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서 먹이 주기 50년 만에 박새 부리가 길어졌다

조홍섭 2017. 10. 26
조회수 8694 추천수 1
부리 길수록 새 모이통서 씨앗 잘 빼 번식력 높아
영국과 네덜란드 장기 관찰과 유전자 연구서 확인

g1_GettyImages-592665484.jpg » 영국 정원의 절반 이상엔 이처럼 견과류를 담은 모이통이 설치돼 박새 등을 끌어모은다. 그 결과 새로운 진화가 일어나고 있다. 케티이미지뱅크 제공. 
 
다윈은 갈라파고스에서 부리의 모양이 다른 여러 가지 새들의 표본을 채집했다. 귀국해 전문가에 확인하니 핀치 한 종이 다양한 먹이에 따라 여러 종으로 분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나중에 ‘다윈 핀치’로 유명해진 이들은 다윈의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주요 사례였다.
 
오랜 세월에 걸쳐 조금씩 변화가 쌓여 이뤄지는 진화를 눈앞에서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우리나라부터 유럽까지 유라시아 대륙에 널리 분포하는 텃새인 박새에서 불과 수십∼수백 년 만에 그런 진화가 일어났음이 드러났다. 영국의 박새가 유럽 본토의 박새보다 부리가 길어지는 변이를 일으킨 것으로 밝혀졌다. 놀랍게도 그런 진화의 원동력은 영국 정원에 널리 설치한 새 모이통이었다. 
 
박새는 사람 곁에 살기를 좋아해, 인공 새 둥지에서 쉽게 번식하고 사람이 설치한 모이통에서 씨앗이나 견과류를 즐겨 꺼내 먹는다. 특히 영국에서는 정원에 새 모이통을 설치하는 것이 19세기부터 인기 있는 소일거리여서, 현재 전체 모이통을 설치한 정원은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새 모이통의 단골손님이 박새이다. 유럽 본토보다 영국의 모이용 씨앗 소비량은 2배에 이른다. 이런 취미가 박새에도 영향을 끼쳤을까.

g2_bosse2HR.jpg » 땅콩을 넣은 모이 주머니에 매달린 박새. 데니스 반 데 바테르 제공.
 
네덜란드와 영국 연구자들은 두 나라에서 장기간 박새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3곳을 대상으로 연구를 수행했다. 예를 들어 영국 옥스퍼드서의 와이덤 우즈에서는 70년 동안 박새 조사가 이뤄진 곳인데 949마리가 서식한다. 연구자들은 이들 3곳에서 축적된 조사자료를 바탕으로 진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봤다. 이미 영국 박새가 본토 박새에 견줘 부리의 길이가 길어 다른 아종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이런 차이가 환경 적응에 따른 진화 때문인지를 밝히려면 적어도 세 가지를 증명해야 한다. 두 집단 사이에 유전적 변이가 생겼나, 실제로 부리의 길이에 차이가 있나, 그리고 부리가 긴 박새가 생존에 유리해 더 많은 자손을 남기는가? 등이 그것이다. 자연선택은 여러 유전자에 동시에 작용하는 데다 선택의 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에 잡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연구자들은 먼저 3000마리의 박새를 대상으로 유전자 분석을 했다. 물론 먹이의 차이가 부리 형태의 변이를 부른 다윈 핀치의 해당 부위 유전자가 집중 조사대상이었다. 그 결과 자연 먹이가 거의 같은 영국과 네덜란드 박새의 유전자 가운데 특히 콜라겐 유전자 COL4A5의 차이가 두드러졌다. 이 유전자는 사람에서는 얼굴의 모습을 결정하는 유전자와 가깝다. 
 
부리의 길이도 영국 박새가 네덜란드 박새보다 0.54% 긴 것으로 밝혀졌다. 미미한 차이이지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했다. 우연적인 차이가 아니란 얘기다. 
 
연구자들은 또 부리가 긴 유전자를 지닌 박새의 그렇지 않은 박새보다 번식력이 높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자연은 부리가 긴 개체를 선택했다는 뜻이다. 연구자들은 부리가 긴 박새일수록 모이통에서 먹이를 꺼내먹기 쉽고 이것이 경쟁력을 높였을 것으로 보았다. 실제로 관찰 결과 부리가 긴 박새일수록 모이통에 자주 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g3_Baresi franco _Great_tit_feeding.jpg » 박새는 부리로 꺼낸 씨앗을 발 사이에 끼우고 먹는 습성이 있다. 바레시 프랑코,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에 참여한 존 슬레이트 영국 셰필드대 교수는 “영국에서는 1970년대 이후 박새의 부리가 길어졌는데, 이런 차이가 나타나기에는 아주 짧은 기간”이라며 “이제 이런 부리 길이의 증가와 영국과 유럽 본토 사이의 부리 길이 차이가 유전자에 기원하며 자연선택 때문에 진화했음을 알게 됐다”라고 영국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이 연구는 과학저널 <사이언스> 20일 치에 실렸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Mirte Bosse et al, Recent natural selection causes adaptive evolution of an avian polygenic trait, Science (2017) VOL 358 ISSUE 6361, http://science.sciencemag.org/cgi/doi/10.1126/science.aal329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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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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