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 홍어는 열수분출구를 부화기로 쓴다

조홍섭 2018. 03. 13
조회수 5616 추천수 1
수온 3도 갈라파고스 심해, 알집 157개 발견
4년 걸리는 부화 기간 단축 위해 열수 이용

태평양흰홍어-Bathyraja-1.jpg » 알집을 열수분출구 근처에 낳아 부화에 도움을 받는 사실이 밝혀진 태평양흰홍어.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1977년 해양학자들은 동태평양의 갈라파고스 제도 북쪽 심해에서 역사적인 발견을 했다. 유인잠수정 앨빈호를 타고 해저 2000m까지 잠수한 이들은 해저 지층이 갈라진 틈에서 분화물질이 뿜어나오는 열수분출구와 그 주변에 펼쳐진 독특한 생태계를 발견했다. 지층의 균열을 통해 뜨거운 물과 각종 미네랄로 이뤄진 분화물질이 검은 연기처럼 뿜어나왔고, 햇빛 한 줄기 비치지 않는 찬 바다에서 이 화학물질을 기반으로 거대한 관벌레와 조개, 눈 없는 새우, 게 등이 번성하고 있었다. 심해저 열수분출구는 지구에 생명이 처음 탄생한 후보의 하나로 꼽힌다.

Riftia_tube_worm_colony_Galapagos_2011-1.jpg » 1977년 처음 발견된 갈라파고스 리프트의 열수분출구에 발달한 생태계. 거대 관벌레 등이 보인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첫 발견 이후 40년이 지났지만 심해 열수분출구 생태계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고 새로운 발견이 잇따른다. 열수분출구가 황량한 심해저에 드문드문 생명의 불을 켠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로 알려졌지만, 주변 해양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맺기도 한다는 발견이 최근 이뤄졌다. 심해 홍어인 태평양흰홍어가 열수분출구를 천연 인큐베이터로 이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41598_2018_20046_Fig1_HTML.jpg » 동태평양 갈라파고스 제도 북쪽에서 두 개의 해양지층 벌어지는 갈라파고스 리프트(녹색 선)와 열수분출구 위치(붉은 점). 살리나스 데 레옹 외, 사이언티픽 리포츠(2018) 제공.

펠라요 살리나스 데 레옹 에콰도르 찰스다윈연구소 연구원 등 국제 연구진은 갈라파고스 리프트 해역을 무인잠수정으로 조사해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고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츠’ 2월 8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연구자들은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나오듯이 격렬하게 활동하는 수심 1660m 열수분출구 근처에서 157개의 심해 홍어 알집을 발견했다. 알집은 대부분 분출구에서 20m 안쪽에 있었는데, 갓 낳은 신선한 것과 함께 오랜 기간이 지난 듯 부착물질이 붙은 것들도 눈에 띄었다.

41598_2018_20046_Fig3_HTML-3.jpg » 심해 열수분출구에 집단 산란한 심해 홍어의 알집(왼쪽)과 무인잠수정으로 채집하는 모습. 살리나스 데 레옹 외, 사이언티픽 리포츠(2018) 제공.

태평양흰홍어는 수심 800∼2938m에 사는 대표적인 심해 홍어로 1.5m 크기로 자라며 수정된 알을 주머니 상태로 낳는다. 이 알은 부화 기간이 길기로 유명한데, 이 홍어의 가까운 친척인 베링 해 심해 홍어의 알은 수온 4.4도에서 1290일(3.5년)이 지나야 부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자들은 심해의 수온이 2.76도인 갈라파고스에서 홍어 알이 깨는 데는 1500일(4.1년)이 걸릴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자들은 “찬 바다에서 장기간의 부화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주변보다 온도가 높은 열수분출구 근처에 심해 홍어가 산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잠수정이 알집이 있는 바닥에서 3.5m 위에서 측정한 수온은 주변보다 1도가량 높았다. 분출구 1m 이내의 알주머니의 경우 주변보다 4.5도 수온이 높았다. 연구자들은 “알집이 있는 지점의 수온은 측정한 것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열수분출구의 수온은 60∼464도에 이르러 너무 접근하면 치명적일 수 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Pelayo Salinas-de-León et al, Deep-sea hydrothermal vents as natural egg-case incubators at the Galapagos Rift, Scientific Reports volume 8, Article number: 1788 (2018)
doi:10.1038/s41598-018-20046-4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두드드득~’ “쉿! 큰귀박쥐가 나타났어”‘두드드득~’ “쉿! 큰귀박쥐가 나타났어”

    조홍섭 | 2018. 05. 28

    ‘바이오블리츠 2018’ 르포24시간 생물종 탐사·기록 위해대전 만인산에 470명 모였다대도시 근처인데도 1368종 확인 성과올해 처음 포함된 박쥐 조사에서큰귀박쥐, 물윗수염박쥐 등 6종 발견‘미기록종’ 거미 2종 확인하고교란종 ‘단풍잎돼지풀’...

  • 황새 무리 비행, 선두가 가장 편하다황새 무리 비행, 선두가 가장 편하다

    조홍섭 | 2018. 05. 25

    상승기류 오래 타고 날갯짓 적어 멀리까지 이동첫 몇 분 비행이 선두 결정…27마리 무선추적 결과장거리 이동하는 철새는 얼마나 에너지가 적게 드는 비행을 하는지가 생사를 가른다. 쐐기꼴 대열에서 바람을 가르며 나는 선두는 뒤따르는 새보다 ...

  • 하마 배설물은 강 생태계에 보물일까 재앙일까하마 배설물은 강 생태계에 보물일까 재앙일까

    조홍섭 | 2018. 05. 21

    물고기 주요 먹이지만 건기 오염 축적되만 ‘오염 폭탄’자연스런 현상이었지만 인위적 요인 겹치면 회복 불능몸무게가 1t이 넘어 아프리카에서 코끼리, 코뿔소와 함께 가장 큰 초식동물인 하마는 밤 동안 초원지대를 돌아다니며 하루에 50㎏에 이르...

  • 바퀴벌레 무서워? 당신 몸속에 ‘곤충 먹는 유전자’ 있다바퀴벌레 무서워? 당신 몸속에 ‘곤충 먹는 유전자’ 있다

    조홍섭 | 2018. 05. 18

    곤충 키틴질 겉껍질 분해 효소 유전자 4종 보유공룡시대 곤충 먹던 흔적, 모든 포유류에 남아곤충은 기후변화와 인구증가에 대응할 수 있는 유력한 미래 식량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실 사람의 곤충 먹기는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니어서 이미 세...

  • ‘침팬지 침대’는 사람 것보다 깨끗해~‘침팬지 침대’는 사람 것보다 깨끗해~

    조홍섭 | 2018. 05. 17

    매일 나무 위에 새로 짓는 둥지, 세균·벌레 축적 안 돼사람 집은 외부 생태계 차단…침대 세균 35%가 몸에서 비롯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오랑우탄 등 영장류는 공통으로 매일 잠자리를 새로 만든다. 침팬지는 나뭇가지를 엮어 받침을 만든 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