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갔던 제비’가 다시 돌아오는 이유

조홍섭 2018. 04. 25
조회수 20819 추천수 0
질병 들끓는 열대서 면역체계 유지보다 번식기 온대 이동 유리
여름 철새, 온대 텃새와 비슷한 면역체계…힘든 번식기 부담 덜어

03952151_P_0.JPG » 대표적인 여름 철새인 제비는 왜 겨울을 난 동남아가 아닌 온대지역에 와 번식할까. 질병 회피와 관련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강재훈 기자

해마다 때가 되면 수십억 마리의 동물이 장거리 이동을 감행한다. 누, 흰긴수염고래, 도요새, 연어, 제왕나비, 된장잠자리 등 포유류에서 곤충까지 다양한 동물이 지구 전체를 이동한다. 이 가운데 새들의 이동은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생태 신호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기러기가 오면 가을이 깊었음을 알고 제비가 날면 여름이 다가왔음을 깨닫는다.

이처럼 동물의 이동은 광범한 현상이지만 그 원인이 무언지 딱 부러진 결론은 없는 상태이다. 먹이 부족을 피하거나 적절한 기후를 찾아 떠나는 것이 흔한 이유이지만 일반화하기는 힘들다. 겨울 철새는 추위를 피해 찾아와 겨울을 난 뒤 봄에 번식지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여름 철새는 왜 열대지역을 떠나 온대지역으로 오는 걸까. 떠나는 곳에 겨울이 오는 것도 아니고 먹이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기러기가 오는 건 이해가 가는데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건 왜일까.

01313252_P_0_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JPG » 봄·가을 우리나라를 지나 대규모로 이동하는 도요새와 물떼새 무리. 김태형 기자

이런 궁금증을 풀 단서를 제공하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에밀리 오코너 스웨덴 룬드대 생물학자 등 이 대학 연구진은 과학저널 ‘네이처 생태학 및 진화’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여름 철새는 질병을 피해 이동한다’는 가설을 제기했다. 연구자들은 참새목의 조류 1311종의 계통 유전학 자료를 분석해 면역체계가 새들의 이동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을 펼쳤다.

연구자들은 온대인 유럽의 텃새와 사하라사막 이남의 적도 아프리카 텃새, 그리고 적도 아프리카에서 온대 유럽으로 이동해 번식하는 여름 철새의 면역체계를 비교했더니, 아프리카 텃새의 면역체계가 가장 다양하고 포괄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에 참여한 헬레나 웨스터달은 “깜짝 놀란 것은 여름 철새의 면역체계가 유럽 텃새만큼 단순하다는 점이었다. 철새는 유럽과 아프리카의 병원체 모두를 견뎌야 하는데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질병을 옮기는 병원체는 적도로 갈수록 다양하고 많아진다. 아프리카 텃새가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다양한 면역체계를 갖추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여름 철새의 면역체계가 온대지역 텃새만큼 단순하다는 것은 면역체계를 갖추는 것이 그만큼 부담이 많이 가는 일임을 보여준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김봉규 기자.JPG » 인천 연평도 인근 무인도에서 번식한 저어새. 번식기는 어미나 새끼에게 매우 힘든 시기로 병원체 위협이 적은 곳이 번식에 유리하다. 김봉규 기자

특히 번식기에 그 부담은 크다. 어미 새는 번식기 때 생리적 부담이 극한에 이르기 때문에 질병에 대처할 에너지가 거의 없다. 어린 새도 일생 중 이때 병원체에 대한 저항력이 가장 약하다. 따라서 비용이 많이 드는 면역체계를 회피한 채 번식을 병원체가 적은 곳에서 하는 것은 진화적으로 일리가 있다.

이번 연구는 유럽과 아프리카의 텃새와 철새를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아시아와 동남아 사이에서도 비슷한 관계가 나타날지는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Emily A. O’Connor et al, The evolution of immunity in relation to colonization and migration, Nature ecology & evolution, https://doi.org/10.1038/s41559-018-0509-3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우리 몸엔 늦가을과 늦봄 두 계절만 있다우리 몸엔 늦가을과 늦봄 두 계절만 있다

    조홍섭 | 2020. 10. 22

    늦가을엔 바이러스 감염 대응…‘겨울잠’ 단백질도 많아져온대지역에 사는 사람이라면 4계절은 가장 분명한 환경 변화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 몸은 4계절이 아닌 2계절을 산다는 사실이 분자 차원의 추적 연구결과 밝혀졌다.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자...

  • 꽃샘추위 한 번에 어린 제비 사망률 곱절로꽃샘추위 한 번에 어린 제비 사망률 곱절로

    조홍섭 | 2020. 10. 21

    더워진 봄 산란 앞당기면 새끼 굶주릴 위험 커져, 30년 장기연구 결과기후변화는 평균으로 오지 않는다. 봄은 일찍 찾아오고 평균기온은 오르지만 꽃샘추위는 잦아진다. 동물이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 장기 현장연구로 밝혀...

  • 한국인에는 비만과 당뇨 막는 ‘쌀밥 유전자’ 있다한국인에는 비만과 당뇨 막는 ‘쌀밥 유전자’ 있다

    조홍섭 | 2020. 10. 19

    인도보다 3천년 앞서 쌀 재배, 고혈당 막는 유전적 적응 일어나한국인을 비롯한 동아시아인은 오랜 벼농사 덕분에 고탄수화물 식사로 인한 비만과 당뇨병 등의 부작용을 막는 유전적 적응을 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오랜 목축 역사가 있는 유럽 ...

  • 냄새로 코로나 검사, 개 활용 연구 활발냄새로 코로나 검사, 개 활용 연구 활발

    조홍섭 | 2020. 10. 16

    헬싱키 공항 현장 배치…80∼90% 정확도 감염자 실시간 찾아요양원 식구들이 아침마다 돌아가며 개와 아침 인사를 나누는 것만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사람보다 10만배나 뛰어난 개의 후각을 이...

  • 모기, 물리긴 해야는데 물릴 순 없어서…인공 피부 개발모기, 물리긴 해야는데 물릴 순 없어서…인공 피부 개발

    조홍섭 | 2020. 10. 15

    따뜻하고 탄력 있는 피부에 인공혈액도질병 감염 모기에 물리는 실험도 가능가을 모기가 기승을 부리지만 단잠을 방해할 뿐이다. 해마다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말라리아 등 세계적 감염병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의 사정은 훨씬 심각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