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식물이 기생곤충 노려, 덩굴식물이 혹벌 미라로

조홍섭 2018. 08. 27
조회수 6515 추천수 0
참나무에 혹 만들어 알 낳는 혹벌, 그 혹에서 양분 빠는 기생식물
애벌레는 당장 죽지 않고 결국 미라로, 기생자끼리의 새 먹이관계

ga1.jpg » 혹벌이 식물에 기생해 애벌레를 기르는 혹에 기생식물이 흡반을 붙여 수분과 영양분을 빼앗아 가고 있다. 매튜 코머퍼드, 라이스대 제공.

혹벌이란 작은 기생말벌은 기발한 전략으로 번식 성공률을 높인다. 참나무 같은 숙주 식물에 독소와 특수 단백질을 섞어 알을 낳으면, 그 자리가 부풀어 오르면서 혹(충영)이 된다. 혹벌 애벌레는 가장 취약한 시기를 안전한 혹 속에서 숙주 식물이 제공하는 수액을 먹으며 자란다.

세계에 이런 혹벌이 1만3000여종이나 있다는 건 혹을 이용한 기생전략이 얼마나 성공적인지 잘 보여준다. 물론 성공이 언제나 계속되는 건 아니다. 다른 기생벌 가운데 혹을 관통하는 침으로 혹벌 애벌레에 자신의 알을 낳는 종들이 있다. 혹을 노린 또 다른 기생자가 최근 발견됐다. 놀랍게도 그 주인공은 식물이다.

ga2.jpg » 식물의 혹을 이용해 애벌레의 안전을 꾀하는 혹벌의 일종.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ga3.jpg » 참나무 잎 뒤에 혹벌이 알을 낳은 혹을 다닥다닥 붙여 놓았다. 스콧 이건, 매트 코머퍼드 제공.

세계의 열대지역에 널리 분포하는 ‘카시타 필리포르미스’(학명 Cassytha filiformis)는 대표적인 덩굴성 기생식물이다. 카리브 지역에선 이 식물을 최음제로 써 ‘사랑 덩굴’이라 부르기도 한다. 스콧 이건 미국 라이스대 진화생물학자 팀은 혹벌의 생명을 빨아먹는 이 덩굴식물의 치명적 기생전략을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 최근호에 보고했다.

이 식물은 숙주의 줄기나 잎에 흡반을 붙인 뒤 수액과 영양분을 빨아먹으며 산다. 연구진은 미국 플로리다의 참나무 잎에 생긴 혹벌의 혹을 연구하다 우연히 기생식물이 혹을 감싼 모습을 발견했다. 자세히 조사해 보니, 흡반은 혹의 외벽을 뚫고 들어가 있었다.

ga4.jpg » 혹벌의 혹에 기생하는 것으로 밝혀진 열대 기생식물 카시타 필리포르미스. 스콧 이건, 라이스대 제공.

혹벌의 혹은 식물에는 일종의 암과 같은 조직이다. 식물의 수분과 영양분을 흡수해 살아가는 식물조직의 일부이지만 식물에 해를 끼치는 존재다. 그런데 기생식물은 이 혹으로부터 수분과 영양분을 빼앗았다. 놀랍게도 기생식물의 공격을 받은 혹의 절반 가까이에서는 다 자란 혹파리가 말라 죽은 미라 상태로 발견됐다. 이건 교수는 “기생식물은 혹 속 혹벌 애벌레를 곧바로 죽이지 않아 성체로 발달하지만 결국은 미라 상태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또 기생식물의 공격을 받은 혹은 그렇지 않은 혹에 견줘 35% 크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이건 교수는 “식물이 더 큰 혹을 공격하거나 아니면 식물이 공격하는 혹이 더욱 커지도록 유도해 더 많은 에너지를 끌어내도록 했을 것”이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설명했다.

ga.jpg » 혹에 기생하는 기생식물. 기생 생물 사이의 새로운 먹이 관계가 앞으로 추가로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매튜 코머퍼드 제공.

연구자들이 다음 연구과제로 삼는 건 어떻게 기생식물이 혹을 찾아내는가이다. 혹은 일반적으로 기생식물이 들러붙는 위치가 아닌 잎 뒷면에 달리기 때문에 기생식물에 혹을 찾아내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이건 교수는 “기생식물에 혹을 찾아내는 탐색 시스템이 있거나 반대로 혹에 덩굴식물을 이끄는 무언가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혹은 식물에 일종의 종양이기 때문에, 그 탐색 메커니즘이 규명되면 암을 찾아내 퇴치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먼 미래의 일이다.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가 이제까지 몰랐던 새로운 먹이 관계를 밝혔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숙주를 공유하는 기생식물과 기생곤충의 상호관계가 처음 드러났다. 혹을 만드는 기생말벌이 세계에 1만3000종이 넘고 기생식물도 4000종이 넘기 때문에 이번에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일지 모른다”라고 이건 교수는 말했다.

라이스대 연구팀 유튜브 영상(영어)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Scott P. Egan et al, Botanical parasitism of an insect by a parasitic plant, Current Biology 28, R847–R870, https://www.cell.com/current-biology/fulltext/S0960-9822(18)30815-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열파 5일 노출 딱정벌레, 정자 75% 감소열파 5일 노출 딱정벌레, 정자 75% 감소

    조홍섭 | 2018. 11. 16

    기후변화 위협 실험으로 증명…후대까지 영향 나타나도시 대기오염도 곤충 생장 억제, 식물 방어물질 증가기후변화로 폭염 사태가 세계적으로 잦아지면서 생태계 파괴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생물 다양성이 낮아지고 생물량이 줄어드는지는...

  • ‘현상금’ 붙은 귀신고래, 연어 그물에 걸려 사라질라‘현상금’ 붙은 귀신고래, 연어 그물에 걸려 사라질라

    조홍섭 | 2018. 11. 15

    핵심 서식지 사할린 북동부에 대형 정치망 400틀 설치전체 200마리 “위험 매우 커”…19%가 한번 이상 그물 걸려 귀신고래는 이름만큼이나 이야기가 많이 얽혀있는 고래다. 무엇보다 국립수산과학원이 2008년 “사진으로 찍으면 500만원, 그물에...

  • 5m 거대 철갑상어, 양쯔강서 댐 건설로 멸종 위기5m 거대 철갑상어, 양쯔강서 댐 건설로 멸종 위기

    조홍섭 | 2018. 11. 13

    한국 등 동아시아 살던 세계 최대 철갑상어, 성체 156마리 남아유일 번식지 양쯔강 서식지 감소·수온 상승…“10∼20년 안 멸종”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게 자라는 민물고기는 잉어나 메기가 아니라 철갑상어다. 최대 5m까지 자라는 것으로 알려진 이 ...

  • 북극이 도요새의 거대한 ‘덫’이 되고 있다북극이 도요새의 거대한 ‘덫’이 되고 있다

    조홍섭 | 2018. 11. 12

    70년 동안 둥지 포식률 3배 증가…수천㎞ 날아와 위험 자초하는 셈레밍 등 설치류 먹이 급감하자 여우 등 포식자, 새 둥지로 눈 돌려새만금 갯벌에서 볼 수 있던 넓적부리도요는 지구에 생존한 개체가 400마리 정도인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멸종...

  • 개는 정말 말귀를 알아들을까개는 정말 말귀를 알아들을까

    조홍섭 | 2018. 11. 09

    단어 1천개 이상 구분하는 ‘천재’ 개도개 두뇌 연구 결과 단어 처리 뇌 영역 확인‘개는 나의 명령을 곧잘, 그것도 다른 개들보다 훨씬 잘 알아듣는다.’ 개 주인의 4분의 1은 자신의 반려견이 남의 개보다 더 똑똑하다고 믿는다는 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