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나 축내는 고라니를 왜 구조하냐고요?

김봉균 2017. 10. 17
조회수 3328 추천수 0
생명에 '그깟 녀석'이 어디 있나…좀 더 이해하려는 노력 필요해
한반도에 많지만 세계적 멸종위기종, 포유류 가운데 최대 구조 종

04314742_P_0.jpg »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응급처치를 받는 고라니. 예산/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칠흑 같이 어두운 밤, 저 멀리 갈대숲에서 무언가의 기척이 느껴진다. 괜스레 오싹한 느낌이 들었지만 누구일까 궁금한 마음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날카롭고 긴 송곳니가 눈에 들어온다. 역시 녀석은 무시무시한 존재일까? 그런데 그 순간, 녀석이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는 게 아닌가. 두려웠던 마음도 잠시, 마주한 녀석의 눈망울은 참으로 맑고, 선함 그 자체였다.
 
이처럼 주로 밤에 활동하며 긴 송곳니를 지니고 있는 동물을 밤에 갑작스럽게 마주친다면 누구나 깜짝 놀랄 것이다. 하지만 녀석은 우리보다 몇 배는 더 화들짝 놀라 줄행랑을 칠 것이 분명한, 겁이 많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동물이다. 바로 고라니이다.

g1.jpg » 어둠 속에서 마주치는 바로 이 녀석이 고라니이다. 이준석 제공.

고라니는 한반도에서 가장 흔히 만날 수 있는 포유동물 중 하나이다. 실제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라니 개체군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 우리나라이다. 국내에 서식하는 사슴과 동물 중에서 개체수가 가장 많다. 게다가 높은 산에도 서식하지만 저지대를 더 선호해, 습지나 농경지 주변, 평지와 산이 만나는 경계지역에 살아가는 특징 때문에 쉽게 만날 수 있는 동물이기도 하다.
 
고라니는 사슴과의 동물이다. 사슴이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특징은 단연 뿔일 것이다. 하지만 고라니는 뿔 대신 송곳니를 지니고 있다. 이 송곳니는 수컷의 경우 보통 4~5㎝, 길게는 7㎝에 이른다. 암컷은 그보다 훨씬 작은 1㎝ 이내로 자란다. 만약 고라니를 마주했는데, 기다란 송곳니가 입 밖으로 삐죽 나와 있다면 녀석은 수컷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단언하긴 어렵다. 보통의 암컷은 송곳니가 짧아 윗입술에 덮여 보이지 않지만, 간혹 수컷에 견주어도 결코 짧지 않은 길이로 자라기도 하기 때문이다.

g2.jpg » 사진 속의 고라니는 암컷일까, 수컷일까?

고라니는 송곳니를 다른 수컷 고라니와 경쟁하는 무기로 사용한다. 뿔이 무겁고 강력한 무기라면, 송곳니는 가볍고 날카로운 무기인 셈이다. 송곳니를 앞으로 당겨 상대를 위협한다. 이러한 경쟁 과정에서 송곳니가 부러지거나, 귀나 피부가 찢어지는 등의 부상을 입기도 한다. 그렇다고 고라니의 송곳니가 싸움과 경쟁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송곳니를 이용해 나무줄기 껍질을 벗겨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는 등 의사소통의 수단으로도 사용한다. 

g3.jpg » 때로는 매우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는 고라니의 송곳니.

이런 특징 때문일까? 우리나라에서 고라니를 모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고라니를 ‘잘’ 알고 이해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또 고라니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 역시 거의 없다.
 
실제로 고라니가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고라니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멸종위기의 정도에 따라 지정하는 적색목록(IUCN RED LIST)에 취약(VU, Vulnerable) 수준으로 등재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나마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포유동물인데, 세계적으로는 멸종위기 야생동물인 셈이다. 현재 고라니가 살고 있는 지역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과거 전시나 사육의 목적으로 유럽으로 건너갔다가 야생화 되어 영국이나 프랑스 등지에서 살아가는 일부 개체군이 있긴 하지만, 고라니가 토착종으로 서식하는 나라는 오직 우리 한반도와 중국, 두 지역뿐이다.

g4.jpg »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제공하는 멸종위기 동물의 서식 분포를 담은 위성지도. 자세히 보면, 한반도와 중국에만 주황색 표시가 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IUCN 제공.

중국 양쯔강 남부의 일부 지역에 서식하는 고라니는 과거 남획의 결과로 개체군이 많지 않아 보호종으로 지정되어 있고, 일부에서는 복원사업까지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실제로 전 세계에서 고라니의 서식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 한반도이다. 만약 한반도에서 고라니가 사라진다면, 고라니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멸종위기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처럼 멸종위기 수준이 높아 적색목록에까지 등재되어 보호를 필요로 하는 고라니지만,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고라니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우리에게 고라니는 멸종위기 야생동물이기 이전에 ‘유해 야생동물’ 혹은 ‘유해조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인가에 나타나 애써 가꿔놓은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는 것이 주된 이유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남는다. 왜 우리는 고라니가 유해 야생동물이기 이전에 우리나라의 토착종이고,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에 처해있으며, 만약 우리나라에서 고라니가 사라진다면 정말 절멸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은 알 수 없었을까?

g5.jpg » 고라니는 사람에 의한 포획, 차량과의 충돌, 콘크리트 농수로 추락, 질병 감염 등에 의해 개체수가 조절되고 있다. 새끼를 밴 고라니가 교통사고를 당한 모습.

이에 대한 답은 아마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라니의 처지를 돌아보기에 앞서, 고라니로 인해 피해를 겪은 사람들의 마음을 우선 헤아려야 한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그 때문에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대부분 고라니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해 보도하기 시작했고, 이를 접한 사람들은 자연스레 고라니에 대한 편견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농작물이나 축내는 성가신 녀석’, ‘너무 많아 마구 잡아내도 상관없는 녀석’, ‘어차피 잡아낼 거, 구조의 손길을 내미는 것도 사치인 녀석’ 정도로 여겨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고라니로 인해 직접 피해를 겪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자금과 노동력을 들여 정성껏 재배하고 키워낸 농작물이 하룻밤 사이에 망가지는 것을 보는 농민들의 마음도 야생동물의 생존권 만큼이나 중요하게 헤아려야 한다. 동물의 접근을 적절히 예방하고 차단함과 동시에 서로에게 경제적, 감정적, 생명의 소모만을 불러일으키는 갈등을 줄이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동물들이 꺼려하는 초음파를 발생시키거나 포식자의 소리, 배설물을 농장 부근에 뿌려두는 방법, 전기 목책, 폭음탄 등 이미 시행되고 있는 예방의 방법도 다양하다. 물론 필요하다면 개체 수를 조절하기 위해 직접 포획하는 방법도 사용해야 하겠지만, 사전에 피해의 정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예방의 노력을 우선적으로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g6.jpg »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고라니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대부분이 부정적이다. 정작 고라니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고라니를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주를 이룬다. 2016년 5월31일 엠비시 화면 촬영.

단순히 ‘고라니가 불쌍하니 죽이지 말자’라는 감성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고라니에 대한 일방적인 편견, 부정적 시선, 왜곡된 정보가 난립하고, 이 과정에서 고라니에 대한 가학적 처치가 만연하거나 무분별하게 포획되는 현 상황을 돌이켜보자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고라니가 많다고는 하지만 정작 얼마나 많은지, 조절해야 한다면 그 적정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판단할 수 있는 연구결과 역시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세계적으로 희귀한 유전자원은 개체수가 많더라도 유전다양성이 감소할 수 있음을 고려해 인위적인 조절에 조심해야 한다. 지금처럼 무분별한 조절과 그것을 정당화하는 왜곡된 시선과 편견은 위험할 수 있으니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g7.jpg » 단순히 눈에 많이 보인다고 해서 괜찮을 거라는 믿음은 버려야 한다. 과거에 우리와 부대끼며 살아왔던 동물들이 왜 지금은 볼 수 없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면 답을 알 수 있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고라니가 처한 상황 역시 매우 심각한 위기의 연속이다. 이는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2011년부터 2016년까지 6년간 축적한 고라니의 조난기록을 통해 충분히 확인된다. 기록을 살펴보면, 구조된 전체 야생동물 4898개체 중 고라니는 1053개체로 전체의 약 21.5%를 차지한다. 이중 조류와 양서·파충류를 제외한 포유류 1623개체 중 고라니는 1053개체로 전체 포유류의 약 64.88%에 육박한다. 이는 우리나라에 고라니 개체군이 많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고라니가 여러 위험 요소에 쉽게 노출되는 경향이 있거나, 위험 압력이 높게 작용하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g8.jpg »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가 6년간 구조한 고라니의 조난 원인을 분석해 보았다. 차량과의 충돌이 과반을 넘을 정도로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고라니를 위협하는 요인 중 가장 중요한 차량과의 충돌이다. 전체 구조 빈도 중 과반을 차지할 정도이다. 우리나라가 국토면적과 대비해 도로의 밀도가 높기도 하고, 저지대를 선호하는 고라니의 특성상 도로와 자동차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이밖에 유해조수 구제를 위한 수렵과 합법적 범주를 벗어난 밀렵 역시 고라니 개체군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해 우리나라에서만 10만~15만 개체의 고라니가 인위적인 포획에 의해 사라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밖에 번식기에 사고로 어미를 잃거나, 어미를 잃었다고 오해해 발생하는 납치의 영향으로 구조되는 새끼 고라니도 매우 많으며, 콘크리트로 건설된 농수로에 빠진 후 고립되거나 밭에 설치한 그물이나 펜스와 같은 인공구조물에 몸이 끼이는 사고 등에 노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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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11.jpg » 굳이 우리가 보내는 편견 그득한 시선이 아니더라도, 고라니의 삶은 치이고, 빠지고, 구르고…고난의 연속이다.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오염, 인간의 거주지 확대와 농토 확보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면서 자연 생태계가 속수무책으로 훼손되어 왔다. 서식지가 줄어들고 먹을 것을 찾기 어려워진 동물들에게 농작물을 재배하는 곳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자. 그들이 우리에게 피해를 주고 싶어서 혹은 그들이 행한 것이 우리에게 피해가 된다는 것을 알고서 하는 잘못이 아니지 않은가. 사람들이 산에 올라 임산물을 채취하고 도토리를 주워오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야생동물이 사람들의 거주지 부근으로 내려와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행위로 인식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다. 단지 그들은 그들의 삶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해 주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단순히 눈에 많이 보인다고 해서 괜찮을 거라는 믿음은 버려야 한다. 과거에 우리와 부대끼며 살아왔던 여우나 늑대 같은 동물이 왜 지금은 볼 수 없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면 답을 알 수 있다. 우리의 편견, 시선, 왜곡이 그 원인이었을 수 있다.  
 
만약 동의한다면, 이쯤에서 다시 기억하자. 고라니는 전 세계적인 멸종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을. 콘크리트 농수로에 빠져 서서히 굶어가는 녀석을 보며, 농작물이나 축내는 나쁜 놈을 뭐하러 구조 하냐는 말이 얼마나 가시 돋친 말인지를.

글·사진/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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