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나비가 7천만년 먼저 진화했다

조홍섭 2018. 01. 11
조회수 10715 추천수 1
2억년 전 가장 오랜 나방 비늘화석 발견
수분 섭취 위해 이미 긴 대롱 입 지녀

l1.jpg » 꽃이 등장하기 훨씬 전인 2억년 전 나비목 곤충의 비늘 화석을 찍은 전자현미경 사진. 바스 반 데 스쿠트부루헤 제공.
 
나비와 꽃은 서로를 돕는 대표적인 공생 생물이다. 나비는 꽃가루를 옮겨 식물의 번식을 돕고 대신 영양가 풍부한 꽃꿀을 먹는다. 나비와 나방은 꽃꿀을 효과적으로 빨기 위해 대롱 모양의 긴 대롱을 진화시켰다.

이런 상식을 뒤집는 발견이 이뤄졌다. 반 엘디지크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원생(연구 당시)은 독일에서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와 쥐라기 지층에서 꽃가루 화석을 찾고 있었다. 땅속에서 확보한 퇴적암을 분쇄해 산에 녹인 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작업을 하던 중 낯선 물체를 발견했다. 원시 나방의 비늘이었다.

나비목(나방과 나비)은 매우 인기 있는 연구분야이지만 진화 역사는 베일에 가려있다. 화석이 드물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정설은 최초의 꽃이 피는 식물이 등장한 1억3000만년 전 최초의 나비목이 갈라져 나왔다는 것이다.

l2.jpg » 화석으로 발견된 원시 나방과 같은 무리에 속하는 대롱 입이 있는 현생 나방의 표본. 호세인 라자에이 제공.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 발견한 나방 화석은 그보다 7000만년 전인 2억년 전의 퇴적층에서 나왔다. 발견한 비늘 화석은 70개였는데, 이 가운데 20개는 속이 빈 형태였다. 비늘이 다양한 것은 여러 종의 나비목 곤충에서 떨어진 비늘이 낮은 곳에 쓸려 들어 쌓였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2억년 전에 이미 다양한 나비목 곤충이 있었다는 것이다.

현생 나비목과 대조해 보면 긴 대롱 입을 지닌 나비목에서 모두 비늘의 중앙이 비어있다. 연구자들은 이를 통해 가장 오랜 나비목 곤충은 긴 대롱을 둘둘 만 형태의 입을 가졌을 것으로 보았다.

l3.jpg » 대롱 입을 지닌 현생 나방의 대롱과 거기 달린 비늘의 주사전자현미경 사진. 호세인 라자에이 제공.
 
l4.jpg » 2억년 전 원시 나방의 비늘 화석. 위 사진의 비늘 형태와 유사하다. 티모 반 엘디지크 제공.

그렇다면 꽃꿀도 아직 없을 때 대롱 입은 왜 진화했을까. 연구자들은 “덥고 건조하던 시기에 효율적으로 수분을 섭취하기 위해 대롱 형태의 입이 진화했을 것”이라고 논문에서 설명했다. 이후 원시 나비는 소나무 같은 겉씨식물이 공기 중의 꽃가루를 붙잡으려고 분비하는 당분 방울을 섭취했고, 백악기에 꽃이 피는 식물이 등장하자 꽃꿀을 빠는 본격적인 공생관계를 형성했을 것으로 연구자들은 추정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Timo J. B. van Eldijk et al, A Triassic-Jurassic window into the evolution of Lepidoptera, Sci. Adv. 2018;4: e170156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생존률 75%’ 보르네오 개구리…비결은 아빠의 헌신‘생존률 75%’ 보르네오 개구리…비결은 아빠의 헌신

    조홍섭 | 2018. 12. 11

    보르네오 개구리 수컷, 알 지키고 올챙이 업어 웅덩이 정착까지 ‘책임’ ‘성 역할 역전’…여러 암컷이 수컷 확보 경쟁, 암컷이 더 자주 울기도동물계에는 수컷이 ‘좋은 아빠’이자 ‘충직한 남편’ 노릇을 하는 종이 여럿 있다. 해마는 대...

  • 요즘 같은 기후변화가 사상 최악 멸종사태 불렀다요즘 같은 기후변화가 사상 최악 멸종사태 불렀다

    조홍섭 | 2018. 12. 07

    수온 10도 상승, 신진대사 빨라지는데 산소농도는 낮아져 떼죽음적도보다 고위도 지역 멸종률 커…현재 지구온난화와 같은 메커니즘적도 바다의 수온이 10도나 높아졌다. 바닷속의 산소농도는 80%나 줄었다. 삼엽충 등 바다 생물들은 숨을 헐떡이며 ...

  • 쥐라기 어룡, 온혈동물로 위장 색 띠었다쥐라기 어룡, 온혈동물로 위장 색 띠었다

    조홍섭 | 2018. 12. 06

    피부 화석 정밀분석 결과 지방층·색소 분자 확인깊고 찬물서 사냥, 태생…피부는 고래처럼 매끈원시 포유류 일부는 육지를 버리고 바다로 가 돌고래로 진화했다. 포유류가 출현하기 훨씬 전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파충류의 조상 중 일부가 바...

  • 물고기는 왜 낚시를 못 피하나, 구석기 때부터 쭉물고기는 왜 낚시를 못 피하나, 구석기 때부터 쭉

    조홍섭 | 2018. 12. 04

    낚시·그물·함정 등 어구는 감지·인식·학습 불허하는 ‘슈퍼 포식자’진화시킨 포식자 회피법 무력화…“물고기가 회피·학습하는 어업 필요”인류는 구석기 시대부터 물고기를 주요 식량으로 삼았다. 수 오코너 오스트레일리아 고고학자 등은 2011년 동남...

  • 젖 먹여 새끼 키우는 거미가 발견됐다젖 먹여 새끼 키우는 거미가 발견됐다

    조홍섭 | 2018. 12. 03

    중국서 포유동물 비견되는 깡충거미 육아 행동 발견젖에 우유보다 단백질 4배…수유가 생존율 높여‘포유류’는 새끼가 자라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젖을 먹여 기르는 동물을 가리킨다. 특히 사람처럼 오래 사는 사회성 포유류는 이런 육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