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로 만든 ‘다이빙벨’은 어떻게 탄생했나

조홍섭 2018. 03. 05
조회수 11004 추천수 1
경기 연천에서 발견된 ‘물거미’
수초에 매단 공기주머니로 호흡
빙하 녹은 습지서 고립·진화했지만
이곳에 살게 된 원인은 수수께끼

15만년 전 용암이 호수 만들었고
홍수 때 댐 범람하며 습지 형성
물속에서 적응한 거미가 탄생했다


m1.jpg » 물속에서 생활하는 유일한 거미인 물거미는 육상 생태계가 급격하게 습지로 바뀐 곳에 고립돼 진화했다. 공기를 배에 머금어 둥지로 나르는 암컷의 모습이다. 이상영 교수 제공

평생을 물속에서 사는 유일한 거미인 물거미(천연기념물 제412호)는 우리나라에서 오직 경기도 연천군 은대리의 습지에만 산다. 육상 생태계가 급격히 습지로 바뀐 지역에 분포하는 물거미가 어떻게 한탄강변에 서식하게 됐을까. 또 물거미 서식지는 강바닥으로부터 30~40m 위에 펼쳐진 평야 지대인데, 어떻게 이런 곳에 습지가 생겼을까. 이런 수수께끼를 풀 일련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다이빙벨 거미’의 독특한 생태
 
물거미는 공기를 호흡하지만, 온전히 물속에서 사냥하고 생활하며 번식한다. 그 근거지는 수초에 짓는 물속 둥지다. 물거미는 물 밖에서 배와 다리의 털 사이에 공기를 머금은 뒤 물속에 지은 방수 거미줄로 만든 공 모양의 주머니에 모은다. 영어로 이 거미를 ‘다이빙벨 거미’로 부르는 이유이다. 공기 둥지를 근거지로 삼아 수컷은 활발히 돌아다니며 사냥하고, 암컷은 둥지에 잠복해 먹이를 기다린다. 암컷은 공기주머니 속에서 알을 낳고 새끼가 자라 독립할 때까지 기른다. 산소가 부족하면 밖에 나가 신선한 공기를 묻혀와 보충한다. 최근에는 이 공기주머니가 물속에 녹아 있는 산소를 흡수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사실상 ‘물속 허파’ 구실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m2.jpg » 물거미의 공기주머니. 공기를 저장하는 공간이지만 스스로 공기 조절을 하는 ‘몸 밖 허파’ 구실도 한다. 이상영 교수 제공

이처럼 물속에 완벽하게 적응한 물거미도 ‘일광욕’을 한다. 연천 물거미 서식지에서 현장 연구를 수행해온 이상영 가톨릭관동대 지리교육과 교수는 “일교차가 큰 봄과 가을 아침 햇빛이 비칠 때 물거미가 육상의 풀잎 위에서 장시간 움직이지 않고 일광욕하는 것을 종종 관찰했다”며 “체온 유지를 위한 것이거나 쇠약해진 개체가 공기주머니 유지가 힘들어 육상에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m2-1.jpg » 온전히 물속 생활을 하는 물거미가 종종 물 밖에 나와 일광욕을 하는 행동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이상영 교수 제공.

m3.jpg » 수조에서 배를 위로 향한 채 배영을 하는 물거미 암컷. 이상영 교수 제공

또 물거미가 헤엄칠 때는 몸을 뒤집은 배영을 주로 한다는 사실도 눈길을 끈다. 물거미는 물속 또는 수면 위에서 하늘 쪽을 바라보며 헤엄을 쳤다. 이 교수는 “물거미의 배영은 수면 위 공중과 육상의 천적에 대응하는 행동으로 육상 생활의 경험이 각인돼 유전된 것으로 생각된다”며 “기온이 낮고 햇빛이 비칠 때는 수면에 거꾸로 드러누워 일광욕과 천적 경계를 동시에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물거미의 이런 행동은 세계적으로 처음 보고되는 것으로, '한국지형학회지' 최근호에 실린 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교수와 이 교수의 논문에 소개됐다.

한탄강 메운 용암이 만든 용암호

m4.jpg » 연천에는 30~40m 깊이로 쌓인 용암층을 가르고 한탄강이 흐른다. 한탄강의 지류인 차탄천의 모습. 물거미 서식지는 차탄천이 흐르는 강바닥에서 수십미터 위 평야에 형성된 습지에 있다. 이상영 교수 제공..

m5.jpg » 연천군 은대리 물거미 서식지 위치(붉은 부분). 주변에 도로와 배수로가 거미줄처럼 놓여 있다. 이상영 교수 제공.

물거미는 굴뚝거미과에 속하며 육지에 살다가 갑자기 습지로 바뀐 곳에서 오래 고립돼 진화했다. 세계적으로 노르웨이 등 북유럽부터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를 거쳐 일본까지, 주로 빙하기가 끝나면서 습지가 형성된 곳에 분포한다. 그런데 한탄강변은 습지가 생기기 힘든 지형이다. 북한 땅인 강원도 철원에서 약 50만년 전과 15만년 전 여러 차례 용암이 분출해 옛 한탄강을 따라 흘렀다. 용암은 전곡에서 깊이가 20~30m에 이를 정도로 양이 많았다. 구멍이 숭숭 뚫려 물이 잘 빠지는 용암대지에 어떻게 습지가 생겼을까.

옛 한탄강을 흐르던 용암은 정체하면서 지류를 따라 상류로 역류하기도 했다. 용암은 전곡 근처에서 차탄천을 따라 거슬러 오르며 강을 메웠다. 이민부 교수는 연천군 일대에 호수 퇴적층이 광범하게 나타나는 데 주목했다. 역류한 용암이 차탄천 하류를 가로막아 댐을 형성하자 상류에 큰 호수가 생긴 것이다. 이 교수는 “용암댐 호수는 연천읍에서 북쪽으로 신서면까지 약 8~10㎞, 동쪽 동막리 아미천 방향으로 3㎞에 이르는 곡저평야에 최대 깊이 12m 규모로 형성됐다”고 말했다.

m6.jpg » 옛 차탄천의 한탄강 유출구가 용암으로 막히자 현재의 연천읍 일대는 대규모 호수로 바뀌었다. 오른쪽이 옛 호수의 추정 위치. 상류에서 흘러드는 물은 댐을 흘러넘치면서 다량의 퇴적물을 쌓아 습지가 형성되는 기초를 이뤘다. 이민부 교수 제공

이 교수는 이 호수가 약 2만년 동안 유지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유출구가 막힌 호수는 홍수 때마다 범람해 흙탕물과 토사를 전곡 용암대지로 흘려보냈고, 용암댐 일대에 점토층을 퇴적시켰다. 점토층이 물빠짐을 억제하면서 이 일대는 차츰 습지가 됐다. 연천 일대에 대규모 논이 조성될 수 있었던 것도 이때 형성된 점토층 덕분이다. 그리고 물거미의 서식환경도 마련됐다. 이민부 교수는 2007년 <대한지리학회지>에 실린 논문 등을 통해 이 점토가 중국이나 육지였던 황해가 아닌 용암댐 호수에서 기원했음을 과학적으로 밝혔다. 하천이 용암댐을 깊게 침식해 현재의 차탄천이 흐르면서 용암호는 사라졌다.

서식지가 위험하다

m10.jpg » 지난해 정비한 은대리 물거미 서식지 모습. 외래종 식물을 제거하고 육지화한 곳에 깊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그러나 서식지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이곳은 물거미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는다. <한겨레> 자료사진

m7.jpg » 얕은 물에 작은 수초가 빽빽하게 자라 물거미가 숨어 살기 적합한 물거미 서식지 모습. 이상영 교수 제공

빙하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경기도 연천에 물거미가 살게 된 것은 용암 분출과 역류 등 지질·지형학적 우연이 겹친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 서식지는 사람의 영향으로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연천과 철원의 용암대지는 일제강점기 논으로 개간되면서 습지가 대부분 사라졌다. 1995년 물거미가 처음 발견된 것도 과학교사 임헌영씨가 전차 바퀴 자국에 만들어진 얕은 물웅덩이에서였다. 문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후에도 제대로 된 보호관리가 되지 않고 있는 점이다.

m8.jpg » 수컷 물거미가 참실잠자리 애벌레(수채)를 사냥한 모습. 그러나 물거미는 다른 물속 동물의 먹잇감이어서 이들이 은신할 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 이상영 교수 제공

m11.jpg » 도로와 배수로가 물거미 서식지에 인접해 있어 안정적인 습지 유지를 위협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무엇보다 습지가 유지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핵심 서식지역에 포장도로와 관개수로가 개설돼 있다. 도로의 열기와 바람이 습지의 수분을 날려버리고, 관개수로는 지하수위를 낮춰 습지를 말린다. 물거미의 생존환경 조성도 중요하다. 물거미는 길이 1~1.5㎝의 작은 생물이어서 잠자리 애벌레(수채) 등 수서곤충과 개구리, 물고기에 잡아먹힌다. 이상영 교수는 “덩치 큰 천적이 활동하기 힘들도록 기장대풀처럼 잎이 많은 수초가 빽빽하면 물거미가 잎 사이에 공기주머니를 만들어 살아간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문화재청은 습지를 보전한다며 수심 1m의 큰 웅덩이를 물거미 서식지에 여럿 파놓았다. 이 교수는 “물거미는 수심 20~30㎝의 수초가 무성한 습지에 사는데 수심이 깊고 장애물이 없으면 천적 활동을 부추겨 물거미가 숨을 곳이 없어진다”고 지적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이민부, 이상영, 전곡 용암대지 물거미 서식지의 지형특성과 식생 분포,한국지형학회지 제24권 제4호(2017) 57~73, http://dx.doi.org/10.16968/JKGA.24.4.57
이민부, 이광률, 김남신 (2007). 추가령 열곡 연천 고호소층의 퇴적물 기원지 분석. 대한지리학회지, 42(1), 15-26.
이민부 외, 연천 전곡 용암대지 물거미 서식지의 생태 및 지형환경 연구, 한국지형학회지 제23권 제4호(2016) 85~99, http://dx.doi.org/10.16968/JKGA.23.4.85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열파 5일 노출 딱정벌레, 정자 75% 감소열파 5일 노출 딱정벌레, 정자 75% 감소

    조홍섭 | 2018. 11. 16

    기후변화 위협 실험으로 증명…후대까지 영향 나타나도시 대기오염도 곤충 생장 억제, 식물 방어물질 증가기후변화로 폭염 사태가 세계적으로 잦아지면서 생태계 파괴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생물 다양성이 낮아지고 생물량이 줄어드는지는...

  • ‘현상금’ 붙은 귀신고래, 연어 그물에 걸려 사라질라‘현상금’ 붙은 귀신고래, 연어 그물에 걸려 사라질라

    조홍섭 | 2018. 11. 15

    핵심 서식지 사할린 북동부에 대형 정치망 400틀 설치전체 200마리 “위험 매우 커”…19%가 한번 이상 그물 걸려 귀신고래는 이름만큼이나 이야기가 많이 얽혀있는 고래다. 무엇보다 국립수산과학원이 2008년 “사진으로 찍으면 500만원, 그물에...

  • 5m 거대 철갑상어, 양쯔강서 댐 건설로 멸종 위기5m 거대 철갑상어, 양쯔강서 댐 건설로 멸종 위기

    조홍섭 | 2018. 11. 13

    한국 등 동아시아 살던 세계 최대 철갑상어, 성체 156마리 남아유일 번식지 양쯔강 서식지 감소·수온 상승…“10∼20년 안 멸종”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게 자라는 민물고기는 잉어나 메기가 아니라 철갑상어다. 최대 5m까지 자라는 것으로 알려진 이 ...

  • 북극이 도요새의 거대한 ‘덫’이 되고 있다북극이 도요새의 거대한 ‘덫’이 되고 있다

    조홍섭 | 2018. 11. 12

    70년 동안 둥지 포식률 3배 증가…수천㎞ 날아와 위험 자초하는 셈레밍 등 설치류 먹이 급감하자 여우 등 포식자, 새 둥지로 눈 돌려새만금 갯벌에서 볼 수 있던 넓적부리도요는 지구에 생존한 개체가 400마리 정도인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멸종...

  • 개는 정말 말귀를 알아들을까개는 정말 말귀를 알아들을까

    조홍섭 | 2018. 11. 09

    단어 1천개 이상 구분하는 ‘천재’ 개도개 두뇌 연구 결과 단어 처리 뇌 영역 확인‘개는 나의 명령을 곧잘, 그것도 다른 개들보다 훨씬 잘 알아듣는다.’ 개 주인의 4분의 1은 자신의 반려견이 남의 개보다 더 똑똑하다고 믿는다는 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