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 없다면 두리안도 테킬라도 없다
척추동물도 꿀벌 못잖게 꽃가루받이 기여
박쥐, 도마뱀, 원숭이 차단하면 결실 63% 감소

식물의 꽃가루받이를 해 주는 꿀벌 등 곤충의 세계적인 감소가 주목받는다. 세계 곳곳에서 꿀벌 집단의 대규모 붕괴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데다, 독일 보호구역에서는 지난 27년 동안 곤충의 양이 75%나 줄어든 사실이 밝혀져 ‘곤충 아마겟돈’이란 말도 나왔다. 그러나 꿀벌 등 곤충만 꽃에서 꽃가루를 나르는 건 아니다. 그리 알려지지는 않지만, 척추동물 가운데도 꽃가루받이에 크게 기여하는 동물이 적지 않다. 이들은 무관심 속에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파브리지아 라토 영국 사우샘프턴대 생물학자 등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생태학과 환경 최전선’ 최근호에 실린 리뷰 논문에서 “가루받이 척추동물이 사라질 때의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고려할 때 위험에 빠진 꽃을 찾는 척추동물 종에 대한 신속하고 효과적인 보전 대책이 꼭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눈길을 끄는 건, 연구자들이 검토한 126건의 실험 연구 결과다. 척추동물이 가루받이하지만 곤충도 그런 구실을 하는 식물을 대상으로 척추동물의 접근을 차단했더니 열매와 씨앗의 생산이 평균 63%나 떨어졌다. 특히 가루받이하는 박쥐의 영향이 커, 박쥐의 접근을 막은 결과 결실률이 83%나 줄었다. 세계적으로 박쥐가 꽃가루를 전달하는 식물은 ‘과일의 왕’으로 일컬어지는 동남아의 두리안을 포함해 528종에 이른다.

연구자들은 박쥐가 가루받이하는 식물은 유독 몇몇 종의 박쥐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예가 멕시코의 긴 코 박지 두 종으로 이 나라에서 유명한 독주인 테킬라를 만드는 용설란인 ‘블루 아가베’를 전적으로 수분한다. 블루 아가베는 밤에 꽃을 피우고 썩은 과일 향으로 박쥐를 유혹하는데, 꽃이 길고 좁아 긴 코 박쥐만이 꽃꿀을 마실 수 있다. 그런데 이 박쥐는 현재 멸종위기에 몰려 있다.
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꽃가루받이 동물은 새로서 세계에서 920종 이상이 그 기능을 수행한다고 논문은 밝혔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식물 종의 5%가량이 번식에 새의 도움을 받는다. 섬에서 그 비율은 10%로 뛴다. 섬에서는 흥미롭게도 도마뱀도 꽃가루받이에 나서는데, 세계적으로 그런 종이 37종에 이른다.


식물 번식에 기여하는 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마다가스카르에 서식하는 여우원숭이의 일종(학명 바레시아 바리에가타)이다. 이 원숭이는 ‘여행자 나무’로 불리는 파초 과의 큰 식물을 찾아 단단한 꽃을 비집어 열고 꽃꿀을 마신다. 꽃꿀은 이 원숭이에게 중요한 칼로리 원이며, 원숭이는 꽃을 손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꽃꿀을 섭취한 뒤 털에 꽃가루를 듬뿍 묻혀 나른다.
연구자들은 열대 식물이 온대보다 척추동물에 의한 꽃가루받이에 더 많이 의존하며 앞에 든 동물 말고도 생쥐, 포섬, 다람쥐 등도 꽃가루받이를 한다고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Fabrizia Ratto et al, Global importance of vertebrate pollinators for plant reproductive success: a meta-analysis, Front Ecol Environ 2018; 16(2): 82–90, doi: 10.1002/fee.1763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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