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농축 오염으로 범고래가 위험하다

조홍섭 2018. 10. 01
조회수 17929 추천수 1
일본·영국 등 산업화 지역 바다선 다음 세대 안에 사라질 위험
사용금지 40년 됐지만 축적 증가일로…모유 통해 자식 전달도

o1.jpg » 산업화된 나라의 바다에서 다음 세대는 바다 최고 포식자인 범고래를 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노르웨이 북부 해안에서 밤중에 바다 표면에 떠오른 범고래. 아우둔 리카르드슨 제공.

40년 전 사용이 금지된 난분해 유기화합물질이 아직도 세계 범고래의 장기 생존 가능성을 위협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오염이 심한 온대 바다에서는 30∼50년 안에 범고래 집단이 괴멸할 수 있는 것으로 예측됐다.

장-피에르 더포르지 덴마크 오르후스대 생물학자 등 국제연구진은 28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서 전 세계 19개 범고래 집단 350개체의 피시비(폴리염화바이페닐, PCBs) 오염도를 바탕으로 모델링을 통해 100년 뒤의 생존 가능성을 장기 예측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조사한 19개 집단 가운데 10개 집단에서 범고래의 개체수가 급속히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가장 나쁜 곳은 모두 산업화 과정에서 피시비 배출이 많은 온대 바다로 한국·일본 등이 있는 북서 태평양, 브라질, 지브롤터 해협, 미국 서부의 북동 태평양, 영국 근해 등이었다. 연구자들은 영국 근해에는 모두 8마리의 범고래가 서식하는데, 지난 20년 동안 한 마리의 새끼도 태어나지 못했다고 밝혔다. 반대로 오염이 덜한 북극과 남극 등에서는 개체수가 오히려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피시비는 범고래의 난소 발달을 억제하고 면역력을 떨어뜨리며 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 저자인 더포르지 박사 후 연수생은 “전 세계 범고래 집단의 절반 이상이 피시비 영향을 심각하게 받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다”며 “(피시비의) 악영향은 이미 지난 50년 이상 알려졌는데, 앞으로 30∼40년 안에 오염 해역에서 범고래 집단이 붕괴할 위험이 매우 크게 나타난 모델링 결과는 충격적”이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아후스대.jpg » 피시비의 생물농축 과정. 폐수를 통해 바다로 흘러든 피시비는 플랑크톤에서 작은 물고기와 큰 물고기, 물개, 고래, 범고래 등 먹이그물을 거치면서 100만배로 농축된다. 오르후스대 제공.

피시비는 1920년대 개발돼 세계적으로 100만t 이상이 생산된 유기화합물질이다. 화학적으로 안정하고 절연과 열전달 효과가 뛰어나 전기, 플라스틱, 페인트 등 산업계에 광범하게 쓰였다. 그러나 쉽게 분해되지 않고 생물에 농축되는 데다 발암과 생식·면역 능력 감퇴 등 악영향이 드러나자 1970년대부터 사용이 금지됐다. 

그러나 40여년 전 사용이 금지된 피시비는 먹이그물을 통해 생태계로 퍼져나갔고, 최상위 포식자인 범고래는 가장 큰 피해자가 됐다. 범고래는 연어, 상어, 물개 등을 잡아먹는데, 쉽게 분해되지 않고 생물의 지방에 축적되는 성질이 있는 피시비가 플랑크톤에서 작은 물고기 등 먹이그물을 거치면서 점점 축적돼 최종 포식자인 범고래에 이르러 최고의 농도를 보이게 된다. 연구자들은 “보통 피시비가 50ppm 정도에서 불임과 심각한 면역체계 교란이 나타나는데 범고래에서는 최고 1300ppm까지 축적돼 있다”라고 밝혔다.

범고래는 60∼70년을 살기 때문에 피시비가 사용 금지된 이후에도 계속 이 유해물질을 몸속에 축적해 왔다. 게다가 지방에 녹은 피시비는 모유를 통해 새끼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범고래는 지적인 사회성 동물로, 중년에 이른 암컷이 폐경을 하고 새끼를 돌보는 행동으로 널리 알려졌다(▶관련 기사: 사람과 범고래는 왜 중년에 폐경을 할까?).

o2.jpg » 범고래는 물고기부터 물개 등 포유류, 상어, 다른 고래까지 사냥하는 최상위 포식자이다. 아우둔 리카르드슨 제공.

연구에 참여한 폴 제프슨 영국 런던동물원 범고래 전문가는 “이번 연구는 범고래처럼 장수하는 최상위 포식자에 피시비가 생물농축 되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스톡홀름 협약이 규정한 것보다 엄격한 조처가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2001년 스톡홀름 협약으로 세계 각국은 피시비의 세계적 생산 금지에 합의했고, 2025년까지는 장비 안에 들어있는 피시비의 사용도 금지하기로 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Jean-Pierre Desforges et al, Predicting global killer whale population collapse from PCB pollution, Science Vol 361 Issue 6409, http://science.sciencemag.org/cgi/doi/10.1126/science.aat1953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얼굴에 손이 가는 이유 있다…자기 냄새 맡으려얼굴에 손이 가는 이유 있다…자기 냄새 맡으려

    조홍섭 | 2020. 04. 29

    시간당 20회, 영장류 공통…사회적 소통과 ‘자아 확인’ 수단 코로나19와 마스크 쓰기로 얼굴 만지기에 어느 때보다 신경이 쓰인다. 그런데 이 행동이 사람과 침팬지 등 영장류의 뿌리깊은 소통 방식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침팬지 등 영장류와 ...

  • 쥐라기 바다악어는 돌고래처럼 생겼다쥐라기 바다악어는 돌고래처럼 생겼다

    조홍섭 | 2020. 04. 28

    고래보다 1억년 일찍 바다 진출, ’수렴 진화’ 사례 공룡 시대부터 지구에 살아온 가장 오랜 파충류인 악어는 대개 육지의 습지에 산다. 6m까지 자라는 지상 최대의 바다악어가 호주와 인도 등 동남아 기수역에 서식하지만, 담수 악어인 나일악어...

  • ‘과일 향 추파’ 던져 암컷 유혹하는 여우원숭이‘과일 향 추파’ 던져 암컷 유혹하는 여우원숭이

    조홍섭 | 2020. 04. 27

    손목서 성호르몬 분비, 긴 꼬리에 묻혀 공중에 퍼뜨려 손목에 향수를 뿌리고 데이트에 나서는 남성처럼 알락꼬리여우원숭이 수컷도 짝짓기철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과일 향을 내뿜는다. 사람이 손목의 체온으로 향기를 풍긴다면, 여우원숭이는 손목 분...

  • 뱀을 향한 뿌리 깊은 공포, 새들도 그러하다뱀을 향한 뿌리 깊은 공포, 새들도 그러하다

    조홍섭 | 2020. 04. 23

    어미 박새, 뱀 침입에 탈출 경보에 새끼들 둥지 밖으로 탈출서울대 연구진 관악산서 9년째 조사 “영장류처럼 뱀에 특별 반응” 6달 된 아기 48명을 부모 무릎 위에 앉히고 화면으로 여러 가지 물체를 보여주었다. 꽃이나 물고기에서 평온하던 아기...

  • 금강산 기암 절경은 산악빙하가 깎아낸 ‘작품'금강산 기암 절경은 산악빙하가 깎아낸 ‘작품'

    조홍섭 | 2020. 04. 22

    북한 과학자, 국제학술지 발표…권곡·U자형 계곡·마찰 흔적 등 25곳 제시 금강산의 비경이 형성된 것은 2만8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 때 쌓인 두꺼운 얼음이 계곡을 깎아낸 결과라는 북한 과학자들의 연구결과가 나왔다. 북한의 이번 연구는 금강산을...

인기글

최근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