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보면 코끼리 ‘벌벌’, 농민과 코끼리 상생 길 텄다

조홍섭 2018. 0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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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이어 아시아코끼리에서도 억제 효과 확인
민감 부위 쏘일까 달아나, 농민은 꿀과 가루받이 소득

e1.jpg » 성난 꿀벌 소리를 들은 아시아코끼리가 불안해하며 동료의 입속에 코를 대면서 상황을 확인하려 하고 있다. 아시아코끼리가 꿀벌 소리를 무서워한다는 실험 결과가 처음으로 나왔다. 쉐르민 드 실바 제공.

상아를 노린 밀렵만이 코끼리를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 넓은 지역을 이동하는 습성이 있는 코끼리의 서식지가 워낙 움츠러들고 조각나는 바람에 잦아진 코끼리와 지역주민 사이의 충돌도 매우 중요한 위협이다. 특히 숲 속의 화전이나 작은 마을은 걸핏하면 코끼리의 습격을 받아 농작물이 몽땅 망가지거나 사람이 목숨을 잃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은 반드시 보복에 나서기 때문에 코끼리의 죽음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코끼리와 가난한 농민의 비극적 충돌을 막을 방법이 없을까. 루시 킹 영국 옥스퍼드대 동물학과 연구원은 케냐에서 현지연구를 통해 꿀벌을 이용해 코끼리와의 충돌을 피하고 농민에게 소득을 안기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농경지와 마을 둘레에 10m 간격으로 꿀벌 벌통을 매다는 간단한 방법이었다.

team-with-fence.jpg » 케냐에 설치된 코끼리 퇴치 꿀벌 울타리. 적은 비용에 설치할 수 있고 효과가 큰 것으로 밝혀졌다. 루시 킹 제공.
 
아프리카코끼리는 큰 덩치에도 아프리카꿀벌을 아주 무서워한다. 피부가 약한 눈, 코뒤, 귀밑 등에 쏘일까 봐 성난 벌이 내는 ‘붕붕∼’ 소리를 들으면 혼비백산 달아난다. 이 방법은 놀라운 효과를 발휘했다. 코끼리 피해를 막았을 뿐 아니라 벌통에서 채취한 꿀을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240m 길이 경계선에 벌통을 설치하는 비용은 800달러(약 80만원)에 불과했다. 그동안 주민들은 별 성과 없이 고춧가루를 뿌리거나 가시덤불을 치고, 아니면 횃불을 밝히고 냄비를 두드리며 밤을 새워야 했다(▶관련 기사: 코끼리, 꿀벌만 보면 덩칫값 못하고 ‘벌벌’).

kenya.jpg » 녹음된 성난 꿀벌 소리를 틀어주자 뒤로 물러나 전전긍긍하는 아프리카코끼리 무리. 루시 킹 제공.

그런데 아프리카에서 효과를 낸 꿀벌 퇴치 기법을 아시아코끼리에 쓸 수는 없을까. 아시아코끼리의 상황은 아프리카코끼리보다 훨씬 심각하다. 아시아코끼리의 서식지는 지난 100년 동안 95%가 사라졌다. 개체수는 90%가 줄어 3만 마리만 남았는데, 그곳에 인류의 20%가 산다. 

서식지는 잘게 쪼개져 농민과의 충돌이 빈발한다. 2012년 인도에서 300명이 코끼리 때문에 사망했고 스리랑카에서도 60명이 숨졌다. 충돌 과정에서 코끼리 250마리도 죽었다.

e2.jpg » 아시아코끼리 무리. 아프리카코끼리보다 더 심한 멸종위험에 놓여 있고, 서식지가 잘게 쪼개져 농민과 충돌도 잦다. 쉐르민 드 실바 제공.

킹 박사 등 연구자들은 아시아의 토종벌과 아시아코끼리 사이에도 아프리카에서와 같은 효과가 나타날지 시험해 보기로 했다. 스리랑카의 우다 왈라웨 국립공원은 아시아코끼리의 주요 서식지인데 밭과 농가가 공원경계를 빙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최적의 연구장소였다.

 킹 박사는 “아시아는 인간과 코끼리의 충돌이 아프리카보다 훨씬 심하고 아시아코끼리는 아프리카코끼리보다 약 10배는 더 큰 멸종위험에 놓여 있다”며 “만일 이 연구결과를 코끼리와 살아가는 아시아 농촌에 적용해 마을 기반의 벌통 울타리 시스템을 수립하게 한다면 아시아코끼리 보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옥스퍼드대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Mickey with eles UW.jpg » 스리랑카에서 꿀벌 소리로 아시아코끼리의 반응을 연구하는 모습. 루시 킹 제공.

실험 결과는 긍정적이다. 연구자들은 28곳에서 아시아코끼리 120마리에게 녹음된 성난 꿀벌 소리를 들려주고 반응을 기록했다. 꿀벌 소리를 들은 코끼리는 자연적인 배경소음을 들은 코끼리보다 더 자주, 더 멀리 물러났다. 단독생활을 하는 수컷은 암컷보다 말썽을 많이 일으키는데, 물러나는 거리가 더 길었다. 꿀벌 소리를 들은 코끼리들은 또 불안감을 표시하며 코를 옆 코끼리의 입에 대 확인을 요청하는 행동을 자주 했다.

현재 스리랑카에서는 벌통 울타리로 코끼리와 마을 주민의 상생을 도모하는 시험 프로젝트가 10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킹 박사는 “벌통 울타리가 코끼리의 침입을 완전히 막아주지는 못하겠지만 꿀벌은 농민에게 꽃가루받이 서비스와 꿀과 밀랍을 파는 지속가능한 수익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Honey-Jar-cropped-s2.jpg » 케냐에서 생산되고 있는 ‘코끼리 친화적 꿀’이라는 상표를 단 꿀. 루시 킹 제공. 스리랑카에서도 비슷한 상품이 나올 예정이다. 루시 킹 제공.

이미 꿀이 생산되고 있으며, 주민에게 양봉 지식과 꿀 따는 기법을 전수하는 워크숍도 열렸다. 스리랑카 말고도 타이, 인도, 네팔 등 다른 아시아코끼리 서식지에서도 벌통 울타리 협력사업이 추진 중이다. 이 연구는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 22일 치에 실렸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King, L., Pardo, M., Weerathunga, S., Kumara, T.V., Jayasena, N., Soltis, J. and de Silva, S. (2018) Wild Sri Lankan elephants retreat from the sound of disturbed Asian honey bees. Current Biology 28, R51-R65, January 22.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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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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