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속에 희망이 있다…똥과 흔적으로 만난 지리산 야생동물

윤주옥 2012. 03. 06
조회수 36195 추천수 1

현미쌀 하늘다람쥐 똥, 곳감 붙여놓은 듯 멧돼지 똥, 깃털 달린 삵 똥, 눌린 콩자반 고라니 똥…

지리산서 열린 야생동식물 전문가 아카데미 참가해 보니

 

나는 매일 아침 똥을 눈다. 당신은? 당신도 매일 아침, 아님 하루 중 어느 시간에, 또는 일정한 때에 똥을 누길 바란다. 똥은 당신이 살아있음을, 당신도 생태계에서 분해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표식이니까.

 

2월 8일부터 '야생동식물 전문가 아카데미'가 진행되고 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이 주관하고 국립공원연구원, 국립공원종복원센터, 사단법인 한백생태연구소가 협력하는 프로그램이다.

 

2월 8일에는 오구균 교수(호남대)로부터 '인간과 자연, 생태학 개론'을 들었다. 그는 국립공원, 백두대간, 훼손지 복원 전문가답게 한반도 이곳저곳을 오가며 우리 국토의 안타까운 훼손실태를 전했다. 희망의 징후를 몇 가지 이야기했지만 그의 결론은, 다른 생명체의 삶을 가벼이 여기는 인간의 최후는 비관적이라 했다. 여기저기서 한숨이 나왔다. 우리 세대가 추구한 편안함과 욕망으로 우리 아이들과 다른 생명체는 절망적인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니, 죄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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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2일은 이윤수 님(국립공원종복원센터)이 '포유동물에 대한 이해'를 주제로 강의 했다. 한반도에 살고 있는 야생동물, 멸종된 야생동물, 야생동물의 생태적 특징, 야생동물을 알아가는 법 등이 내용이었다. 그의 강의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다. 밖으로 나가 야생동물을 만나고 싶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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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5일, 야생동물을 만나고 싶은 우리는 지리산과 섬진강으로 갔다. 그들을 만날 수 있을지, 멀리서라도 그들을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으나 그들을 알기 위해 우리는 길을 나섰다.

 

야생동물은 '인간에 의해 길들여지지 않고 자연환경에서 자유로이 이동 가능한 생명체'를 말한다. 오늘 우리가 관찰하고 기록할 야생동물은 포유동물이다.

 

포유동물은 암컷이 새끼에게 젖을 먹이며, 따뜻한 피가 흐르고, 몸에 털이 나 있으며, 돌출된 큰 귀와 입 안에 치아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제부터 이 글에 나오는 '야생동물'은 대부분 '포유동물'을 말한다.

 

이윤수 님은 지리산과 섬진강을 걸으며 야생동물을 눈으로 확인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했다. 대신 그들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을 볼 수 없어도, 그들의 흔적만으로도 그 곳에 사는 야생동물이 어떤 종인지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야생동물이 남긴 흔적에는 발자국, 배설물(똥과 오줌), 먹이 흔적, 털 등이 있다.

 

야생동물이 남긴 흔적을 만나러 반달가슴곰 생태학습장 뒷산을 오르면서 그가 말했다. '같은 산양이라도 크기, 색깔이 다릅니다. 야생동물은 북쪽으로 갈수록 몸집이 크고, 남쪽지역에 살거나 섬에 사는 동물은 몸집이 작습니다. 또한 어린 산양과 사향노루의 배설물은 비슷합니다.'

 

그러니 짧은 지식으로 숲에서 만난 야생동물이 어떤 종인지 확신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우리가 밖에서 만날 수 있는 야생동물(포유동물)은 10여 종에 지나지 않으니 관찰한 곳의 생태적 특성을 이해한다면 어떤 종인지 구분하는 게 어렵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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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가슴곰 생태학습장 뒷산에서 발견한 첫 흔적은 멧토끼의 흔적이었다. 멧토끼는 배설한 똥을 다시 먹는 식분성을 갖고 있는데, 이들은 부드럽고 어느 정도 소화 된 녹색의 1차 배설물을 내보낸 뒤 이를 다시 먹어서 소화율을 높임으로써 영양분을 최대한 섭취한다고 한다. 또한 멧토끼는 풀과 나뭇가지를 크고 날카로운 아랫니로 잘라 먹어 비스듬하게 날카로운 절단면을 만드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멧토끼만의 독특한 먹이 흔적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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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토끼 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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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토끼가 잘라 먹은 나무의 절단면

 

두더지의 흔적도 보였다. 두더지의 흔적은 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데, 두더지가 땅 속에서 굴을 파고 지난간 흔적이다. 수평으로 터널처럼 지나가며 만든 흔적이다. 묘 주변에도 땅을 파헤친 모습이 있었다. 이건 멧돼지의 흔적이다. 성묘 후 봉분에 부은 막걸리 성분이 멧돼지를 유혹한 것이란다.

 

멧돼지는 다람쥐가 숨겨둔 도토리를 먹으려고 숲 이곳저곳을 파헤치기도 한다. 두더지나 멧돼지나 언뜻 숲을 파헤치는 야생동물로, 밭이나 숲에서 소란을 피운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들의 파헤침은 숲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한단다.

 

숲길을 걷던 이윤수 님이 걸음을 멈춘 곳은 소나무 아래였다. 자세히 보니 무엇인가가 나무에 비빈 흔적이 있었다. 멧돼지는 진흙 목욕 후 소나무, 잣나무 같은 나무의 밑동에 몸을 비비고 송곳니로 껍질을 상처 내어 나무진을 나오게 한다. 이때 이용하는 나무를 베개목이라고 한다. 베개목으로 이용한 나무를 자세히 관찰하면 나무 껍질 사이에 낀 멧돼지 털을 관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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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가 베개목으로 이용한 소나무

 

야생동물들은 몸이 원하는 길로 다니고, 마음에 드는 나무를 찾아간다. 밀렵꾼은 야생동물들의 눈높이로 야생동물들이 다니는 길과 그들이 찾아가는 나무에 올무, 창애, 덫을 설치한다. 누군가를, 뭔가를 사로잡으려면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당신의 눈높이는 어디에 있는가? 그들을 사로잡을 생각은 없으나 그들을 알고 싶은 사람들은 발견하고, 확인하고, 기록하고를 반복하며 그들의 흔적을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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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걸으며 어렵지 않게 만나는 야생동물 흔적이 갉아먹은 솔방울이다. 소형설치류, 다람쥐가 솔방울에서 씨앗을 빼먹는 것과 달리 청솔모는 솔방울을 아작내어 버렸다. 청솔모는 소나무를 오르내리며 폼나게 솔방울을 갉아먹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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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솔모가 갉아먹은 솔방울

 

같은 설치류라도 하늘다람쥐는 견과류보다는 나무 새순이나 연한 열매를 좋아한단다. 하늘다람쥐는 나무 위에 사는데 앞발과 뒷발 사이에 피부가 이어진 커다란 비막이 있어 날아다닌다. 하늘다람쥐는 야행성이고 나무 위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나무 밑둥치에 있는 똥으로 서식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하늘다람쥐 똥은 튼실한 현미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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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쌀보다 약간 큰 하늘다람쥐 똥

 

숲에 치열한 삶을 보여주는 흔적도 있다. 새의 깃털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가끔은 하늘다람쥐의 꼬리나 뼈가 발견되기도 한다. 어치가 다람쥐가 숨겨둔 도토리를 먹다 삵이나 담비에게 희생당하기도 하고, 숲에서 쉬던 멧비둘기가 올빼미의 공격을 받기도 한다.

 

흩어져 있는 털에 보푸라기가 있다면 집에 있는 쥐를 끄집어내어 잡아 먹은 경우일 것이다. 숲에 있는 먹고 먹힌 흔적들을 보는 일이 유쾌하진 않지만 그 흔적들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것은 통장에 숫자를 늘리기 위해, 집과 땅을 재산이라는 이름으로 축적하기 위한 일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행위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2월 25일 '반달가슴곰 생태학습장' 뒷산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것은 멧돼지의 흔적이다. 멧돼지는 곳곳에 잠자리를 만들어 놓았고, 곶감을 붙여놓은 듯한 멧돼지의 똥은 곳곳에 널려 있었다. 숲에는 멧돼지가 새끼를 낳고 키우기 위해 만들어 놓은 둥지도 있었다. 둥지는 철쭉을 씹어 부러뜨린 후 그 안을 부드러운 풀로 채운다고 한다. 철쭉 가지 끝이 안쪽으로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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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가 새끼를 낳고 키우기 위해 만든 둥지

 

낮부터 추워진다고 하더니 지리산자락을 떠나 섬진강가에 도착했을 때엔 찬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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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곳곳에 수달, 고라니, 너구리, 삵이 싼 똥이 널려 있었다. 섬진강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2월 25일은 똥 속에 희망이 있음을, 똥을 보는 일이 즐겁고 행복한 일임을 느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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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제비, 수달, 담비, 오소리 등 족제비과 야생동물들은 의미있게 똥을 눈다. '의미'있다는 말은 다른 생명체들에게 똥을 자랑하듯이 눈다는 말이다. 물고기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사는 수달은 적당한 크기의 돌에, 돌이 없으면 모래를 긁어모아 그 위에 똥을 눈다. 수달 똥에서는 비릿한 냄새를 풍겼다. 물고기나 개구리를 먹이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수달의 이동거리는 5∼50㎞에 이르며, 1.8㎢ 면적의 '섬진강 수달서식지 생태경관보전지역'에도 수달 한 가족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여기저기서 발견되었다는 수달은 같은 개체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섬진강 모래톱과 강가 진흙에 남겨진 수달 발자국은 발가락 5개에 발톱까지 찍혀 있었다. 모래톱을 걸어간 수달은 긴 꼬리를 끌고 간 흔적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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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가에 찍힌 수달 발자국

 

너구리는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잡식성 야생동물이다. 너구리는 똥자리를 따로 두어 그 자리에 수십 차례 똥을 눈다. 똥자리는 너구리들끼리 공유한다. 너구리 똥 중 분필처럼 흰 색 똥은 다른 동물의 뼈를 먹은 흔적이다. 너구리 발자국은 발가락 4개와 함께 발톱도 찍힌다. 너구리 발자국은 좌우 대칭이며  앞발은 폭이 넓고, 뒷발은 좀 더 길고 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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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리 똥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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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 대칭인 너구리 앞발 발자국

 

삵은 이마와 목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검은 세로줄 무늬가 있으며 살쾡이라고도 부른다. 삵은 일반적인 고양잇과의 발자국처럼 발가락은 4개이며, 발톱이 찍히지 않는다. 삵은 똥자리를 따로 두지 않으며, 건조하고 눈에 잘 띄는 땅 위에 똥을 눈다. 삵 똥은 동물의 털로 이루어져 있으며, 새의 깃털과 작은 뼈가 섞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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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깃털이 섞여 있는 삵 똥

 

고라니는 물이 있는 땅을 좋아하며 논밭 근처 낮은 산에도 많이 산다. 고라니는 걸을 때 발굽이 두개 찍혀 하나의 발자국을 이루며, 뛸 때는 며느리발톱이 함께 찍힌다. 고라니 똥은 물기 있는 먹이를 자주 먹는 습성 때문에 일그러진 것이 많다. 콩자반을 어금니로 살짝 물었다가 뱉은 모양이다.

 

수달이 호기심이 많다면, 고라니는 겁이 많다고 한다. 작은 움직임에도 깜짝 놀라 뛰어가는 고라니, 멀리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뒤돌아 뛰어가는 고라니는 순박한 농부의 모습이다. 바라보고 있으면 미소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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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일그러진 고라니 똥

 

인간에 의해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동물을 만나러 지리산, 섬진강에 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야생동물이 살 수 없는 곳에선 인간도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사람들은 야생동물의 똥과 발자국을 보며 환호하고, 그들이 좀더 자유롭게 살길 원한다. 그들이 자유로울 때, 인간도 자유로울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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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주옥/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처장, 사진 이태건 국립공원종복원센터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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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옥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현장 감시와 정책 개발을 통한 국립공원의 대표적 파수꾼이다. 현재 전남 구례에 거주하며 지리산과 섬진강 일대의 자연을 섬세한 감성으로 그려낸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windjuok@hanmail.net      
블로그 : http://plug.hani.co.kr/windjiri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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