙주의 방어와 기생자의 속임수 사이에 벌어지는 전투에서 ‘최후의 웃음’을 날리는 셈”이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European_Cuckoo_Mimics_Sparrowhawk-Chiswick Chap.jpg » 뻐꾸기와 새매는 깃털 무늬가 매우 비슷하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뻐꾸기의 깃털 무늬가 맹금류와 비슷한 이유가 숙주의 반격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번 연구로 탁란의 성공률을 높이는 데도 기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Jenny E. York and Nicholas B. Davies, Female cuckoo calls misdirect host defences towards the wrong enemy, Nature ecology & evolution, DOI: 10.1038/s41559-017-0279-3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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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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