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싸워서 쟁취?…동물계 루저의 ‘반란’

조홍섭 2019. 02. 20
조회수 11153 추천수 0
싸움보다 돌봄 능력·구애 과정 등 중시…더 많은 자손 남기기도

ㅣ1.jpg » 오스트레일리아 동부에 서식하는 고유종 담수어인 퍼시픽 블루아이 암컷은 힘센 수컷보다 돌봄 능력이 뛰어난 수컷을 선호한다. 그레그 월리스, 이오엘(생명 백과사전) 제공.

암컷은 크고 강한 수컷을 좋아한다. 동물 세계에서 널리 나타나는 현상이다. 암컷이 지배적인 수컷을 선호하는 이유는 그쪽이 양질의 자원을 확보하고 유전적으로 우월한 후손을 남기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이런 통념을 깨는 사례가 여럿 보고되고 있다. 수컷이 싸움을 잘한다고 꼭 암컷에게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 동물의 사례가 잇달아 밝혀진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서식하는 ‘퍼시픽 블루아이’라는 담수어 실험에서, 암컷은 수컷끼리 싸우는 모습을 보든 보지 않든 간에 싸움 능력이 나은 수컷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 물고기의 수컷은 암컷이 낳은 알을 지키는데, 싸움 능력이 뛰어나다고 새끼를 잘 돌본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메추라기를 이용한 실험에서는 싸우는 광경을 목격한 암컷이 오히려 진 수컷을 더 선택한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그 이유는 승리한 수컷이 구애 과정에서 암컷에게 상처를 입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스코틀랜드 소이 양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싸움을 잘하는 숫양이 새끼는 오히려 덜 남긴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암양은 이틀 동안의 발정기 동안 7마리의 숫양과 모두 13번의 짝짓기를 한다. 수컷끼리의 싸움도 치열해, 수컷의 60%가 상대에 들이받혀 골절이 생길 정도이다.

Tomek Augustyn.jpg » 스코틀랜드 소이 섬에 사는 소이 양. 가축화했다가 자연에 풀려나 섬 환경에 적응한 종이다. 토메크 아우구스틴,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결과적으로 싸움 잘하는 수컷은 많은 암컷을 ‘차지’하지만, 여러 마리의 수컷과 짝짓기하는 암컷을 수태시키기 위해서는 ‘정자 전쟁’이라는 또 다른 싸움을 벌여야 한다. 지배적인 수컷은 정자 고갈로 정작 암컷 몸 안에서 벌어지는 두번째 경쟁에서 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싸움에 져도 사랑은 이기는’ 사례가 귀뚜라미에서도 발견됐다. 레흐 슈스타코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동물학자 등 러시아 연구자들은 쌍별귀뚜라미 실험에서 암컷이 싸움에 승리한 승자보다 패자 쪽을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과학저널 ‘생태학과 진화 프런티어’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연구자들은 두 차례의 개별 대결에서 모두 승리한 수컷과 모두 패배한 수컷을 따로 암컷과 함께 두어 짝짓기에 이르는 과정을 19가지 행동 요소로 나누어 분석했다. 그 결과 두 귀뚜라미가 더듬이를 접촉하고부터 짝짓기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싸움에 진 수컷 쪽이 빨랐다.

ㅣ2.jpg » 싸움에 진 수컷을 선호하는 것으로 밝혀진 쌍별귀뚜라미. 우리나라 자생종은 아니지만 애완동물과 동물원 사료 용으로 도입됐다. 최근 ‘식용 곤충’으로 공인되기도 했다. 김태우,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연구자들은 “공격적인 승자는 싸움에서 구애로 미처 전환하지 못해 암컷을 잠재적인 경쟁자로 보고 구애는커녕 암컷을 물고 밀치는 공격적인 행동을 보였다”고 밝혔다. 반대로 싸움에서 진 수컷은 암컷을 보자마자 곧바로 구애 행동을 시작했다. 연구자들은 “승리한 수컷의 너무 강한 공격성이 정상적인 구애 행동으로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았다”고 논문에 적었다. 

레흐 슈스타코프는 “승리한 수컷은 공격과 관련한 호르몬이 높은 농도로 분비되었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했을 것”이라며 “곤충은 실험실에서도 자연에서와 가장 가까운 행동 유형을 보이기 때문에 이런 행동의 기초 메커니즘을 이해한다면 더 복잡한 동물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Vedenina VY and Shestakov LS (2018) Loser in Fight but Winner in Love: How Does Inter-Male Competition Determine the Pattern and Outcome of Courtship in Cricket Gryllus bimaculatus? Front. Ecol. Evol. 6:197. doi: 10.3389/fevo.2018.0019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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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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