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살개 육종 30년, 민화 속 ‘바둑이’가 되살아났다

조홍섭 2018. 01. 01
조회수 3865 추천수 1
인터뷰-하지홍 경북대 생명과학부 교수

일제가 모피용으로 150만마리 살육
도사견·서양종 들어와 품종 섞여
소수 남은 토종개 ‘유전자 풀’에서
삽살개 복원했더니, 3%씩 단모종 나와
조선 병풍 속 토종개 빼닮은
교과서 나오던 그 ‘바둑이’다


b1.jpg » 하지홍 경북대 교수가 지난 8일 선보인 토종개 바둑이인 ‘대박이’. 1년생으로 조선시대 민화에 나오는 바둑이를 빼닮았다.

“수십년 동안 노력 끝에 삽살개를 복원했는데, 그 과정에서 뜻밖에 완전히 멸종한 줄 알았던 털 짧은 옛날 토종개가 나온 겁니다. 조선시대 병풍과 민화 속에 있던 바둑이가 되살아났습니다.”

경북 경산시에 있는 삽살개육종연구소에서 지난 8일 만난 하지홍 경북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데리고 나온 개는 털북숭이 삽살개가 아니라 바둑이였다. 얼굴과 몸에 커다란 밤색 무늬가 있고 순해 보이는 뭉툭한 주둥이에 자잘한 점이 박혔다. 중간 크기 몸집에 귀는 누웠고 풍성한 꼬리는 섰는데, 붙임성이 있고 반짝이는 눈이 영리해 보였다.

바둑이는 우리 정서에 뿌리박은 토종개이다. “오빠는 학교로 갔다. 너는 나하고 놀자. 이리 오너라 바둑아. 이리 오너라.”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발행한 최초의 국어 교과서 ‘바둑이와 철수’는 영이의 이런 말로 시작한다.

b2.jpg »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발간한 첫 국어 교과서 ‘바둑이와 철수’.

하 교수는 삽살개 400마리를 기르는 이 연구소에서 털 긴 삽살개 품종을 완성하는 일과 함께 털이 짧은 품종의 고려개, 특히 바둑이를 새로운 품종으로 길러 내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2018년 개띠해를 맞아 토종개 복원의 가능성을 알아봤다.

―1985년 경북대 교수로 부임하면서 삽살개 복원사업을 시작했는데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까?

b3.jpg » 경북 경산시 삽살개연구소에서 복원한 삽살개. 신라 때까지는 단일 품종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후 1천년 이상 잡종화가 진행돼 토종개 유전자를 오롯이 간직한 개로 주목받고 있다.

“우리의 기억과 그림 속에 있던 삽살개 복원은 마쳤습니다. 그렇지만 외국 개와 견줘 경쟁력 있는 형질의 개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1992년 천연기념물 지정 이후 12대 이상 육종을 통해 8천마리 이상의 삽살개를 기르면서 좋은 형질을 골라 고정시키는 일이 거의 막바지에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삽살개와 함께 털 짧은 개가 나왔군요.

 “흥미롭게도 단모 개체들이 장모종인 삽살개 집단에서 3% 비율로 계속 태어났습니다. 일종의 부산물인 셈이지요.”

b4.jpg » 조선시대 화가 김두량이 그린 바둑이. 단모종 삽살개와 유사하다.

삽살개를 육종하는 과정에서 일정하게 나오는 단모종 삽살개의 하나인 바둑이. 김두량이 그린 개와 비슷하다.
 
―털 짧은 개는 삽살개의 원형과 다르니 없애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조상은 한 번도 의도적으로 개의 품종을 만든 적이 없습니다. 누렁이, 검둥이, 바둑이, 흰둥이 같은 여러 색깔과 모양의 중형 개들이 자유롭게 번식했는데, 털이 짧은 많은 개들은 그저 똥개였고, 일부 털 긴 개를 삽살개 또는 더펄개, 사자개로 부르면서 귀하게 여겼습니다. 왕실에서 귀하게 기르던 삽살개는 신라가 망한 뒤 일반에 퍼지면서 잡종화가 일어났습니다.”

―삽살개 복원의 목표는 신라 삽살개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신라 이후 1천년 이상 지나면서 삽살개는 순종·잡종 구별 없이 토종개가 된 것입니다. 우리 조상이 기른 삽살개는 다섯 마리 중 한 마리꼴로 털이 길게 태어난 잡종인 토종개이고, 복원한 삽살개는 인위적으로 형질을 고정시켜 순종으로 만든 품종입니다. 원형은 그림이나 시조 등에 남은 과거의 삽살개이지만 현대에 맞는 형질을 골라낸 것입니다. 복원 과정에는 과거의 철저한 고증, 신뢰성 있는 형질 고정, 미적 감각 등이 중요합니다. 세계적인 명견인 독일 셰퍼드도 150여년 전 독일 카를스루에 지방의 잡종 양치기 개 몇 마리를 원형으로 혈통을 고정시킨 것입니다.”

b5.jpg » 하지홍 교수(왼쪽)는 우리 전통의 토종개는 진돗개보다 바둑이에 가까웠다고 말한다.

―1960년대 말 경북대 탁연빈, 하성진 교수 등이 확보한 털 긴 토종개 30마리로 삽살개 복원에 나선 것은 말하자면 셰퍼드를 만들기 위해 자질이 우수한 양치기 개를 확보한 것과 마찬가지군요.

“단련해 강철도 만들고 선철도 만드는 일종의 원광석인 셈이었죠. 끊임없이 뒤섞이면서도 고유한 특성을 유지한 토종개의 ‘유전자 풀’이기도 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모피용으로 토종개 150만 마리를 죽였습니다. 행정력이 미치는 모든 곳에서 크고 좋은 개는 다 잡아간 셈이죠. 1970년대부터는 잘 크고 새끼 많이 낳는 일본 도사견을 많이 들여와 시골에서 토종개와 많이 교잡시켰고, 최근엔 서양품종이 섞이고 있습니다.”

b7.jpg » 복원한 어린 바둑이.

―삽살개 원종은 토종개 유전자의 마지막 원천인 셈이네요.

“중형 단모 토종개 혈통은 풍산개, 진돗개 등 산간오지나 섬에서 일부 살아남았고, 장모종으로는 전국에 분포하던 삽살개가 보존됐습니다. 다행히 삽살개 유전자 풀 속에 지금은 사라진 중형 단모 토종개의 형질이 들어 있었습니다. 비유하자면 낙동강 물을 담은 호리병이 제주까지 떠내려갔는데, 마개가 닫힌 덕분에 바닷물에 섞이지 않은 원래의 낙동강 물을 얻을 수 있게 된 셈입니다.”

―그 과거 낙동강 물이 고려개와 바둑이군요.

“그렇습니다. 250여년 전 조선시대 병풍 속에 앉아 있던 털 짧은 중형견인 바둑이, 누렁이, 검둥이가 삽살개로부터 태어나고 있습니다. 강아지까지 합쳐 70~80마리가 있는데, 형질이 잘 유지돼 털 짧은 개끼리 교배하면 100% 단모종이 나옵니다. 사실 삽살개 가운데 단모종과 장모종은 유전자의 염기서열 30억개 가운데 단 한 개 차이로 발생하는데, 짧은 털 형질은 열성유전되지만 빈도가 높아 대부분 단모종으로 태어납니다. 털 긴 개보다 훨씬 관리하기가 쉽고 건강합니다.”

b8.jpg » 삽살개를 육종하는 과정에서 태어난 다양한 빛깔의 단모종 삽살개. 지금은 사라진 토종개의 원형이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삽살개 보전이 토종개 복원으로 이어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요?

“조선시대 그림을 보면 단모종, 특히 바둑이가 많습니다. 삽살개를 처음 천연기념물로 지정할 때는 우선 털 긴 놈이라도 삽살개로 인정받아야겠다는 다급한 마음이었습니다. 털 긴 삽살개와 털 짧은 고려개나 바둑이는 동전의 양면처럼 전국의 토종개를 상징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보전과 복원에 관심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바둑이를 수도권에서 육종할 수 있다면 교육적, 치료적 가치도 높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사진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녹취 박지슬 교육연수생 sb0220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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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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