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충에 뇌 조종당하는 ‘좀비 개미’ 비밀 밝혀져

조홍섭 2018. 06. 08
조회수 14661 추천수 1
흡충이 개미가 풀잎 끝 매달리도록 유도하는 뇌 부위에 위치
마이크로 단층촬영 기법으로 밖에서 개미 뇌 감염 모습 첫 촬영

a1-1-1.jpg » 흡충에 감염된 개미 뇌의 모습. 흡충 3마리 가운데 한 마리(붉은색)가 개미 뇌 안쪽에 자리 잡았다. 고해상도 마이크로 시티 촬영. 색깔은 인위적으로 입힌 것이다. 런던 자연사박물 관 제공.

기생충이 숙주의 뇌를 지배해 자신에게 유리한 행동을 이끄는 사례는 많다. 교과서적인 예가 1970년대 밝혀진 이강 흡충 속 흡충의 교묘한 한살이다. 

이 작은 기생충의 삶은 소나 양의 배설물 속에서 알로 시작한다. 달팽이가 배설물을 섭취하면서 흡충의 알을 함께 삼킨다. 달팽이 뱃속에서 알에서 깨어나 애벌레가 된 흡충은 달팽이가 지나갈 때 남기는 점액과 함께 밖으로 나온다.

두 번째 숙주는 개미다. 개미는 달팽이가 남긴 점액을 즐겨 먹는데, 이때 흡충에 감염된다. 흡충의 대부분은 낭포를 뒤집어쓴 채 개미의 뱃속에 머물지만 일부 흡충은 개미의 뇌로 이동한다. 

어쩐 일인지 개미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잠잘 시간인 어스름에 개미는 풀잎이나 꽃잎에 올라가 끄트머리를 주둥이로 꼭 문 채 매달린다. 이른 아침 소 등 초식동물은 신선한 풀을 뜯기 시작하고 풀잎과 함께 개미를 삼킨다. 초식동물의 뱃속에서 흡충은 알을 낳고 기괴한 한살이를 되풀이한다.

a0-1.jpg » 이강 흡충 속 흡충의 한살이. 미국 질병통제본부(CDC) 제공.

개미의 행동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조작하는 이강 흡충의 기생 행동은 잘 알려졌지만,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개미의 뇌 통제 메커니즘은 수수께끼였다. 작은 개미의 뇌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첨단 단층촬영 기술을 이용해 그 비밀을 밝힌 연구결과가 나왔다.

다니엘 마틴-베가 영국 자연사박물관 박사 등 연구자들은 5일 치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린 논문에서 현미경과 엑스선 영상을 결합한 마이크로 단층촬영 기법을 이용해 개미 뇌 속에서 흡충이 벌이는 일을 처음으로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그는 “최신 영상 도구가 기생충이 숙주와 만날 때 일어나는 핵심적 과정을 이해하는 능력을 혁명적으로 바꾸었다”고 박물관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a2-1.jpg » 흡충 감염 개미의 3차원 영상. 뱃속의 낭포 흡충과 머릿속에 침입한 흡충(붉은색)이 보인다. 런던 자연사박물관 제공.

개미의 뱃속에는 예상대로 다량의 낭포 흡충이 초식동물이 삼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떼어낸 머리를 다양한 각도로 밖에서 들여다본 결과 개미의 뇌 근처에 흡충이 3마리나 들어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가운데 개미의 뇌 조직과 접촉을 한 흡충은 한 마리였다.

연구자들은 이 흡충이 자리 잡은 곳은 개미가 주둥이를 닫을 때 근육을 움직이는 뉴런이 있는 곳이라고 밝혔다. 흡충의 명령에 따라 개미는 풀잎 끄트머리를 물고 매달리는 얼토당토않은 행동을 함으로써 흡충의 한살이를 완성한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Daniel Martín-Vega et al, 3D virtual histology at the host/ parasite interface: visualisation of the master manipulator, Dicrocoelium dendriticum, in the brain of its ant host, Scientific Reports(2018) 8:8587 DOI:10.1038/s41598-018-26977-2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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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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