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란 뻐꾸기메기와 입속 번식 물고기의 ‘진화 전쟁’

조홍섭 2018. 05. 03
조회수 3008 추천수 1
모래 둥지에 낳은 알 입에 옮기는 몇 초 빈틈 노려
탁란 겪은 물고기는 기생률 낮고 탁란 뱉어내며 저항

c1.jpg » 아프리카 탕가니카 호에서 시클리드에 탁란하는 기생 물고기 뻐꾸기메기 성체. 라딤 블라주에크 제공.

자신의 알을 숙주에 맡겨 제 새끼처럼 기르게 하는 탁란은 매우 효과적인 기생 전략이다. 둥지를 지어 알을 품고 깨어난 새끼에 쉴새 없이 먹이를 나르는 노고를 숙주에게 짊어지우는 뻐꾸기는 대표적 예이다. 개개비 둥지에 낳은 뻐꾸기 알은 일찍 깨어나 개개비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내고 어미의 먹이를 독차지한다. 개개비로서는 자기 새끼를 죽여 적의 후손을 기르는 셈이어서, 치명적인 기생이다. 탁란이 얼마나 효과적인 전략인지 조류의 여러 계통에서 7차례나 독립적으로 이런 기생이 진화했고, 100종 이상의 새가 이런 번식방법을 채택한다.

새뿐 아니라 벌과 뒤영벌 등 일부 곤충과 물고기 가운데도 탁란 기생이 있다. 우리나라 하천에 사는 돌고기와 감돌고기가 꺽지의 알에 탁란한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다(▶'물속 뻐꾸기' 감돌고기는 꺽지의 새벽을 노린다).

ga1.jpg » 돌 밑에 붙인 알을 지키는 꺽지(가운데) 주변을 돌며 탁란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감돌고기 떼. 이흥헌 박사, 생물다양성연구소 제공.

탁란은 워낙 강력한 기생 전략이어서 하는 쪽과 당하는 쪽 사이에 창과 방패의 진화경쟁이 치열하다. 뻐꾸기는 개개비보다 일찍 깨어날 작은 알을 낳고, 개개비는 뻐꾸기의 알을 구별하도록 알 색깔을 달리하는 것 등이 그런 사례다. 동물 행동과 형태 변화를 통한 진화 연구도 활발하다. 문제는 실험실에서 조건을 달리하는 실험연구를 하기 힘들다는 것인데, 탁란 물고기가 돌파구를 열었다.

라딤 블라주에크 체코 과학아카데미 동물학자 등 국제 연구진은 아프리카 탕가니카 호에 서식하는 뻐꾸기메기라는 탁란 물고기를 연구했다. 이 메기는 시클리드라는 동아프리카 물고기에 알을 맡긴다. 시클리드는 탕가니카 호, 빅토리아 호, 말라위 호 등 동아프리카 호수에서 한 종이 짧은 기간에 1800여 종으로 분화한 진화론에서 유명한 어종으로, 모두 알을 입에서 번식시키는 특징이 있다.

c2.jpg » 동아프리카 시클리드의 한 종. 입속에서 새끼를 번식시킨다. 라딤 블라주에크 제공.

시클리드의 입속 부화는 암·수가 하는 일련의 정교한 행동으로 이뤄진다. 암컷은 호수 바닥 모래에 둥지를 짓고 알을 낳은 뒤 재빨리 입으로 옮긴다. 이어 암컷은 수컷 뒷지느러미의 무늬인 ‘난점’을 물어 자극받은 수컷의 정자를 받아 입속에서 알을 수정시킨다. 며칠 뒤 알에서 깬 치어는 안전한 입속에서 2∼3주 동안 머물며 난황을 흡수해 자란다.

뻐꾸기메기가 노리는 건 모래 둥지에 알을 낳고 입에 담는 사이 불과 몇 초 동안의 빈틈이다. 암컷 뻐꾸기메기가 시클리드 알보다 작은 알을 낳으면 수컷 메기가 잽싸게 끼어들어 방정한다. 시클리드는 메기를 피하고 밀어내며 저항하지만 서둘러 입에 담은 알에는 뻐꾸기메기의 알이 섞여 있기 마련이다. 메기의 새끼는 뻐꾸기처럼 숙주의 알보다 먼저 깨어난 뒤 시클리드 알을 종종 마지막 하나까지 먹어치운다. 시클리드 암컷은 엉뚱한 새끼를 보호하느라 먹이도 먹지 못하고 몇 주를 보내게 된다.

c3.jpg » 시클리드 입속에서 숙주의 알보다 일찍 부화한 뻐꾸기메기의 치어. 자신의 난황으로 살아간다. 이웬징 제공.

c4.jpg » 부화 1주일 뒤 뻐꾸기메기 치어. 난황을 다 소비하고 숙주인 시클리드 수정란을 먹으며 입속에서 자란다. 이 웬징 제공.

c6.jpg » 시클리드 입을 떠난 뻐꾸기메기 치어. 입속의 시클리드 새끼는 모두 잡아먹은 뒤일 가능성이 크다. 라딤 블라주에크 제공.

연구자들은 수조에서 뻐꾸기메기의 탁란 기생을 겪은 시클리드와 그렇지 않은 시클리드가 번식 성공률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탁란에 저항하는 전략은 뭐가 있고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등을 수조 실험을 통해 정량적으로 조사했다.

우선 탕가니카 호에 사는 시클리드 가운데 5.5%가 탁란을 당했지만 빅토리아 호 출신 시클리드는 63%가 기생을 당하는 등 뻐꾸기메기를 겪어봤는지가 기생률을 좌우했다. 탁란을 당한 시클리드는 침입자 알을 뱉어내는 거부 행동을 해 새와 대조를 보였다. 개개비는 뻐꾸기의 알이 섞여 있음을 눈치채도 자칫 자기 알을 버렸을 때의 손실이 너무 커 골라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번 연구에서 뻐꾸기메기를 겪어 본 시클리드의 90%가 메기 알을 뱉어냈지만 다른 호수 출신의 거부율은 7%에 그쳤다. 실제 탁란을 하지 않더라도 알을 건드리는 등 탁란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시클리드는 알을 뱉어내는 거부 행동을 했다. 그만큼 탁란 가능성에 예민하게 반응한 것이다.

c5.jpg » 젊은 뻐꾸기메기. 이 메기를 겪었나 여부가 시클리브 번식의 성공률을 좌우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라딤 블라주에크 제공.

문제는 침입자의 알을 뱉어내는 과정에서 자기 알도 유실된다는 점이다. 연구자들은 “탁란에 저항하는 데는 큰 비용을 치러야 한다”라고 밝혔다. 그렇더라도 경험 있는 시클리드의 19%는 새끼를 성공적으로 길러내 경험 없는 숙주의 6%보다 월등히 높았다.

이 연구는 과학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2일 치에 실렸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Radim Blažek et al, Success of cuckoo catfish brood parasitism reflects coevolutionary history and individual experience of 
their cichlid hosts, Sci. Adv. 2018;4: eaar4380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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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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