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코영양 20만 떼죽음 원인은 세균 감염

조홍섭 2018. 01. 19
조회수 8412 추천수 0
2015년 전체 62%인 20만마리 떼죽음
혹한 뒤 고온다습 기상이 면역약화 불러

s1.jpg » 2015년 큰코영양 떼죽음 현장. 매일 수천 마리의 영양이 증상을 보인 지 몇 시간 안에 죽었다. 카자흐스탄 큰코영양 건강 합동 모니터링 팀 제공.

세계적 멸종위기종인 큰코영양이 떼죽음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2015년 5월 중순 카자흐스탄 초원지대를 둘러본 수의학자들은 경악했다. 이제까지 간혹 벌어진 떼죽음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였기 때문이다. 

주로 암컷과 갓 태어난 새끼들이 입에서 거품을 뿜고 설사를 하며 죽어갔다. 임신하거나 분만을 한 암컷이 먼저 죽고 새끼가 뒤를 따랐다. 죽은 어미의 젖꼭지에 매달린 새끼도 있었다.

s2.jpg » 감염사태가 일어난 것은 새끼를 낳기 위해 암컷이 대규모로 모인 집단에서였다. 감염은 어미에서 새끼로 이어졌다. 세르게이 코멘코, 세계식량농업기구(FAO) 제공.

수백㎞ 범위의 초원에서 매일 수천 마리의 큰코영양이 죽었다. 사망률은 100%였고, 시료를 채취한 뒤 구덩이에 사체를 묻고 서둘러 다음 몰살 지점으로 이동해야 했다. 

당시 현장 조사를 벌인 스테펜 주터 카자흐스탄 생물다양성보전협회 국제 코디네이터는 “출산 집단 전체가 몰살한 이번 떼죽음 사태의 규모와 속도는 전례 없는 일로 다른 종에서 관찰된 적이 없다”며 온라인 과학매체 ‘라이브 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s3.jpg » 영양의 떼죽음이 워낙 빠르고 광범하게 일어나 신속하게 사체를 매장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세르게이 코멘코, 세계식량농업기구(FAO) 제공.

3주일 동안 계속된 재앙은 6월초 수그러들었지만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가장 높은 보전등급인 ‘위급’으로 지정해 보호하는 큰코영양의 전체 개체수 가운데 62%인 약 20만 마리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이런 대참사의 원인을 둘러싸고 논란이 분분했다. 죽은 영양에서 공통으로 검출된 세균에 의심의 눈초리가 쏠렸지만, 이 세균이 흔한 장내세균이고 평소에는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 종류여서 의문은 가시지 않았다.

큰코영양의 떼죽음 원인을 조사한 국제 연구진의 첫 번째 보고가 나왔다. 리처드 코크 영국 왕립수의대 수의학자 등 연구자들은 11일 과학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실린 논문에서 이번 참사의 직접 원인을 출혈성 패혈증을 일으키는 세균(Pasteurella multocidat ype B) 감염이라고 확인하고, 감염이 번진 배경은 이례적으로 높은 습도와 온도라고 밝혔다.

s4.jpg » 조사단은 토양, 식물, 물, 곤충 등 자연환경뿐 아니라 가축 사육과의 관련성 등 다 학문적인 접근을 했다. 카자흐스탄 큰코영양 건강 합동 모니터링 팀 제공.

 연구자들은 참사가 일어난 겨울 혹한이 덮친 뒤 봄에 기록적인 습도와 강수량, 고온 상태를 보였고, 이것이 세균 번성을 낳았다고 추정했다. 큰코영양은 이런 이상기상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출산을 위해 한 데 모인 상태에서 세균에 감염돼 집단 폐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어떤 경로로 감염이 이뤄졌는지, 다른 스트레스나 바이러스 감염이 대규모 세균 감염의 방아쇠 구실을 했는지 등은 알 수 없었다고 밝혔다.

s5.jpg » 2015년 죽은 수컷의 두개골. 뿔은 한약재로 쓰기 위해 잘려나갔다. 카자흐스탄 큰코영양 건강 합동 모니터링 팀 제공.

연구자들은 출산 집단이 패혈증으로 집단 폐사한 사례가 1981년과 1988년에도 발생했고, 다른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떼죽음도 2010∼2011년과 2017년에 일어났다고 밝혔다.

유라시아 스텝지역에 서식하는 큰코영양은 혹독하고 변동이 심한 기후에 적응한 생활사를 영위한다. 겨울의 혹한과 여름의 가뭄 때 종종 떼죽음해 개체수가 급격하게 줄지만 이후 빠르게 군집을 회복한다. 새끼의 3분의 2가 쌍둥이인 것도 몰락에서 빠른 복원을 위한 적응이다.

s6.jpg » 큰코영양 새끼. 혹독한 기후와 수천㎞에 이르는 장거리 이동에 대비하기 위해 큰코영양은 체중 대비 가장 큰 새끼를 낳는 동물의 하나다. 카자흐스탄 큰코영양 건강 합동 모니터링 팀 제공.

이 동물의 유달리 길고 아래로 구부러진 코도 대륙성 기후에서 살아남기 위한 장치이다. 한겨울에는 찬 공기가 직접 폐에 닿지 않도록 덥히고, 반대로 여름엔 콧구멍 속의 혈관에서 혈액을 식히는 구실을 한다.

고대 영양의 모습을 간직한 큰코영양은 한때 카스피해에서 몽골에 걸친 유라시아의 방대한 스텝 초원지대에 널리 분포했지만, 남획과 서식지 파괴로 1920년 절멸 직전까지 몰렸다. 그러나 소련의 보전 노력으로 1950년엔 200만 마리까지 불었지만 소련 붕괴와 함께 한약재로 뿔을 팔기 위한 밀렵이 성행하면서 다시 멸종위기에 놓였다.

Philip Sclater_The_book_of_antelopes_(1894)_Saiga_tatarica.png » 1894년 필립 스클레이터가 그린 큰코영양 그림.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이 영양은 스텝 지역의 생태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지역에선 겨울이 워낙 추워 시든 식물이 썩지 않는데, 큰코영양이 이를 먹어 분해함으로써 영양분을 토양으로 돌려주는 구실을 한다. 큰코영양이 줄어 죽은 식물체가 늘어나면 대규모 산불의 원인이 될 수도 한다. 영양 자체는 늑대, 여우, 검독수리 등의 중요한 먹이가 된다.

s7.jpg » 큰코영양의 무리. 메마른 초원을 가로지르고 강을 건너며 수천㎞를 이동하며 살아간다. 세계적으로 가장 멸종위험 단계가 높은 ‘위급’으로 지정돼 있다. 야코프 페도로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패혈증을 일으키는 세균은 이 지역에 토착화했다”며 “앞으로 또 다른 떼죽음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또 기후변화와 함께 기상의 변동성이 커지고 강수량과 온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는 것도 영양에게 위협이다. 연구자들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밀렵 단속, 가축 방역, 영양 무리의 이동 경로 보장 등의 관리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Richard A. Kock et al, Saigas on the brink: Multidisciplinary analysis of the factors influencing mass mortality events, Kock et al., Sci. Adv. 2018;4: eaao2314, DOI: 10.1126/sciadv.aao2314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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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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