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에 쫓긴 얼룩말…미꾸라지처럼 뛰어야 산다

조홍섭 2018. 01. 25
조회수 9825 추천수 1
포식자 속도, 가속, 감속 능력 압도적
피식자는 저속 급격한 방향전환 유리

l1.jpg » 사냥감을 향해 달려드는 사자 암컷. 사자는 얼룩말보다 가속력은 37%, 감속력은 72%나 뛰어나다. 얼룩말은 속도를 높일수록 살 가능성이 떨어진다. 쉴퍼 쉐퍼드/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숨을 곳 없이 끝없이 펼쳐진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에서 초식동물이 사자나 치타로부터 살아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작정 속도경쟁만 한다면 느린 쪽은 모두 잡아먹히고 결국은 먹이가 없는 포식자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능력의 차이에도 포식자와 피식자가 공존할 수 있는 이유를 밝힌 실증적인 조사결과가 나왔다.

앨런 윌슨 영국 왕립수의대 동물학자 등 영국과 보츠와나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네이처’ 25일치에 실린 연구에서 야생상태의 포식자와 초식동물이 어떤 신체능력을 보이는지 특수 제작한 무선 측정기를 목걸이에 부착해 조사했다. 사자 9마리, 치타 5마리와 각각의 주요 먹이인 얼룩말 7마리, 임팔라(영양의 일종) 7마리에 측정기를 달아 5562차례에 걸쳐 사냥 질주 순간의 속도, 가속 능력, 감속 능력, 회전 능력을 측정했다. 또 각 동물의 뒷다리 근육 표본으로 근육이 어느 정도의 힘을 내는지도 측정했다.

그 결과 사자와 치타는 얼룩말과 임팔라에 견줘 잘 뛰는 육상 능력이 뛰어나, 근육힘은 20%, 가속력은 37%, 감속력은 72%나 우월한 것으로 드러났다. 회전 능력은 둘 사이에 비슷했다. 그렇다면 초식동물은 어떻게 이런 포식자를 피할까.

l2.jpg » 무선측정 목걸이를 착용한 얼룩말. 포식자보다 한발 앞서 가며 저속에서 급속한 방향전환으로 도망치는 게 최선이다. 앨런 윌슨 제공.

연구자들은 컴퓨터 모의조작 결과 초식동물이 먹이가 되지 않는 길은 느린 속도에 있음을 발견했다. 전력질주로는 승산이 없었다. 느린 속도로 달아나다 포식자가 접근하면 요리조리 방향을 트는 ‘미꾸라지 기동’ 전략이 초식동물에게 가장 유리했다. 특히 포식자가 붙잡으려는 마지막 순간에 날카로운 각도로 방향을 트는 전략이 최선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사냥에서 경주를 정하는 것은 피식자”라고 밝혔다. 초식동물은 포식자보다 한 발자국 앞서 언제 방향을 틀지 얼마나 빨리 달릴지를 결정한다. 포식자는 달리기 능력이 앞서기 때문에 초식동물을 가능한 한 빨리 달리도록 몰아대는 것이 유리하다. 속도가 빨라지면 회전반경이 크고 방향전환 각도가 작아지기 때문에 사냥감을 붙잡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이를 아는 초식동물은 속도를 높이지 않은 상태에서 비틀고 방향을 바꾸어 추격 불확실성을 높이는 전략을 쓴다. 실제로 측정 결과 얼룩말과 임팔라는 포식자가 추격하는 상황에서 최대 속도의 절반 정도밖에 내지 않았다.

l3.jpg » 치타의 발톱. 집어넣었다 뺐다 할 수 있어 재빠른 기동을 할 때 접지능력을 키워준다. 앨런 윌슨 제공.

이번 조사결과 사자가 정면 승부로 재빠른 임팔라를 추격해서 사냥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도 사자는 우연히 걸려든 기회가 아니면 임팔라는 거의 사냥하지 못한다.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에서 드러난 사자와 치타의 육상 능력은 먹이인 얼룩말과 임팔라의 능력과 밀접하게 맞춰져 있어 지속가능한 사냥 성공과 피식자와의 공존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며 “이는 진화적 군비경쟁의 결과”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Alan M. Wilson et al, Biomechanics of predator–prey arms race in lion, zebra, cheetah and impala, Nature 2018, doi:10.1038/nature25479, http://nature.com/articles/doi:10.1038/nature25479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지난 16년간 보르네오서 오랑우탄 10만마리 사라져지난 16년간 보르네오서 오랑우탄 10만마리 사라져

    조홍섭 | 2018. 02. 17

    열대림 벌채와 팜유 농장, 사냥 때문 개체수 절반 줄어남은 집단 절반이 100마리 이하, 35년 뒤 또 5만 줄 것인간과 가장 가까운 유인원의 하나인 오랑우탄이 1999∼2015년 서식지인 보르네오에서 10만마리 이상 줄어들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 세계 최고 희귀 나비 살린 비버와 사격장 화재세계 최고 희귀 나비 살린 비버와 사격장 화재

    조홍섭 | 2018. 02. 13

    숲 확산 막아 서식지인 여린 습지 조성희귀 나비 돌아오려면 교란까지 복원해야1983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신종 나비가 발견됐다. 1㏊ 면적의 서식지에 100마리가 지구 개체수의 전부였다. 네발나비과의 이 나비는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나비의...

  • 잡아먹자니 가루받이 안 되고, 파리지옥의 딜레마잡아먹자니 가루받이 안 되고, 파리지옥의 딜레마

    조홍섭 | 2018. 02. 12

    파리지옥, ‘꽃과 덫 딜레마’ 공간격리로 풀어높은 가지 꽃엔 날아서, 낮은 덫엔 걸어 접근식충식물은 척박한 토양에서 부족한 영양분을 동물을 잡아먹어 보충하도록 진화했다. 그러나 식충식물도 번식하려면 꽃가루받이를 해 줄 동물이 필요하다. 문...

  • 두꺼비 뱃속에서 폭발 일으켜 탈출하는 방귀벌레두꺼비 뱃속에서 폭발 일으켜 탈출하는 방귀벌레

    조홍섭 | 2018. 02. 07

    삼킨 2시간 뒤 토해 살아나기도꽁무니서 화학 결합 자극성 폭발폭탄먼지벌레는 1924년 일본인 곤충학자 오카모토가 제주도에서 처음 발견해 학계에 보고한 길이 1∼2㎝의 작은 곤충이다. 그러나 작다고 얕보다간 큰코다친다. 이 벌레는 세계 최고의 ...

  • 하루 1만2천번 '박치기' 딱따구리도 뇌손상 입는다?하루 1만2천번 '박치기' 딱따구리도 뇌손상 입는다?

    조홍섭 | 2018. 02. 05

    뇌진탕보다 최고 14배 충격 딱따구리의 ‘두드리기’뇌 손상 없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새로운 이론 나와딱따구리는 단단한 나무를 부리로 쪼아 구멍이나 소리를 낸다. 먹이를 잡고 둥지를 지으며 자신의 영역을 널리 알리는 데 꼭 필요한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