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돌보는 어미 새 보면 눈물 납니다”

조홍섭 2018. 02. 19
조회수 5846 추천수 0
인터뷰 김성호 서남대 교수

산속에서 50일 내리 둥지 지켜보는
자신에게는 가혹하지만
자연에 따뜻한 ‘김성호 류’
전공 시작 못 한 아픔 있어

오지 산골짜기 작은 학교라도
‘자연강의’ 연 200회 달려간다
학교 떠나도 저술과 강연으로
생태작가의 길 이제 시작이다


512.jpg » 한 장소에 가만히 있으면서 수십일 동안 새의 번식 과정을 지켜 본 김성호 서남대 교수. 그의 관찰 방식을 ‘김성호 류’라고 부른다. 두루미를 관찰하기 위해 요즘 강원도 철원을 드나드는 김 교수를 지난 6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10년 전 김성호 서남대 교수의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 일기’라는 책이 나왔을 때 자연관찰 전문가 사이에서 “놀랍다”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어떤 다큐멘터리 감독도 둥지를 틀어 알을 품고 새끼를 키워 떠나보낼 때까지 50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컴컴한 새벽부터 어두운 밤까지 번식행동을 관찰한 사람은 없었다. 하루 서너 시간밖에 자지 않고 한 점 둥지를 응시하는 이런 수도자의 고행 같은 관찰 방식을 이 분야에서 ‘김성호 류’로 부른다.

그는 큰오색딱따구리에 이어 동고비는 2년에 걸쳐 80일, 까막딱따구리도 2년에 걸쳐 180일 동안 이런 식으로 관찰했다. 그러나 단지 ‘무식한’ 방법만 특별한 건 아니다. 그는 학계에 한 번도 보고되지 않은 둥지 쟁탈전, 먹이 물어오는 빈도, 암수 교대 간격과 횟수 등 번식행동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자연을 바라보는 그의 따뜻한 시선과 아름다운 글을 담은 책은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고 청소년 사이에서 전국적인 인기 강사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가 몸담은 서남대는 부실대학의 대명사로 이달 말로 폐교돼 문을 닫는다. 그는 6일 인터뷰에서 “창립 때부터 참여한 교수로서 책임감을 느낀다”면서도 그동안의 마음고생에서 벗어나 생태작가의 길을 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철원은 새들의 세계적 무대

27797963_1569852519736320_7217073036679668025_o.jpg » 김성호 교수가 최근 철원에서 찍은 독수리 사진.

-요즘 강원도 철원에서 뭘 관찰하나요.

“두루미와 맹금류를 보고 있습니다. 철원은 세계적으로 귀한 친구가 많이 오는 공개된 곳이지요. 두루미와 재두루미 등 두루미 종류를 보는 게 첫째 목적이고, 독수리, 흰꼬리수리, 참수리가 두 번째죠. 이들 세 가지 맹금류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이 세계에 흔치 않습니다.”

-우리만 모르는 보물 같은 곳이군요.

“이처럼 아름다운 곳이 있다는 게 기뻐요. 전북 남원에서 6시간 거리지만 행복한 마음으로 오갑니다.”

-딱따구리나 동고비처럼 집중적으로 관찰하나요?

“번식 일정이 아니어서 이어서 볼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동트고 해 질 때까지는 봅니다. 철원 조류 관찰대에 새벽 5시에 나가 어둠 속에서 두루미가 아침을 어떻게 맞는지 기다립니다. 사진 찍는 분들은 해가 뉘엿뉘엿 지면 모두 갑니다. 셔터 속도 안 나온다고. 저는 맨눈으로 안 보일 때까지 지킵니다. 두루미는 아주 캄캄할 때까지 움직이거든요. 사진을 찍을 수 없을 때는 눈으로 봅니다. 어떤 때는 밤새워 보기도 해요.”

27500420_1557726027615636_7757475536061040649_o.jpg » 기다리는 자만이 촬영할 수 있는 두루미의 밤하늘 비상 못습. 김성호 교수가 최근 철원에서 촬영했다.

-철원에 두루미 탐조 시설이 잘 갖춰져 있죠.

“제가 사람들 많은 데 가는 것은 철원이 유일해요. 조류를 관찰하는 컨테이너가 5개 있는데, 사진 찍기가 가장 안 좋아서 인기가 없는 곳에 자리를 잡죠. 기다리면 눈앞에서 세계적인 공연이 펼쳐집니다. 입장료가 1만5000원인데 1만원은 지역 상품권으로 돌려줍니다. 두루미의 세계적 공연치고는 싼 편이죠.”

-두루미와 맹금류 관찰 결과도 책으로 엮어냅니까.

“그럴 생각인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벌써 10년 넘게 보았고요. 이제 자유인이니 시베리아와 몽골의 두루미와 맹금류 번식지까지 다녀와 한살이를 정리해 보고 싶어요.”

죽을 힘 다해 쓴 ‘큰오색딱따구리’ 책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 일기’를 낸 지 10년이 됐습니다.

“그 책은 사실 17년 걸려 쓴 책입니다. 이것저것 준비하다 죽을 힘 다해서 처음 쓴 책이에요.”

-서남대에 들어간 이후의 기간이군요.

“저는 생태 전공이 아니라 광합성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등의 실험연구를 하는 식물생리학 학위를 했습니다. 새라고는 참새, 까치, 까마귀, 제비, 꿩 등 5가지만 알았어요. 1991년 서남대에 갔는데 실험실이 텅 비었더군요. 학교를 옮기는 게 정답인데 그걸 못했어요. 학생들한테 ‘이런 줄 모르고 왔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어요. 내 전공은 시작도 못 하고 포기했죠.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안 하는 모습 보일 순 없어 내 몸으로 할 수 있는 걸 찾았지요. 다행히 학교가 지리산과 섬진강 품에 있어서, 주변에 있는 들꽃, 나무, 곤충, 양서파충류, 버섯까지 하나씩 다가가 공부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17년 보냈는데도 책 한 권 못 내겠더라고요. 전공자 벽을 넘을 수 없어서. 무엇 하나 새로운 게 없었죠. 그러다가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자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2007년 큰오색딱따구리를 지리산에서 우연히 만났어요. 둥지 파고 알 낳아 품고 그보다 오래 기를 텐데, 이 모습을 가끔 들여다보는 사람은 널렸지만, 새벽부터 밤까지 본 사람은 고맙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가자’고 마음먹었죠. 17년 독학하던 마음으로 기록했어요.”

-그게 쉽지 않은 일인데.

“새벽 3시에 일어나 종일 지켜보는 일이 내 체질에 맞는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학교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뭔가 해야 한다는 절박함도 있었고요. 그때 딱따구리를 만난 건데, 실은 제 선친이 목수여서 15살부터 80까지 나무를 두드렸으니 딱따구리로 사신 셈이네요. 큰오색딱따구리의 부성애를 보며 아버지 생각도 나고…”

wp04.jpg » 큰오색딱따구리 수컷. 암컷보다 더 헌신적으로 새끼를 기른다. 김성호 교수 제공

-큰오색딱따구리 알 품는 시간은 수컷이 암컷보다 3배 길고, 까막딱따구리는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오는 게 아니라 게워 먹이고…학계에 처음 알려진 내용 아닌가요.

“그럴 겁니다. 조류 전문가인 교수나 연구원 누구도 산에서 몇 달씩 지낼 수 없죠. 저도 수업 빼고 모든 시간을 다 들이거나 아예 휴직했으니까요. 우리나라에서 번식 일정을 함께 하려면 직장이 없어야 해요, 아니면 그게 직장이거나. 그런 면에서 우린 몹시 가난한 나라예요. 다른 개도국에서도 하는 일인데. 최소생계비 보장해 줄 테니 산에서 일 년 살라면 할 텐데, 그게 안 되잖아요.”

-학계의 반응은 어땠어요.

“전공자도 아니면서 번식 생태에 관한 책을 낼 때 굉장히 망설이고 조심스러웠어요. 번식에 관한 것은 아주 확실한 것만 쓰고 서정적인 내용이 많았죠. 그런데 아무 반응이 없더라고요. 동고비 책은 2년 걸려 준비 많이 했고 작심해 냈는데도 반응이 없었습니다. 세 번째 책 낸 뒤 전공자로부터 ‘부끄러워 말 못한다’는 반응을 전해 들었죠.”

nuthatch25.JPG » 진흙을 물어와 딱따구리의 둥지를 좁혀 자신의 둥지로 쓰는 동고비의 리모델링 과정. 김성호 교수 제공

-동고비가 딱따구리 둥지 리모델링해 쓰는 과정 등은 세계적 저널에 내도 될 것 같던데, 제안이 없었나요?

“논문 내라는 학자는 있었죠. 그런데 번식 생태 논문 내는 게 굉장히 위험해요. 까막딱따구리는 10년 가까이 보고 있고, 다른 딱따구리도 여러 해 보고 있지만, 개체마다 차이가 생각보다 커요. 쉽사리 일반화하기 힘들죠.”

-글을 보면 보통 과학자와 달리 부성애, 모성애, 헌신, 따뜻함, 부부 사이의 신뢰를 많이 그립니다. 과학자들은 관찰 대상의 의인화와 감정이입을 경계하는데…

“인정합니다. 하지만 자연을 과학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저는 생명 자체를 따뜻한 시선으로 보는 편입니다. 글 쓸 때 ‘나는 이렇게 느낍니다, 내겐 이렇게 보입니다’라고 하지 이렇다저렇다 못 박지 않습니다.”

-새를 관찰하면서 이기적이고 냉혹한 측면은 기록에서 빼는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번식행동을 주로 다뤄 그런지 주로 따뜻한 이야기를 쓰는 건 맞습니다. 누구라도 번식 과정을 지켜보면 울지 않을 수 없어요. 새뿐 아니라 동물을 본능이라는 단어 하나에 다른 많은 걸 묻어버리는 거 같아 아쉽습니다.”

한해 200번, 청소년 상대 자연강의

-교수를 그만두면 무어라 불러야 하지요?

“제 글을 꼼꼼히 읽고 조언을 해 주는 친구가 있는데, 학교에서 못한 일 자연 속에서 이루라고 ‘생태작가’로 지어 주었어요.”

-학교를 떠나면 홀가분하겠지만, 생계는 어떻게 꾸립니까.

“기본적인 생활을 할 정도의 연금이 나옵니다. 인세와 강연 소득도 도움이 되고요. 자연에 깃든 생명과 만나는 경비만 있으면 되니까요. 그동안 현직에 있을 때 강연료 가운데 경비를 뺀 나머지는 책을 사서 다 선물했습니다. 애초 강연료 많이 주는 강의는 가지도 않았고 주로 초·중·고 대상인데 아무리 멀거나 작은 학교라도 학생 만나러 다 갔어요. 이제는 직장이 없어졌으니 강연료로 선물하는 건 못할 것 같네요(웃음).”

-페이스북에 보니 김 교수의 강연을 들은 이가 “과학 강연 듣고 울고불고 난리인 모습은 처음”이란 소감을 올렸던데요.

“초·중·고생 말고 어른은 교사와 환경운동가 두 부류에만 강연을 해요. 어른에게는 새들의 번식 과정을 얘기하죠. 새끼를 위해 헌신하는 어미 새 얘기를 하면서 제가 먼저 울컥하고 듣는 어른들 많이 울지요. 학생들에게는 관찰한다는 것이 그 대상을 제대로 사랑하는 것이란 취지의 얘기를 해요. 관찰은 이렇게 한다, 관찰을 통해 나를 만난다, 나를 만났더니 세상이 나를 만나러 와주더라, 이런 얘기죠.”

-강연은 얼마나 자주 합니까.

“겨울방학인 1∼3월을 빼고 연간 200회 정도 해요. 오지에 있는 작은 학교라도 직접 운전해 찾아갑니다. 하루 1000㎞ 넘게 운전하는 날이 많았죠.”

“새로 얻은 제자가 기특해요”

사진7-1.jpg » 자연에 대한 간섭은 최소화하고 자신에 대해서는 최대한 엄격하고 가혹한 것이 ’김성호 류’의 자연 관찰법이다. 은사시나무 둥지로 날아드는 까막딱따구리. 김성호 교수 제공.

-애써 공부한 전공을 한 번 살려보지도 못하고 문을 닫았으니, 학교가 밉지요?

“설립자가 밉고, 제대로 바꾸지 못한 저 자신이 밉지요. 학생들, 특히 졸업생들한테 정말 미안해요. 일일이 붙잡고 사죄할 수도 없고. 입학하는 3월에는 난방이 안 돼 춥다고 해요. ‘고교 때까지 공부 안 한 대가다. 인정하자. 나도 공부 덜해 여기 왔다. 4년 죽어라 공부해서 따뜻한 데로 가자’, 이렇게 얘기하곤 했어요. 아이들이 인성은 좋은데 학력이 부족해요. 기초영어부터 다시 했어요. 2학년까지 마치고 3∼4학년엔 제대로 전공하자면서…”

-대중 서적을 읽거나 대중강연을 듣는 청소년들이 학생을 대신하는 셈이군요.

“실제로 제 책을 모두 외는 아이가 있더군요. 에스비에스(SBS)의 ‘영재발굴단’이란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새를 사랑하는 아이’ 남재우 군이었어요. 제주에 사는데 촬영팀에 저를 꼭 보고 싶다고 했대요. 제가 연락을 받고 갔는데, 누군지 밝히지 않고 물새를 관찰하는 재우 곁에 다가가 함께 새를 보다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책이 뭐냐’고 물었어요.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 일기’라고 대답하더군요. 다른 사람 책을 대면 그냥 돌아올 생각이었는데(웃음). 내가 그 김성호라니까 너무 기뻐 펑펑 울더군요.”

-방송 출연 이후에도 관계를 이어갔나요?

“방학 때 남원으로 초청했고, 거제에 참수리 관찰하러 몇 번 갔어요. 중1이 되는데 이번에는 부모와 함께 아예 제가 있는 남원으로 이사 온대요. 재우 오는 바람에 학교가 문 닫았지만, 남원에서 1년은 더 있을 생각입니다. 영재라도 한 분야만 잘해서는 안 된다고 봐요. 그래서 글쓰기와 운동 많이 시키고, 감성도 중요하니 피아노 정도는 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더니 학원 바로 다닌답니다. 부모가 아무리 하라 해도 안 하더니…(웃음).”

512 (1).jpg » 조홍섭 기자(오른쪽)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성호 교수. 신소영 기자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이 많아져서 그런지 동물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동물을 만족을 얻는 소비재처럼 대하는 태도가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새를 찍는 사람이 많이 오는 철원에서도 그런 걸 느껴서 마음이 아주 아파요. 두루미를 생명으로 보지 않는 거죠. 화도 나면서, 내 안에는 저런 면이 없나 돌아보게 되죠. 사람이나 새나 생김새가 다를 뿐 같은 생명체인데 말입니다.”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차이밖에 없다는 얘기군요.

“사람에게 예의 지켜야 하듯 동물에게도 마땅한 예의가 있는데, 그냥 사진 찍기 위한 놀잇감 정도로 간주하는 게 현실입니다. 아주 심각해요. 왜 그런가 생각해 봤더니 어릴 때부터 그런 교육 자체를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에요. 유럽에서는 탐조라 하면 쌍안경이나 필드 스코프로 보는데, 우리는 사진기로 찍어야 하잖아요. 맨눈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바보가 나밖에 없구나 생각하면 안타깝죠. 좋은 사진 얻기 위해 새들에게 가혹하게 대하는 걸 노하우라고 아는 풍조가 문제예요. 책을 내고 강연을 하는 이유의 하나도 그런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인간만 사는 게 아니지 않나, 서로 다른 생명이 더불어 사는 게 아름답지 않냐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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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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