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뱀은 표류 선원처럼 빗물로 갈증 채운다

조홍섭 2019. 02. 19
조회수 11072 추천수 0
1년 절반 탈수 상태, 우기 첫 폭우가 만든 ‘담수 렌즈’서 ‘폭음’ 

s1.jpg » 바다뱀(학명 Hydrophis platurus)은 바다 표면에서 사는 유일한 바다뱀 종류이다. 폭우로 바다 표면에서 형성되는 물주머니가 유일한 수분 섭취원이다. 마크 샌포스 플로리다대 제공.

“어디를 봐도 물이지만, 마실 물은 한 방울도 없구나!”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던 선원은 이렇게 탄식했다지만, 삶의 절반을 이런 갈증 속에 살아가는 동물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역에 서식하는 척추동물의 하나인 바다뱀(학명 Hydrophis platurus)이 그 주인공이다. 이 바다뱀은 남아프리카 동해안에서 인도양과 태평양을 거쳐 중앙아메리카 서해안까지 열대성 바다에 분포하며, 최근 지구온난화와 함께 우리나라에서도 발견된다.

코브라 과에 속하며 난태생인 이 뱀은 평생 바다에서만 산다. 바다에서 살려면 소금을 배출해 몸의 수분 균형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s2.jpg » 바다뱀은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까지 널리 분포한다. 조류를 따라 이동하는 ‘세계 종’이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적색 자료집 제공.

육지에서 진화했지만, 바다로 삶터를 옮겨 성공적으로 정착한 어류, 고래, 물범, 바다거북처럼 이 바다뱀도 바다환경에 적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974년 이 뱀의 소금 배출기관이 미미한 구실밖에 못 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 바다뱀이 어떻게 담수를 구하는지 수수께끼였다.

하비 릴리화이트 미국 플로리다대 교수는 10년째 중앙아메리카 코스타리카 해안에서 바다뱀을 연구하면서 이 문제와 씨름해 왔다. 그는 일련의 논문을 통해 갈증과 싸우는 바다뱀의 생태를 규명했다.

2014년 릴리화이트 교수 등 국제 연구진은 과학저널 ‘왕립학회보 비(B)’에 실린 논문에서 바다뱀이 한 해 가운데 6∼7달을 탈수 상태에서 보낸다는 사실을 바다뱀 500마리를 대상으로 한 실험과 분석을 통해 밝혔다. 바다뱀은 건기 동안 몸 전체 수분의 80%가량을 잃는데, 이는 체중의 약 18%에 해당했다. 

우기가 오기 전에 채집한 바다뱀은 체격에 견줘 비쩍 말랐다. 그런 개체일수록 우기 동안 수분을 많이 흡수해, 체중을 15%까지 불렸다.

s3.jpg » 바다뱀은 평생 바다에서만 산다. 담수가 흘러들지 않는 먼바다의 바다뱀에게 수분 확보는 생사가 걸린 문제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바다뱀의 소금 샘을 통한 소금 배출과 먹이인 물고기를 통한 수분 섭취로는 탈수를 막지 못한다고 밝혔다. 결국 우기 때 강수량이 바다뱀의 갈증을 축이는 수단이다. 연구자들은 “우기 때 큰비가 지속할 때 바다 표면에 렌즈 모양의 담수 덩어리가 형성되는데, 바다뱀은 이곳에서 담수를 마시는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폭풍이 불 때 바다에 나가 바다뱀을 관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연구자들은 대신 실험실에서 바다뱀의 물 마시는 행동을 조사했다.

틸리화이트 교수 등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연구자들은 건기가 끝날 무렵부터 매일 코스타리카 해안에서 잡은 바다뱀을 실험실로 데려와 민물 수조에 담그고 20시간 뒤 물을 얼마나 마셨는지 측정했다. 처음 실험한 바다뱀의 80%가 물을 ‘폭음’했다. 그러나 우기가 시작된 직후 그 비율은 13%로 떨어졌다.

s4.jpg » 코스타리카 앞바다에서 폭풍과 함께 비가 내린다. 폭풍과 함께 부분적으로 형성된 물주머니가 근처 바다뱀의 수원지 구실을 한다. H. 릴리화이트 외 (2019) ‘플로스 원’ 제공.

연구자들은 “6개월 이상의 건기를 탈수 상태에서 견딘 바다뱀이 우기가 닥쳐 강우로 형성된 담수 렌즈에서 다량의 물을 섭취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과학저널 ‘플로스 원’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설명했다. 실험 결과 바다뱀은 우기가 시작된 며칠 사이에 물을 주로 마시고 우기 중간에는 거의 마시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았던 갈증을 물을 보자마자 해소한 것이다.

비가 오더라도 충분한 시간 동안 내려 강수량이 넉넉하고 바닷물이 덜 뒤섞여야 담수 렌즈가 형성된다. 이를 이용할 수 있는 바다뱀도 부근에 있는 일부일 수밖에 없다. 바다뱀의 수분 확보가 녹록지 않은 일임을 짐작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바다뱀은 기후변화가 초래할 이상 가뭄에 민감할 것”이라며 최근 벌어지는 바다뱀 무리의 멸종과 개체 수 감소도 이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또 “바다뱀 이외에도 담수에 의존하는 바다 생물이 더 있을 것”이라며 추가 연구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s5.jpg » 노란 배와 노처럼 넓적한 꼬리를 지닌 바다뱀의 모습. 이 종은 바다에서만 산다. 코스타리카에서 촬영한 바다뱀 사진이다. 알로아이자,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박대식 강원대 생명과학과 교수팀의 연구를 보면, 우리나라에는 일생을 바다에서 보내는 진정바다뱀으로 바다뱀을 비롯해 먹대가리바다뱀, 얼룩바다뱀 등 3종이 살며, 번식 등 삶의 일부를 육지에서 보내는 넓은띠큰바다뱀 등 모두 4종의 바다뱀 무리가 서식한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Lillywhite HB, Sheehy CM, III, Sandfoss MR, Crowe-Riddell J, Grech A (2019) Drinking by sea snakes from oceanic freshwater lenses at first rainfall ending seasonal drought. PLoS ONE 14(2): e0212099.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212099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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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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