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해상 인공구조물, “철거보다 놔두는 게 낫다”

조홍섭 2018. 08. 17
조회수 3631 추천수 0
석유·가스·해상풍력 등 세계 수천곳 해체 예정
멸종위기종·수산자원 위한 인공어초 기능 확인

r1.jpg » 석유나 가스를 채굴하거나 보관·처리하는 시설인 해상 플랫폼도 수명이 다하면 해체돼야 한다. 그러나 환경 측면에서는 무조건 들어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주장이 나왔다. 브라질의 해상 석유 플랫폼.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1995년 영국 석유회사 셸은 북해에서 해상 석유 플랫폼인 ‘브렌트 스파’가 용도를 다하자 심해에 폐기하기로 결정했고 정부의 승인을 받았다. 그러자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가 시설물에 남은 석유의 유해물질 등을 들어 격렬한 반대운동을 벌였다. 활동가들이 플랫폼을 3주 넘게 점거하는가 하면 유럽 전역에서 셸 석유 불매운동을 벌였다. 결국 셸은 굴복해 이 시설물을 노르웨이 항구로 끌어와 건축물로 재활용하기로 했다.

Brent_spar.jpg » 북해의 브레트 스파 석유 플랫폼.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루는 환경 교과서 내용에도 소개되는 브렌트 스파 논란 이후 용도를 다한 해상 구조물은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시설물의 해체보다는 바다에 그대로 방치하는 쪽이 해양 생태계를 위해 도움이 된다는 환경 전문가들의 연구결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애슐리 파울러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공대 박사 등 국제 연구진은 과학저널 ‘생태와 환경 최전선’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유럽과 미국의 환경 전문가 38명에게 수명이 다한 해양 구조물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설문 조사한 결과 대부분인 36명이 “사안별로 유연하게 접근하는 게 필요하다”며 현행 해체 의무화에 반대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세계 전역에서 예상되는 규모의 해체가 초래할 부정적 환경영향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생물 다양성 상실과 수산자원 고갈 등 해양 생태계에 심각한 결과를 빚을 것”이라며 해체 의무화 규정의 적용을 잠정 중단하는 정책 변경을 제안했다.

r2.jpg » 앞으로 수십년 동안 전 세계에서 철거해야 할 해상 플랫폼은 7500개가 넘는다. 그러나 해체 과정에서 초래될 환경 영향은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북해 등 53개 나라 해상에서 해체해야 할 해상 가스·석유 플랫폼은 7500개가 넘는다. 브렌트 스파가 높이 147m, 지름 29m, 무게 6만6천t에 이르렀을 정도로 이들 시설물은 규모가 크다. 게다가 최근 해상 풍력단지가 붐을 이루고 있어 수명 20년이 지나면 수천기의 해상 풍력발전기가 모두 해체 대상이 된다. 연구자들은 해상에서 초대형 크레인을 설치해 이런 시설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대기오염, 바닥에 퇴적된 유해물질의 재활성화, 외래종 확산, 생물 서식지의 연결 단절 등을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과 노르웨이는 현재 연간 10억 파운드 이상을 해체 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다.

r3.jpg » 북해의 한 해상 플랫폼의 해저 시설물에 대서양대구가 서식하고 있다. 애슐리 파울러 외 (2018) ‘생태와 환경 최전선’ 제공.

반대로 해상 구조물을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는 형태로 바다에 그대로 두는 경우, 시설물이 인공어초 구실을 해 멸종위기종의 서식지와 남획되는 수산자원이 회복하는 장소가 될 수 있다. 해저에 남은 시설물은 해양 생태계를 해치는 저인망 어업을 막는 효과도 낸다.

환경 전문가들이 제시한 대안 가운데 가장 선호한 방안은 해상 플랫폼의 수면 위 부분(높이 25m)을 잘라내 육상에서 재활용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두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선호한 대안은 잘라낸 수면 위 구조물을 원 구조물 옆에 빠뜨려 배치하는 방법이다. 그다음으로는 플랫폼 전체를 쓰러뜨려 바다에 빠뜨리거나 전체를 육지로 이송하는 방안을 선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상풍력에 대해서는 풍차를 바닷속으로 쓰러뜨리는 방안과 수면 윗부분을 잘라 육상에서 재활용하는 방안에 비슷한 선호도를 보였다.

r4.jpg » 환경 전문가들이 제안한 해상 플랫폼과 풍력발전기 처분 대안. 위로 갈수록 선호도가 높은 방안이다. 직선 화살표는 육지로 제거, 곡선 화살표는 현지에 재배치를 가리킨다. 애슐리 파울러 외 (2018) ‘생태와 환경 최전선’ 제공.

한편, 멸종위기종 산호를 북해의 해상 구조물 근처에 풀어놓는 모델링 연구결과 인공구조물이 이 동물에 새로운 서식지와 먹이터를 제공해 생존 가능성을 높여 준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레아-앤 헨리 영국 에든버러대 연구원 등 국제 연구진은 16일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린 논문에서 “해상 구조물이 징검다리처럼 산호 집단을 이어줘 산호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며 “이는 기후변화로 해류소통이 약해지는 상황에서 산호의 회복 탄력성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라고 밝혔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Ashley M Fowler et al, Environmental benefits of leaving offshore infrastructure in the ocean, Front Ecol Environ 2018; doi: 10.1002/fee.1827

Lea-Anne Henry et al, Ocean sprawl facilitates dispersal and connectivity of protected species, Scientific Reports (2018) 8:11346, DOI:10.1038/s41598-018-29575-4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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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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