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등고래 거대한 입을 함정으로, 새 사냥법 확산

조홍섭 2018. 11. 30
조회수 9739 추천수 1
물새에 쫓긴 물고기떼 입속을 피난처로 착각
캐나다 밴쿠버 집단서 4년 새 20여 마리가 학습

wh.jpg » 바다 표면에 입을 벌리고 물새에 쫓긴 물고기 떼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혹등고래. 캐나다 밴쿠버 해역에서 2011년부터 관찰된 새로운 사냥법이다. 해양 교육 및 연구 협회 제공.

혹등고래는 길고 독창적인 노래와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행동으로 유명한 수염고래이지만, 사냥 방법 또한 다양하고 독창적이다. 여러 마리가 바닷속에서 공기 방울을 뿜어 만든 원형 그물 속에 청어떼를 가둔 뒤 일제히 잡아먹는 행동은 널리 알려졌다. 이 밖에도 혹등고래는 물고기 떼를 향해 갑자기 돌진해 삼키기, 꼬리로 수면을 강하게 때려 이때 발생하는 충격파로 실신한 물고기 잡기 등 먹이의 종류와 상태에 따라 다른 사냥법을 동원한다.

wh2.jpg » 혹등고래의 유명한 거품 커튼 사냥법. 물속에서 공기 방울 그물로 청어떼를 한 곳에 모은 뒤 큰 입으로 삼킨다. 크리스틴 칸, 미 해양대기국(NOAA) 제공.

혹등고래의 새로운 사냥법이 등장했다. 동물 가운데 가장 큰 축에 드는 입을 함정으로 쓰는 방법인데, 동료 가운데 효능이 인정돼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이처럼 바다 표면에서 입을 함정으로 이용하는 사냥법은 태국의 브라이드고래에서 발견되기도 했다.(▶관련 기사: 브라이드고래의 ‘천하태평’ 사냥법)

크리스티 맥밀란 등 캐나다 해양 교육 및 연구 협회 연구원들은 과학저널 ‘해양 포유류학’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캐나다 밴쿠버 섬 북동쪽에 분포하는 혹등고래 무리에서 ‘함정 사냥’이라는 새로운 사냥법이 개발돼 보급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새로운 사냥법이 문화적으로 전파되고 있으며, 작고 성글게 분포하는 먹이를 잡아먹는 에너지 효율적인 방법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혹등고래의 함정 사냥법 유튜브 영상. 해양 교육 및 연구 협회 제공.

‘함정 사냥’이란 혹등고래가 바다 표면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한동안 제자리에 머물면서, 물새들의 공격에 쫓긴 물고기 떼가 대피하도록 유도한 뒤 삼키는 방식을 가리킨다. 청어 등 물고기들은 잔잔한 연못 같은 혹등고래의 벌린 입을 피난처 삼아 몰려 들어가는데, 종종 기다란 가슴지느러미를 이용해 물고기들을 입안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연구자들이 이런 새로운 사냥법을 처음 발견한 때는 2011년으로 2마리가 이를 시작했다. 그 후 이 방법이 널리 알려지면서 2015년에는 이 해역에 서식하는 55마리 가운데 16마리(현재는 20여 마리)가 함정 사냥법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 사냥법을 쓰기 전 모든 혹등고래는 ‘돌진 사냥’을 했다. 청어떼가 공처럼 뭉쳐있는 곳을 향해 전속력으로 헤엄치다 먹이 앞에서 입을 벌리면 물의 저항 때문에 입이 최대로 벌어지고 그 속으로 고기떼가 쓸려 들어가는 방법이다. 이후 수염 사이로 물을 빼낸 뒤 물고기는 삼킨다. 이 방법은 전력 질주와 정지를 되풀이해야 해 에너지가 많이 든다. 먹이 무리가 크고 조밀하게 몰려 있을 때만 효과가 있다.

wh3.jpg » 함정 사냥법(A)과 돌진 사냥법(B)의 비교. 맥밀란 외 (2018) ‘해양 동물학’ 제공.

연구자들은 혹등고래가 돌진 사냥을 해 물고기떼가 흩어지면 정지 상태에서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함정 사냥’으로 바꾸는 모습을 종종 관찰했다. 고래들은 바다 표면에서 평균 18초 동안 입을 벌린 채 물고기떼가 들어오길 기다렸다. 이런 사냥법을 처음 개발한 고래는 가장 긴 82초 동안 입을 벌렸다. 

제자리에서 입을 벌린 채 몸을 회전하기도 했다. 바다오리, 갈매기 등 포식자에 쫓기는 물고기에게 어둡고 잔잔한 혹등고래의 입속은 안전한 피난처처럼 보였다. 길이가 4.6m에 이르러 혹등고래 몸길이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가슴지느러미도 물고기를 입속으로 몰아넣는 유용한 도구로 쓰였다.

wh4.jpg » 돌진 사냥의 대상인 밀도가 높은 청어떼(A)와 함정 사냥의 표적인 성긴 청어떼(B). 맥밀란 외 (2018) ‘해양 동물학’ 제공.

연구자들은 “혹등고래의 ‘함정 사냥법’이 이 해역 개체들 사이에 학습을 통해 전파되는 문화 현상”이라며 “밀도가 줄어든 먹이를 에너지를 덜 쓰고 잡는 효과가 인정된 결과”라고 밝혔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Christie J. McMillan et al, The innovation and diffusion of “trap‐feeding,” a novel humpback whale foraging strategy, Marine Mammal Science, https://doi.org/10.1111/mms.1255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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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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