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오리 생식기가 나사처럼 꼬인 이유

조홍섭 2017. 09. 29
조회수 43268 추천수 0
‘강제 짝짓기’ 성행하는 종일수록 생식기가 길고 복잡
‘섹스 전쟁’이 진화 추동…홍오리 음경은 몸 길이 비슷

사본_P-0.jpg » 번식기의 북미산 오리인 홍오리 수컷. 아래에 나사처럼 꼬인 부위가 음경이다. 브레넌 제공.

아름다운 노래, 현란한 춤, 화려한 깃털 변화 등 새들은 동물 가운데 가장 극적으로 사랑을 표시한다. 그러나 그 모든 사랑 과정의 종착점인 짝짓기 행위는 허무할 정도로 짧고 간소하다. 새들의 수컷은 따로 음경이 없어 배설과 생식 기능을 모두 하는 총배설강을 암컷과 접촉해 짧은 시간 동안 정자를 옮기면 끝이다.(■ 관련 기사: 새들은 어떻게 ‘남성’을 잃어버렸나)
 그러나 몇몇 예외가 있다. 타조는 짝짓기할 때뿐 아니라 배설할 때도 총배설강이 뒤집히며 길이가 30㎝나 되는 음경이 휘어져 나와 동물원을 찾은 가족 단위 탐방객을 민망하게 만든다. 타조뿐 아니라 에뮤, 레아, 키위 등 땅 위 생활에 적응한 일단의 새들도 이런 해부구조이다.

사본_phallus-1.jpg » 조류 수컷 생식기의 비교. 왼쪽부터 닭, 메추라기, 오리, 거위 순이다. 닭과 메추라기 사진에서 화살표가 가리키는 돌기가 축소된 생식기이다. 애나 헤레라 외, ‘커런트 바이올로지'

 다른 예외가 오리 류이다. 수컷 오리 가운데는 자기 몸집만큼 긴 40㎝에 이르는 긴 생식기가 있는 것도 있으며, 와인 따개처럼 나선형으로 꼬인 형태이기도 하다. 패트리셔 브레넌 미국 매사추세츠 대 진화생물학자 등은 2011년 타조와 오리가 포유류와 달리 발기 때 혈액이 아닌 림프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관련 기사: 170년 만에 풀린 과학 숙제, 타조 거시기의 비밀). 
 사본_411535m444-5.jpg » 발기한 타조의 음경. 브레넌 등 제공. 오리는 수컷 생식기의 형태가 다양하고, 수컷끼리 경쟁이 심할수록 음경 길이도 길어지는 등 조류의 생식기 진화를 연구하는 데 최적의 대상으로 꼽힌다. 특히 나사처럼 꼬인 오리의 음경 형태는 과학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대부분의 오리는 일부일처제이지만, 상당수의 수컷은 이미 짝이 있는 다른 암컷과 강제로 짝짓기를 시도한다. 연구 결과 이런 강제 짝짓기가 성행하는 종일수록 음경이 길고 복잡한 형태를 띠는 것으로 밝혀졌다. 암컷은 원치 않는 짝짓기를 피하기 위해 마찬가지로 생식기 형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암컷이 편한 자세를 허용하지 않는다면 수컷의 정자는 난자 가까이 도달하기 힘들다. 실제로 오리 가운데 강제 짝짓기의 비율은 30∼40%에 이르지만, 수태 성공률은 2∼5%에 지나지 않는다.
 오리 생식기의 이런 변화는 오랜 진화 과정에서 일어난 ‘섹스 전쟁’의 결과이다. 그러나 형태 변화는 한 세대 안에서도 일어난다. 브레넌 등은 미국 조류학회가 내는 과학저널 ‘아우크: 조류학 진보’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흥미로운 실험결과를 보고했다.
 
사본_Greater_scaup_male-4.jpg » 번식기의 수컷 쇠검은머리흰죽지. 북미의 오리이다. 칼리바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쇠검은머리흰죽지와 홍오리 등 2종의 오리를 대상으로 한쪽에서는 암컷과 수컷 한 마리씩 짝을 짓도록 하고, 다른 쪽에서는 암컷 한 마리당 여러 마리의 수컷을 넣어 2년 동안 번식 과정을 거치면서 음경 길이의 변화를 조사했다. 그랬더니 암컷과 홀로 있던 수컷에 비해 다른 수컷과 경쟁하게 된 수컷의 음경이 훨씬 커졌다. 브레넌은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결국 진화는 유연해지는 능력에 손을 들어줍니다. 주어진 여건에 꼭 필요한 것에 투자하는 능력 말입니다.”라고 말했다. 오리는 무작정 음경의 크기를 키우는 게 아니라 생식이냐 생존이냐의 갈림길에서 한쪽을 선택한다는 얘기다.
 연구진이 홍오리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긴 생식기에 투자할 것이냐를 둘러싼 더 극적인 양상이 나타났다. 홍오리는 오리 가운데서도 몸길이에 견줘 음경이 가장 긴 축에 든다. 종종 음경이 자기 몸보다 길다. 이 오리는 또 암컷을 차지하려는 수컷끼리의 다툼이 하도 심해 상대가 죽기도 한다. 

사본_p-2.jpg » A, B는 쇠검은머리흰죽지와 음경, C는 다양한 경쟁 수준의 홍오리. 왼쪽은 혼인색이 선명한 지배적 수컷이고 오른쪽은 미처 혼인색을 띠지 못한 약한 수컷이며, 각각의 음경은 D와 E이다. 브레넌 외, ‘아우크’ 제공.

 실험 첫해에 수컷이 많은 우리에서 홍오리 가운데는 가장 덩치가 큰 개체만 음경이 18㎝로 커졌지만 덩치가 작은 오리들은 0.5㎝밖에 안 됐다. 두 번째 해에 작은 오리들의 음경도 정상적인 크기가 됐지만 이번에는 지속 기간이 5주에 그쳤다. 큰 개체가 석 달 동안 유지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홍오리는 해마다 번식기에만 음경을 키운다. 브레넌은 “큰 개체의 괴롭히기가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를 늘려, 음경 크기를 조절하는 안드로젠 효과를 억제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자연환경뿐 아니라 사회환경도 음경의 크기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Brennan, P. L. R., Gereg, I., Goodman, M., Feng, D. & Prum, R. O. Evidence of phenotypic plasticity of penis morphology and delayed reproductive maturation in response to male competition in waterfowl, Auk Ornithol. Adv. 134, 882–893 (2017) DOI: 10.1642/AUK-17-114.1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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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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