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킬러 ‘올무’로 동남아 정글이 비어간다

조홍섭 2018. 11. 27
조회수 12424 추천수 0
90년대 잇달아 발견된 야생 소 등 세계적 신종 멸종 코앞
값싸고 손쉬운 밀렵, 도시민 수요 증가 타고 상업화

v1.jpg » 이런 토끼 보셨나요. 세계에서 베트남과 라오스 국경 안남산맥에만 서식하는 줄무늬토끼. 1996년 발견됐지만 광범한 올무 밀렵으로 멸종이 우려되고 있다. 라이프니츠 동물원 및 야생동물 연구소 제공.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 동남아 정글은 세계적인 생물 다양성의 보고다. 무척추동물이 아닌 대형 포유류 신종이 이곳에서 1990년대 들어 잇달아 발견된 것은 그 증거이다.

1992년 베트남과 라오스 국경지대에서 야생 소인 ‘사올라’가 발견됐다(▶관련 기사: 미스터리 야생 소, 발견 20년 뒤에도 감감). 대형 포유류 신종이 발견된 것은 1936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세계 동물학자들은 ‘아직 발견할 대형 동물이 남아있다는 말인가’ 하고 놀랐지만, 발견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Pseudoryx_nghetinhensis,_b.PNG » 발견된 지 25년 만에 야생에서 멸종이 불가피하다는 판정을 받은 야생 소 사올라.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1994년 베트남과 라오스 국경지대에서는 또 소형 사슴의 일종인 자이언트문착이 발견됐다. 1996년엔 라오스의 전통시장에서 이상한 토끼가 발견됐다. 등에 검은 줄무늬가 있고 엉덩이가 적갈색인 이 토끼는 이 지역에만 사는 신종으로 밝혀졌다.

최근 발견된 사올라, 자이언트문착, 줄무늬토끼는 모두 세계에서 동남아 정글에만 서식하며 올무로 인한 밀렵으로 멸종위기에 놓여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보전 전문가와 보전단체는 입을 모아 ‘올무로 인한 광범한 밀렵 때문에 생물 다양성 핫스폿인 동남아 정글이 동물 없는 텅 빈 곳이 되고 있다’며 시급한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야생 소 사올라는 첫 멸종 후보이다. 국제보전연맹(IUCN)은 2015년 이 동물의 개체수를 100마리 미만으로 평가했다. 앤드루 틸커 독일 라이프니츠 동물원 및 야생동물 연구소 연구원과 미국·베트남 야생동물 전문가들은 지난해 9월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사올라를 멸종에서 구하기 위한 긴급 호소문을 냈다. 이들은 “사올라의 최대 위협 요인은 광범한 상업적 올무 놓기”라며 “밀렵이 당장 중단되더라도 개체수가 너무 작고 분산돼 있어 회복은 힘들다”라고 지적했다. 이제 이 종을 지킬 마지막 희망은 인공증식밖에 없다. 이들은 “야생에서 생존한 개체를 구출해 보호지역에서 증식하게 한 뒤 밀렵을 근절한 야생 서식지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v2.jpg » 무인 카메라에 찍힌 줄무늬토끼. 아직은 야생에서 버텨나가지만 올무 살포가 계속된다면 사올라의 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된다. 라이프니츠 동물원 및 야생동물 연구소 제공.

틸커 등 국제 연구진은 최근 줄무늬토끼에 대한 첫 포괄적인 조사결과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밀렵 방지 대책이 없으면 줄무늬토끼도 사올라 꼴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신종 토끼의 주 서식지는 베트남과 라오스의 국경인 안남산맥 일대이다. 연구자들은 이 지역 176곳에 2014∼2016년 동안 무인카메라를 설치해 이 동물의 서식 실태를 조사했다.

과학저널 ‘오릭스’ 최근호에 실린 이들의 논문을 보면, 이 토끼의 서식지인 베트남 내 3개 보호구역 가운데 박마 국립공원에서는 전혀 관찰되지 않아 “지역적으로 절멸”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박마 지역에 올무를 이용한 밀렵이 성행하는데도 단속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보호구역 대부분 지역에서 줄무늬토끼를 비롯해 다른 희귀종들이 사라졌다”라고 설명했다.

놀랍게도 국경 건너 인접한 라오스의 반 팔레 마을은 보호구역이 아닌데도 줄무늬토끼가 서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지역도 밀렵과 벌목, 금 채광 등 위협이 곧 닥칠 것으로 연구자들은 내다봤다.

v3.jpg » 개과의 야생동물 승냥이. 동남아에서 올무로 사라지고 있는 종의 하나다. N. A. 나시르,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이번 조사에서 눈길을 끈 것은 줄무늬토끼가 사람의 ‘피난민’처럼 행동한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서식지를 골라 서식하는 게 아니라, 무작정 밀렵의 압력이 적은 곳에 숨어 사는 개체가 많다는 뜻이다. 연구자들은 이를 ‘피난 종’이라고 불렀다. 사올라 등 밀렵에 취약한 다른 동물과 함께 밀렵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피난처에 몰리는 현상이 드러났다.

연구 현장 진행에 참여한 안 응구엔은 “줄무늬토끼가 아직은 버티고 있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른다. 단속을 강화해 올무를 놓지 못하도록 하고 야생동물 수요를 막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Patrol-team-with-wire-sna-006.jpg » 베트남 사올라 자연보호구역에서 회수한 밀렵꾼의 올무. 윌리엄 로비처드, 세계자연보호기금 제공.

토머스 그레이 캄보디아 야생동물 연맹 활동가 등 국제 야생동물 연구자·활동가들은 지난해 4월 과학저널 ‘생물 다양성 보전’에 실린 논문에서 동남아 야생동물의 최대 위협은 올무라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올무가 값싸고 쉽게 설치할 수 있는 데다 수거해도 다시 설치하기가 용이해 광범하게 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자들은 “2010∼2015년 동안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 보호구역 5곳에서 올무 20만개를 수거했다”며 “그러나 해마다 수만개가 새로 뿌려지고 있다”고 밝혔다.

수력발전이나 광산개발을 위해 놓은 도로가 오지 밀렵을 가능하게 한 것도 작용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야생동물 수요가 중산층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것이 올무 밀렵의 상업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연구자들은 지적했다. “야생동물 부위가 별미이거나 특별한 효능이 있다는 속설이 일부 특권층에서 도시민 전체로 퍼지고 있고 지위와 부를 상징하기도 한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또 이런 수요를 대기 위해 “올무로 잡은 야생동물을 수집하고 중개하며 장비를 제공하는 거간꾼이 상업화를 지탱한다”고 분석했다.

v4.jpg » 올무에 걸려 죽은 동남아의 멸종위기 야생동물.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아시아코끼리, 반달가슴곰, 긴꼬리원숭이, 돼지코오소리. 토머스 그레이 외 (2017) ‘생물다양성 보전’ 제공.

올무에 걸린 동물의 대부분은 끔찍한 고통 속에 죽지만, 3분의 1은 심각한 상처를 입은 채 도망쳐 동물 복지 문제를 일으킨다. 또 아프리카의 사례를 보면, 올무에 걸린 동물의 4분의 1은 청소동물의 밥이 되거나 부패해 더 많은 올무를 설치하는 악순환을 일으킨다.

연구자들은 올무의 소유자나 제작자를 단속하고 순찰팀에 사법권을 주는 등 규제를 강화하고, 주민이 사냥하지 않고 외부인의 밀렵을 신고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을 제안했다. 연구자들은 “이런 노력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텅 빈 숲’은 동남아 전역으로 퍼져나갈 것이고 이 지역의 세계적 보호종과 생물 다양성을 지키려는 시도는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Tilker A et al (2018): A little-known endemic caught in the South-east Asian extinction crisis: the Annamite striped rabbit Nesolagus timminsi. ORYX. https://doi.org/10.1017/S0030605318000534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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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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