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률 75%’ 보르네오 개구리…비결은 아빠의 헌신

조홍섭 2018. 12. 11
조회수 6147 추천수 1
보르네오 개구리 수컷, 알 지키고 올챙이 업어 웅덩이 정착까지 ‘책임’
 ‘성 역할 역전’…여러 암컷이 수컷 확보 경쟁, 암컷이 더 자주 울기도

fr1.jpg » 암컷이 낙엽 밑에 낳은 알을 지키는 보르네오 낙엽 개구리 수컷. 이런 상태로 열흘 동안 꼼짝하지 않고 지킨다. 조애너 고예스 발레요스 제공.

동물계에는 수컷이 ‘좋은 아빠’이자 ‘충직한 남편’ 노릇을 하는 종이 여럿 있다. 해마는 대표적 사례다. 물고기의 일종인 해마는 암컷이 수컷 배에 있는 주머니에 알을 낳으면, 수컷은 수정란을 돌보고 부화시킨 뒤 새끼가 독립할 때까지 뱃속에서 키우는 극진한 부성애를 보인다(▶관련 기사: '수컷 임신' 물고기 해마, 진화의 비밀 밝혀져).

개구리 가운데 해마에 필적하는 부성애를 보이는 번식행동이 발견됐다. 보르네오 열대림 바닥의 낙엽층에 서식하는 2∼3㎝ 길이의 작고 보잘것없는 개구리(학명 Limnonectes palavanensis)가 그 주인공이다.

fr2.jpg » 알에서 깬 올챙이를 업고 새끼를 풀어놓기 적당한 웅덩이를 찾아 나선 아빠 개구리. 보르네오 고유종인 이 개구리는 열대림의 극심한 ‘주택난’을 이기기 위해 이런 번식행동을 하게 됐다. 몸 가운데 흰 줄은 연구자가 개체 간 구별을 위해 그려 넣은 표식이다. 조애너 고예스 발레요스 제공.

이 개구리 수컷은 암컷이 낳은 알을 지키다 올챙이가 깨어나면 등에 태우고 적당한 웅덩이에 풀어놓는다. 이 기간에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꼼짝하지 않고 새끼를 지키며, 다른 암컷에 한눈을 팔지도 않는다. 조애너 고예스 발레요스 미국 캔자스대 행동생태학자 등 연구진은 ‘자연사 저널’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암·수의 성 역할이 역전된 개구리 최초의 사례일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가 아는 개구리는 웅덩이에서 알을 낳고 수정을 끝내면 암·수가 모두 떠난다. 태어난 올챙이는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포식자가 많고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는 어미의 돌봄이 중요하다. 개구리 종의 10% 정도는 주로 수컷이 새끼를 돌본다. 

남아메리카의 화살독개구리는 그런 예로 수컷이 올챙이를 돌보는 등의 행동을 한다. 그러나 수컷끼리 짝짓기 경쟁을 하고, 수컷이 알을 돌보지만 한 번에 여러 개의 알집을 관리하는 등 성 역할이 완전히 뒤바뀐 것은 아니다. 연구자들은 “보르네오의 낙엽 개구리는 번식에서 가장 큰 일을 하는 수컷을 차지하느라 암컷끼리 경쟁을 하는 등 완전한 성 역할의 역전 현상을 보였다”고 밝혔다. 이 개구리는 암컷이 수컷보다 더 자주 먼저 울기도 한다.

fr3.jpg » 알을 지킬 때 수컷은 먹지도 않고 다른 암컷에 한눈을 팔지도 않는다. 눈앞에 다가오는 벌레를 먹거나 자신의 피부를 벗겨 먹는 행동도 관찰됐다. 연구자들은 “이 수컷의 가장 큰 손실은 열흘간의 단식이 아니라 짝짓기 기회의 상실”이라고 밝혔다. 조애너 고예스 발레요스 제공.

낙엽속에 숨어지내다 주로 밤에 활동하는 이 개구리는 낙엽 밑에 15개가량의 알을 낳는다. 수컷은 이 알 더미를 끌어안고 약 열흘 동안 천적으로부터 지킨다. 연구자들이 실험한 결과 수컷은 사냥을 나가지 않고 24시간 동안 꼼짝 않고 알을 지켰고, 다른 암컷의 울음소리가 곁에서 들려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물론 작은 무척추동물이 코앞을 지나가면 잡아먹기도 했고, 일부는 자신의 피부 조각을 벗겨 먹기도 했다.

산란 후 열흘쯤 되자 수컷은 마치 아이를 깨우듯 발과 뺨으로 알을 어루만지고 누르며 자극을 주었다. 알껍데기가 찢어지면서 올챙이들이 나왔는데, 이들은 수컷이 내어준 등을 타고 올랐다. 수컷은 몸의 방향을 바꾸어가며 올챙이가 오르기 쉽게 자세를 고쳤다. 부화 한 시간쯤 뒤에 수컷은 10여 마리의 올챙이를 모두 등에 태우고 이들이 살아갈 웅덩이를 찾아 길을 떠났다.

fr4.jpg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올챙이를 업은 수컷 개구리, 실험용 인공 웅덩이, 개울가의 우묵한 웅덩이, 간헐적으로 시냇물이 흐르는 자연 번식지. 조애너 고예스 발레요스 제공.

올챙이는 시냇물 옆 웅덩이, 바위나 나무구멍, 동물의 진흙탕 목욕 터, 빗물 웅덩이 등에서 한 달쯤 자라야 한다. 문제는 서식지의 토양이 물을 잘 빨아들이고 지형이 비탈져 일시적 웅덩이나마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심각한 열대림의 ‘주택난’을 이 개구리는 어떻게 극복할까. 고예스 발레요스 박사 등 연구진은 또 다른 저널인 ‘동물행동학’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야생 관찰과 실험을 통해 이 문제를 다뤘다.

일반적으로 새끼를 돌보는 개구리도 동종포식 성향이 있어 다른 올챙이가 사는 웅덩이는 피한다. 그러나 연구진은 이 개구리가 자연상태이든 인공이든, 다른 올챙이나 잠자리 애벌레 같은 포식자가 있는지에 상관없이 마땅한 웅덩이를 만나면 올챙이를 내려놓는다고 밝혔다. “웅덩이에 경쟁자나 포식자가 있는가보다 웅덩이 자체를 구하느냐가 올챙이를 내려놓는 결정에 더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단지 경사진 곳에 있는 웅덩이는 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홍수 때 쓸려가거나 가뭄 때 쉽게 마르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또 적당한 웅덩이를 만나더라도 모든 올챙이를 내려놓는 게 아니라 다른 웅덩이와 2곳에 분산하는 행동을 보였다. 연구자들은 이를 “위험을 나누기 위해서”라고 보았다. 이런 부성애 덕분에 적은 수의 알을 낳지만, 이 개구리 새끼의 생존율은 75%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fr5.jpg » 낳은 알을 등에 올리는 일련의 동작. a. 알에 앞발과 뺨으로 자극을 주어 일제히 깨어나도록 유도한다. b. 알을 덮치는 자세에서 배와 발가락을 씰룩거린다. c. 알 위에 발을 올려 알껍데기를 찢는다. d. 첫 번째 올챙이가 등에 오른다(화살표). e. 수컷이 몸을 돌려 올챙이가 쉽게 오르도록 돕는다. f. 등에 오른 올챙이들이 가지런히 방향을 잡아 자리 잡는다. 조애너 고예스 발레요스 제공.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Johana Goyes Vallejos et al, Prolonged parental behaviour by males of Limnonectes palavanensis (Boulenger 1894), a frog with possible sex-role reversal, Journal of Natural History, https://doi.org/10.1080/00222933.2018.1539196

Johana Goyes Vallejos et al, Factors influencing tadpole deposition site choice in a frog with male parental care: An experimental field study, Ethology. 2018;1–11. DOI: 10.1111/eth.12820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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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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