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나면 불씨 옮겨 사냥하는 ‘불새' 있다

조홍섭 2018. 01. 14
조회수 10270 추천수 1
불붙은 나뭇가지 다른 곳 옮겨 도망치는 쥐·도마뱀 등 사냥
원주민 불놓기 여기서 배웠나, 노래와 전통의식에 들어있어

b1.jpg » 검은 솔개 무리가 오스트레일리아 퀸즐랜드 도로변 들불 현장을 맴돌고 있다. 이들은 삭정이를 도로 건너로 옮겨 불을 퍼뜨리기도 한다. 딕 유센 제공

덤불과 풀로 덮인 열대 사바나의 초원지대에 들불이 나면 동물들은 불꽃과 연기를 피해 혼비백산 달아난다. 일부 포식자들에겐 뛰쳐나온 작은 동물 또는 불에 그슬린 사체로 배를 불릴 좋은 기회다. 그런데 꺼져가는 들불을 새로운 곳으로 옮기는 ‘불새’가 발견됐다.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의 열대 사바나에는 들불이 잦다. 5만년 전부터 이곳에 살아온 원주민들은 불을 놓아 새로 돋은 풀을 먹으러 오는 캥거루를 사냥했고 식용식물의 생장을 부추겼다. 이들은 새들이 들불을 퍼뜨리며, 실은 처음 불을 놓는 것을 조상에게 가르쳐줬다고 믿는다. 노래와 전통의식에 그런 내용이 남아 있다.

b4.jpg » 불이 난 곳에서 불씨가 남은 덤불을 발로 쥐고 새로운 곳으로 옮기는 검은 솔개. 최고 1킬로까지 옮긴다. 봅 고스포드 제공.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 연구자들은 원주민 인터뷰와 직접 관찰, 문헌 조사 등을 통해 실제로 3종의 솔개와 매가 들불을 확산시키는 구실을 한다는 것을 밝혔다. 이들 맹금류는 들불이 꺼져가는 곳에서 불붙은 나뭇가지를 부리나 발가락으로 움켜쥐고 최고 1㎞ 떨어진 곳에 떨어뜨려 새로 불이 일어나도록 했다. 불이 붙지 않으면 반복하기도 했고 여러 마리가 힘을 합치기도 했다.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들불을 피해 도망치는 쥐, 도마뱀, 곤충 등을 잡아먹기 위해서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새들은 냇물에 가로막혀 불이 사그라지면 개울 건너로 옮기기도 했고, 심지어 인가의 화덕에서 불붙은 나뭇가지를 훔쳐가기도 했다.

b2.jpg » 호주 북부의 사바나에는 들불을 옮기는 맹금류가 3종 확인됐다. 봅 고스포드 제공.

이런 행동은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의 가로 2400㎞, 세로 1000㎞의 넓은 범위에서 확인됐으나, 학계에 보고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자들은 들불 현장 접근이 위험하고, 들불 관리자에게 새들은 관심 밖이어서 그랬을 것으로 보았다. 실제로 일부 지역 소방당국은 원주민 소방대원들이 책임을 피하려고 새들 핑계를 대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연구자들은 “이런 행동이 아프리카 등 다른 지역에서도 있을 수 있다”며 “새들의 들불 옮기기를 잘 연구하면 열대 사바나의 진화와 인류의 불 사용 기원을 밝히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Mark Bonta et al, Intentional Fire-Spreading by “Firehawk” Raptors in Northern Australia, Journal of Ethnobiology, 37(4):700-718, DOI: 10.2993/0278-0771-37.4.700, http://www.bioone.org/doi/full/10.2993/0278-0771-37.4.700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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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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