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토끼는 청소동물, 스라소니와 동족 사체 먹어

조홍섭 2019. 01. 15
조회수 18485 추천수 0
먹이 부족한 혹한기 죽은 동물 사체 일상적으로 먹어
평소 천적인 스라소니, 동족 토끼, 뇌조 깃털도 메뉴에

h1.jpg » 눈에 빠지지 않도록 발이 크게 적응한 눈덧신토끼. 먹이가 눈 속에 파묻히는 겨울을 나기 위해 사체를 먹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게티이미지뱅크

‘다람쥐는 도토리를 먹고, 토끼는 풀을 먹고…’ 초식동물에 관한 이런 통념이 깨지고 있다. 다람쥐는 애벌레가 많아지는 봄이 오면 이 영양가 풍부한 먹이를 놓치지 않는다. 초식성 소화기관을 지녔지만 토끼도 예외가 아니다. 먹이가 부족할 때 기회가 닥치면 육식도 마다치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마이클 피어스 캐나다 앨버타대 생태학자 등 연구자들은 북극에 인접한 캐나다 북서부 유콘 준주에서 눈덧신토끼가 다양한 종류의 동물 사체를 먹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과학저널 ‘노스웨스턴 내추럴리스트’ 최근호에 보고했다.

h2.jpg » 무인카메라에 찍힌 눈덧신토끼의 육식 모습. 죽은 뇌조의 깃털을 먹고 있다. 마이클 피어스 외 (2018) ‘노스웨스턴 내츄럴리스트’ 제공.

연구자들은 청소동물의 생태를 연구하기 위해 2015년부터 2년 6개월 동안 이 지역 클라우네 호수 부근에 무인카메라를 설치해 조사했다. 놀랍게도 청소동물 대열에는 초식동물로 알려진 눈덧신토끼가 포함돼 있었다. 연구자들은 “여러 종의 동물 사체를 먹는 일이 눈덧신토끼의 일상적 행동임이 처음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연구 지역에 동물 사체 161구를 놓고 2∼4m 떨어진 곳에 무인카메라를 설치해 조사했는데, 토끼는 이 가운데 12.4%인 20구를 먹었다. 토끼의 주요 포식자인 캐나다스라소니와 동족인 토끼 사체도 먹이에 포함됐다. 또 흰멧새, 뇌조, 아비 등 새들의 사체에도 입을 댔다.

h3.jpg » 캐나다스라소니의 주식 눈덧신토끼이지만, 죽은 스라소니는 반대로 토끼의 먹이가 된다. 케이스 윌리엄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동족 토끼 사체에는 1주일 동안 24차례 찾아와 먹었는데, 토끼 한 마리가 이를 독차지하려고 주변에 모인 토끼를 쫓아내는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고 논문은 밝혔다. 

뇌조 사체는 가장 즐겨 찾은 사체였다. 특히 토끼는 이 새의 깃털을 뽑아 먹는 행동을 지속해서 보였다. 한 토끼는 까마귀가 뇌조 사체를 물고간 뒤 남아있는 깃털을 먹었고, 다른 토끼는 스라소니가 먹고 남긴 날개 한 쪽을 눈밭 속에서 파내 물고 갔다. 

연구자들은 토끼가 깃털을 먹는 이유로 논병아리의 예처럼 소화를 촉진하거나 장내 세균 군을 바꾸려는 목적, 또는 단순히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했다.

h4.jpg » 눈덧신토끼가 사체를 가장 즐겨 먹는 것으로 밝혀진 뇌조.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초식동물이 사체를 먹는 것은 사체 주변에 다른 포식자가 모이기 때문에 위험을 자초하는 행동이다. 그러나 그런 행동이 최근 종종 보고되고 있다. 이를테면 비버는 연어가 하천 상류에서 번식을 마치고 죽으면 이를 포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구자들은 초식동물의 사체 청소 이유로 먹이 부족, 꼭 필요한 영양분 섭취, 사체가 풍부한 기회 활용 등을 꼽았다. 따라서 ”눈덧신토끼가 다양한 사체를 먹는 행동도 겨울철 먹이와 영양소 부족을 메꾸기 위해서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h5.jpg » 혹독한 날씨와 먹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겨울철 극지방 토끼는 동족의 사체 등 먹이를 가리지 않는다. D. 고든, E. 로버트슨,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영하 30도 이하로 기온이 떨어지는 유콘 준주의 겨울 동안 토끼는 주로 단백질 함량이 적은 나무껍질 등을 갉아먹으며 연명한다. 조사 결과 풀이 많은 5∼8월 동안은 사체를 먹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h6.jpg » 죽은 동물을 뜯어먹는 눈신토끼. 움직임을 감지하는 무인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이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Michael JL Peers et al, Scavenging By Snowshoe Hares (Lepus americanus) In Yukon, Canada, Northwestern Naturalist, 99(3):232-235.https://doi.org/10.1898/NWN18-05.1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얼굴에 손이 가는 이유 있다…자기 냄새 맡으려얼굴에 손이 가는 이유 있다…자기 냄새 맡으려

    조홍섭 | 2020. 04. 29

    시간당 20회, 영장류 공통…사회적 소통과 ‘자아 확인’ 수단 코로나19와 마스크 쓰기로 얼굴 만지기에 어느 때보다 신경이 쓰인다. 그런데 이 행동이 사람과 침팬지 등 영장류의 뿌리깊은 소통 방식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침팬지 등 영장류와 ...

  • 쥐라기 바다악어는 돌고래처럼 생겼다쥐라기 바다악어는 돌고래처럼 생겼다

    조홍섭 | 2020. 04. 28

    고래보다 1억년 일찍 바다 진출, ’수렴 진화’ 사례 공룡 시대부터 지구에 살아온 가장 오랜 파충류인 악어는 대개 육지의 습지에 산다. 6m까지 자라는 지상 최대의 바다악어가 호주와 인도 등 동남아 기수역에 서식하지만, 담수 악어인 나일악어...

  • ‘과일 향 추파’ 던져 암컷 유혹하는 여우원숭이‘과일 향 추파’ 던져 암컷 유혹하는 여우원숭이

    조홍섭 | 2020. 04. 27

    손목서 성호르몬 분비, 긴 꼬리에 묻혀 공중에 퍼뜨려 손목에 향수를 뿌리고 데이트에 나서는 남성처럼 알락꼬리여우원숭이 수컷도 짝짓기철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과일 향을 내뿜는다. 사람이 손목의 체온으로 향기를 풍긴다면, 여우원숭이는 손목 분...

  • 뱀을 향한 뿌리 깊은 공포, 새들도 그러하다뱀을 향한 뿌리 깊은 공포, 새들도 그러하다

    조홍섭 | 2020. 04. 23

    어미 박새, 뱀 침입에 탈출 경보에 새끼들 둥지 밖으로 탈출서울대 연구진 관악산서 9년째 조사 “영장류처럼 뱀에 특별 반응” 6달 된 아기 48명을 부모 무릎 위에 앉히고 화면으로 여러 가지 물체를 보여주었다. 꽃이나 물고기에서 평온하던 아기...

  • 금강산 기암 절경은 산악빙하가 깎아낸 ‘작품'금강산 기암 절경은 산악빙하가 깎아낸 ‘작품'

    조홍섭 | 2020. 04. 22

    북한 과학자, 국제학술지 발표…권곡·U자형 계곡·마찰 흔적 등 25곳 제시 금강산의 비경이 형성된 것은 2만8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 때 쌓인 두꺼운 얼음이 계곡을 깎아낸 결과라는 북한 과학자들의 연구결과가 나왔다. 북한의 이번 연구는 금강산을...

인기글

최근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