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최고 포식자는 나무 타는 사자였다

조홍섭 2018. 12. 14
조회수 19118 추천수 1
강력한 앞발과 꼬리 이용…150㎏ 몸집의 ‘잠복 포식자’
초식동물서 진화한 ‘주머니사자’, 3만5천년 전 멸종

l1.jpg » 1969년 호주 남부 나라쿠르테에 있는 코마츠 동굴에서 발견된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주머니사자의 골격. 카로라,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10만년 전만 해도 호주에는 거대한 유대류가 득실거렸다. 키 2m에 몸무게 230㎏인 초대형 캥거루를 비롯해 하마 크기의 초식동물인 자이언트 웜뱃 등 대형 동물이 살았다. 

이들을 잡아먹던 최상위 포식자는 주머니사자였다. 초식동물이던 유대류 조상으로부터 전문적인 포식자로 진화한 이 선사시대 동물의 완벽한 골격을 분석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l2.jpg » 주머니사자의 복원도. 호세 마누엘 카네테,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로데릭 웰스 오스트레일리아 플린더스대 교수 등은 과학저널 ‘플로스 원’ 12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주머니사자는 나무를 이용한 최상위 포식자로 강력한 앞발과 꼬리를 이용해 사냥했다”고 밝혔다.

1877년 주머니사자를 학계에 처음 보고한 영국 박물학자 리처드 오웬은 이 동물을 “가장 무시무시하고 파괴적인 포식동물의 하나”라고 묘사했다. 이후 주머니사자의 생태와 행동을 둘러싼 논란이 150년 이상 고생물학자 사이에 이어졌다. 웰스 교수는 1969년 호주 남부 나라쿠르테에 있는 코마츠 동굴에서 거의 완벽한 주머니사자의 골격 화석을 발견했다. 이번 연구는 이 동굴과 또 다른 동굴에서 발굴된 화석을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다.

l3.jpg » 주머니사자의 완전한 골격과 이를 토대로 추정한 외형. 웰스 외 (2018) 플로스 원 제공.

주머니사자는 150㎏에 이르는 거대한 몸집에 체중당 무는 힘은 포유류 가운데 최고일 정도로 전문적인 킬러의 면모를 갖췄다. 강력한 앞발에는 뾰족한 발톱이 나 있고, 고양이처럼 평소에는 이를 숨길 수 있다. 

그러나 애초 호주 대륙에 고립돼 살아남은 유대류는 초식동물이었기 때문에 최상위 포식자로 진화한 뒤에도 예전 초식동물의 형질이 남아있다. 연구자들은 “주머니사자는 현존하는 유대류의 다양한 형질을 합쳐놓은 것 같다”고 논문에 적었다. 

예를 들어 주머니사자는 포유류 포식자 같은 송곳니가 없다. 대신 앵무새 부리처럼 길게 휜 앞니가 있다. 이 앞니는 초식동물 조상의 튀어나온 앞니를 재활용한 것이다. 식물체를 갈아 먹던 작은 어금니도 고기를 썰기에 적합하도록 변형됐다. 작은 어금니에는 철망을 자르는 볼트 커터처럼 날카로운 날이 달렸다.

1024px-Thylacoleo_carnifex_2.jpg » 주머니사자의 두개골. 앵무새 부리 같은 앞니와 볼트 커터 같은 작은 어금니가 두드러진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이번 연구를 통해 주머니사자는 길고 잘 발달한 상체와 짤막하고 등이 뻣뻣한 하체, 크고 강력한 꼬리를 지닌 것으로 드러났다. 꼬리와 쇄골의 세부구조는 이번에 처음 밝혀졌다. 연구자들은 “주머니사자는 단단한 꼬리를 받침대 삼아 나무를 타거나 뒷다리와 함께 삼각대로 이용해 걸터앉은 뒤 자유로워진 앞다리로 사체를 찢어 먹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하체의 구조가 빨리 달리는 데 적합하지 않아 사자보다는 호랑이에 가까운 ‘잠복형 포식자’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강력한 쇄골은 상체가 큰 힘을 낼 수 있도록 해 나무를 잘 탔을 것으로 보았다.

l4.jpg » 주머니사자가 하마 크기의 자이언트 웜뱃을 사냥하는 상상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이번에 밝혀진 해부구조를 통해 주머니사자의 사냥 행동을 추론하면, 나무 위나 높은 곳에 숨어 먹이를 기다리다 덮쳐 날카로운 발톱과 이로 죽인 뒤 다른 청소동물에 빼앗기지 않도록 사냥감을 나무 위로 끌어올렸을 것이다. 또 죽은 동물을 만나면 태즈메이니아데블이 하는 것처럼 뒤로 뻗은 꼬리와 뒷발로 받치고, 자유로운 앞발로 사체를 쥐고, 찢고, 내장을 끄집어냈을 것이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200만년 전부터 호주에 살던 주머니사자는 3만5000년 전쯤 멸종했다. 원인을 두고는 기후변화로 건조화가 진행되면서 주 서식지인 숲과 먹이 동물이 사라져 멸종했다는 ‘기후 설’과 원주민이 광범한 산불을 놓아 먹이 동물을 사냥해 멸종했을 것이라는 ‘인위적 원인설’이 논란을 벌이고 있다(▶관련 기사: 지상 최고의 킬러 등 호주의 거대동물은 누가 다 죽였나).

Thylacoleo_carnifex_cave_art.jpg » 원주민이 동굴에 그린 주머니사자로 추정되는 동물.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Wells RT, Camens AB (2018) New skeletal material sheds light on the palaeobiology of the Pleistocene marsupial carnivore, Thylacoleo
carnifex. PLoS ONE 13(12): e0208020.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208020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우리 몸엔 늦가을과 늦봄 두 계절만 있다우리 몸엔 늦가을과 늦봄 두 계절만 있다

    조홍섭 | 2020. 10. 22

    늦가을엔 바이러스 감염 대응…‘겨울잠’ 단백질도 많아져온대지역에 사는 사람이라면 4계절은 가장 분명한 환경 변화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 몸은 4계절이 아닌 2계절을 산다는 사실이 분자 차원의 추적 연구결과 밝혀졌다.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자...

  • 꽃샘추위 한 번에 어린 제비 사망률 곱절로꽃샘추위 한 번에 어린 제비 사망률 곱절로

    조홍섭 | 2020. 10. 21

    더워진 봄 산란 앞당기면 새끼 굶주릴 위험 커져, 30년 장기연구 결과기후변화는 평균으로 오지 않는다. 봄은 일찍 찾아오고 평균기온은 오르지만 꽃샘추위는 잦아진다. 동물이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 장기 현장연구로 밝혀...

  • 한국인에는 비만과 당뇨 막는 ‘쌀밥 유전자’ 있다한국인에는 비만과 당뇨 막는 ‘쌀밥 유전자’ 있다

    조홍섭 | 2020. 10. 19

    인도보다 3천년 앞서 쌀 재배, 고혈당 막는 유전적 적응 일어나한국인을 비롯한 동아시아인은 오랜 벼농사 덕분에 고탄수화물 식사로 인한 비만과 당뇨병 등의 부작용을 막는 유전적 적응을 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오랜 목축 역사가 있는 유럽 ...

  • 냄새로 코로나 검사, 개 활용 연구 활발냄새로 코로나 검사, 개 활용 연구 활발

    조홍섭 | 2020. 10. 16

    헬싱키 공항 현장 배치…80∼90% 정확도 감염자 실시간 찾아요양원 식구들이 아침마다 돌아가며 개와 아침 인사를 나누는 것만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사람보다 10만배나 뛰어난 개의 후각을 이...

  • 모기, 물리긴 해야는데 물릴 순 없어서…인공 피부 개발모기, 물리긴 해야는데 물릴 순 없어서…인공 피부 개발

    조홍섭 | 2020. 10. 15

    따뜻하고 탄력 있는 피부에 인공혈액도질병 감염 모기에 물리는 실험도 가능가을 모기가 기승을 부리지만 단잠을 방해할 뿐이다. 해마다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말라리아 등 세계적 감염병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의 사정은 훨씬 심각하다. ...

최근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