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없는 식물서 신경계 비슷한 방어 시스템 확인

조홍섭 2018. 09. 16
조회수 8804 추천수 0
동물 흔한 신경전달물질 글루타메이트가 칼슘이온 흐름 촉발
초속 1밀리 속도로 신호 전달, 수분 뒤 먼 잎에 방어물질 생산

pl1.jpg » 식물은 중추신경이 없어도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메이트가 칼슘파를 형성해 위험 신호를 먼 곳까지 비교적 빠르게 전달한다. 글루타메이트를 가한 식물에서 칼슘이 형광을 내는 모습. 토요타 외 (2018) ‘사이언스’ 제공.

식물은 다리가 없어 천적이 공격해도 도망칠 수 없다. 그러나 애벌레가 잎을 맛있게 물어뜯으면 곧 그 사실을 식물의 멀리 떨어진 잎에까지 전달하고, 애벌레에 끔찍한 맛을 선사할 화학물질을 재빨리 만들어 낸다. 식물의 이런 방어 시스템은 많이 알려졌다. 최근엔 그 구체적인 메커니즘이 잇따라 밝혀지고 있다.

미국과 일본 연구자들은 이런 방어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방아쇠를 당기는 구실을 하는 것이 세포에 널리 분포하는 칼슘이란 사실을 밝혔다. 또 칼슘 주변에서만 형광을 내도록 돌연변이를 일으킨 식물(애기장대)을 이용해 식물의 방어 시스템이 마치 두뇌가 있는 동물의 신경계처럼 작동하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이는 데 성공했다.

연구자들은 실험실의 애기장대 잎에 애벌레를 올려놓았다. 애벌레는 잎 주변을 돌아다니다 뜯어먹기 시작했다. 마지막 한 입으로 잎자루가 줄기에서 떨어져 나가자 몇 초 뒤 형광이 다른 잎으로 퍼져나갔다.


연구에 참여한 사이먼 길로이 미국 위스콘신-메디슨대 교수는 “이제까지 식물의 한 부위에 상처를 입으면 다른 부위까지 방어 반응을 촉발하는 신호체계가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었지만, 무엇이 그 시스템을 작동하는지 몰랐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연구자들은 동물에 많은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메이트가 위협에 놓인 식물에서도 작용해 칼슘의 파문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혔다.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리는 칼슘 신호는 꽤 빨랐다. 동물의 신경전달 속도와 견줄 수는 없지만, 그 몇 분의 일에 해당하는 초속 1㎜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상처를 입은 2초 뒤에 신호가 발생해 2분 뒤면 가장 먼 잎에 도달했다. 결국 애벌레의 공격을 받은 식물은 몇 분 뒤면 다른 잎에 포식자를 물리칠 독성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pl2.jpg » 손상을 당한 식물에서 칼슘파가 전파되는 속도. 왼쪽부터 0초, 20초, 40초, 0초 뒤의 모습이다. 토요타 외 (2018) ‘사이언스’ 제공.

이번 연구는 식물이 흔히 알려져 있듯이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라 동적으로 위협에 대처하는 것을 밝힌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연구와 맥을 같이한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이번 연구는 과학저널 ‘사이언스’ 14일 치에 실렸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Masatsugu Toyota et al, Glutamate triggers long-distance, calcium-based plant defense signaling, Science 14 September 2018, Vol 361 Issue 6407, http://science.sciencemag.org/cgi/doi/10.1126/science.aat7744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꿀벌 진드기는 피 아닌 ‘간’ 빤다, 50년 만에 잡힌 오류꿀벌 진드기는 피 아닌 ‘간’ 빤다, 50년 만에 잡힌 오류

    조홍섭 | 2019. 01. 16

    꿀벌응애 표적은 체액 아닌 지방체…방제 방식 바뀔 듯꿀벌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요인은 크기 1㎜ 남짓한 진드기다. 꿀벌응애라 불리는 이 절지동물은 세계적으로 양봉산업에 가장 심각한 피해를 준다. 우리나라에도 꿀벌에 만성적으로 기생하며, 특...

  • 북극토끼는 청소동물, 스라소니와 동족 사체 먹어북극토끼는 청소동물, 스라소니와 동족 사체 먹어

    조홍섭 | 2019. 01. 15

    먹이 부족한 혹한기 죽은 동물 사체 일상적으로 먹어평소 천적인 스라소니, 동족 토끼, 뇌조 깃털도 메뉴에‘다람쥐는 도토리를 먹고, 토끼는 풀을 먹고…’ 초식동물에 관한 이런 통념이 깨지고 있다. 다람쥐는 애벌레가 많아지는 봄이 오면 이 영...

  • 외모보다 똑똑한 게 낫다, 암컷 앵무의 ‘변심’외모보다 똑똑한 게 낫다, 암컷 앵무의 ‘변심’

    조홍섭 | 2019. 01. 14

    다윈의 ‘성 선택으로 지적 능력 진화’ 가설 직접 실험으로 입증문제풀이 능력 본 뒤 외모로 정한 선택 번복…먹이 찾는 능력과 직결찰스 다윈은 1871년 성 선택이 동물의 지적 능력을 진화시켰다는 가설을 처음으로 제기했다. 암컷이 더 똑똑한...

  • 새해 첫날, 눈앞에서 벌어진 멸종새해 첫날, 눈앞에서 벌어진 멸종

    조홍섭 | 2019. 01. 10

    하와이 고유 나무 달팽이 마지막 개체 ‘조지’ 증식장서 숨진 채 발견화한 장식하던 아름답고 풍부하던 종…외래종과 기후변화로 잇단 멸종한 생물 종이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기는 쉽지 않다. 모리셔스 섬에서 저녁 요리로 먹기 위해 날지 못하는...

  • 제 똥 먹는 토끼, 이유 있었다제 똥 먹는 토끼, 이유 있었다

    조홍섭 | 2019. 01. 09

    단단한 똥 말고 무른 똥 섭취…단백질, 비타민 등 영양분과 미생물 풍부못 먹게 하면 성장 억제, 영양실조…소가 되새김질하는 것과 같은 원리토끼에게는 자기 똥을 먹는 독특한 식습관이 있다. 오래전부터 알려진 이런 행동의 이유가 밝혀지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