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이 새끼 불곰을 마마보이로 만든다

조홍섭 2018. 03. 29
조회수 10605 추천수 1
새끼 딸린 어미 사냥 금지하자 돌보는 기간 1년 길어져
스칸디나비아불곰 장기연구, 인간 영향이 진화력으로 작용

be1.jpg » 사냥 압력이 높은 곳에서 새끼 불곰은 어미에게 방패 구실을 한다. 새끼를 데리고 있는 어미는 사냥이 금지되기 때문이다. 그 영향으로 불곰의 번식 전략이 달라졌다. 일포 코졸라 제공.

크고 멋진 엄니가 있는 코끼리를 표적으로 사냥이 계속되자 엄니가 작거나 아예 없는 코끼리가 늘었다. 일정한 크기 이상의 물고기를 잡자 점점 어린 나이에 알을 낳는 조숙 물고기가 증가했다. 사람은 이렇게 동물을 바꾼다. 그렇다면 불곰의 사냥을 허용하되 새끼 달린 어미는 쏘지 못하도록 오랫동안 규제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스웨덴과 노르웨이 연구자들은 1984년부터 모두 500마리에 이르는 스칸디나비아불곰이 어떻게 태어나 죽는지 일일이 모니터링을 계속했다. 이 지역 불곰은 합법적인 사냥 대상으로, 2010∼2014년 사이 스웨덴에서만 해마다 300마리가 사냥 됐다. 물론 사냥을 허용한 배경에는 1930년대 130마리에서 2013년 2800마리로 불어난 개체수가 있다. 사냥 압력이 상당히 높지만 개체수는 줄지 않는 지속가능한 사냥이었다. 그러나 사냥은 보이지 않는 변화를 불곰에 불러일으켰다.

캐나다와 노르웨이 연구자들은 20년 이상의 불곰 모니터링 자료를 분석한 결과 암컷의 번식 전략이 바뀌었음을 발견했다. 과학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일반적으로 새끼를 낳은 뒤 1.5년 동안 계속되던 불곰의 자식 돌보기가 1993년 사냥 압력이 강해진 이후 2.5년으로 1년쯤 늘어났다고 밝혔다. 새끼를 2년 반 동안 돌보는 암컷의 비율은 2005년 7.1%에서 2015년 36.3%로 늘어났다.

be2.jpg » 보전정책이 성공해 스칸디나비아의 불곰은 급속히 늘어났고 사냥이 허용됐다. 개체수는 일정하게 유지됐지만 개체군의 구조는 달라졌다. 일포 코졸라 제공.

불곰 사냥에서 새끼를 데리고 있는 암컷을 쏘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된다. 외톨이 암컷이 사냥총에 맞을 확률은 새끼가 있을 때보다 4배 높다. 사냥에 관한 한 새끼는 어미에게 방패 구실을 한다. 새끼를 데리고 있으면 상대적으로 안전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새끼를 오래 돌보는 쪽으로 불곰의 번식 전략이 바뀐 것이다. 연구자의 하나인 스웬손 노르웨이대 동물학자는 “인간은 이제 불곰의 삶에서 진화의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어미가 새끼를 더 오래 돌본다는 건 번식주기가 길어져 결과적으로 번식률이 떨어진다는 걸 의미한다. 물론 새끼를 오래 돌보면 새끼가 다른 커다란 수컷에 죽임을 당하는 일이 줄어드는 등 생존율은 5.1% 증가했지만, 번식주기가 길어지는 데 따른 35.2%의 번식률 감소에 비길 바 아니다. 그러나 사냥의 강도가 강해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새끼를 곁에 둔 암컷의 수명 증가는 번식 기간 감소를 상쇄한다. ‘자손을 많이 남긴 자가 이긴다’는 자연의 법칙이 여기서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Joanie Van de Walle et al, Hunting regulation favors slow life histories in a large carnivore, Nature Communications, (2018) 9:1100, DOI: 10.1038/s41467-018-03506-3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벌레가 사라진다, 기후변화의 새 재앙인가벌레가 사라진다, 기후변화의 새 재앙인가

    조홍섭 | 2018. 10. 19

    푸에르토리코 열대림 40년 새 최고 99% 줄어독일서도 27년 간 75%↓…생태계서비스 위협지구가 ‘제6의 대멸종’을 맞고 있다고 할 때 우리는 코뿔소나 자이언트판다 같은 크고 카리스마 있는 포유류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세계의 생물종 가운데...

  • 송장벌레가 사체를 ‘유아식’으로 바꾸는 비밀송장벌레가 사체를 ‘유아식’으로 바꾸는 비밀

    조홍섭 | 2018. 10. 18

    분비물 발라 장내세균이 부패미생물 대체‘바이오 필름’ 덕분 9일 지나도 냄새 안 나송장벌레는 대표적인 곤충계 장의사이다. 곤봉 모양의 더듬이로 사체가 분해할 때 나오는 미세한 화학물질을 감지하면 곧바로 현장에 날아간다. 사체는 자손의 먹...

  • 꿀벌은 편애, 말벌은 증오? 1%가 낳은 ‘편견’꿀벌은 편애, 말벌은 증오? 1%가 낳은 ‘편견’

    조홍섭 | 2018. 10. 16

    녹지·공원 늘면서 급증…도심선 파리가 주 먹이, 사체 청소도생태계 건강 입증, 병해충 막는 기능도…피해 줄이는 관리 필요우리나라에서 사람에게 가장 큰 신체적 손해를 끼치는 동물은 말벌일 가능성이 크다. 반려동물 급증과 함께 개 물림 사고...

  • 바다 천덕꾸러기 해파리, 생태계 기초 식량 가능성바다 천덕꾸러기 해파리, 생태계 기초 식량 가능성

    조홍섭 | 2018. 10. 12

    펭귄, 다랑어, 뱀장어, 해삼…다양한 포식자가 먹어칼로리 낮지만 쉽게 잡고 소화 잘돼…’보릿고개’ 식량보름달물해파리만 잔뜩 걸린 그물을 끌어올리는 어민은 ‘바다는 비어가고 해파리가 그 자리를 채운다’고 한탄한다. 남획과 수질오염 등으로 물...

  • 고래처럼 턱 부풀려 사냥하는 심해 ‘풍선장어’고래처럼 턱 부풀려 사냥하는 심해 ‘풍선장어’

    조홍섭 | 2018. 10. 11

    아래턱에 펠리컨 닮은 자루 풍선처럼 부풀려 사냥태평양과 대서양서 잇따라 살아있는 모습 촬영 성공온대와 열대바다에서 가끔 어선에 잡히는 풍선장어는 수수께끼의 심해어이다. 75㎝ 길이의 몸은 길쭉한 뱀장어이지만 몸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