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원산 벚나무, 소메이요시노벚나무로 부르자”

조홍섭 2019. 03. 04
조회수 17063 추천수 0
동북아생물연, 비속어와 맞춤법·과학연구 맞지 않는 식물 이름 수정 목록 발표

512.jpg » 우리나라 가로수와 공원수로 널리 심어져 있는 벚나무. 일본 원산으로 일본에서 적는 이름을 따 소메이요시노벚나무로 부르자는 제안이 나왔다. 현진오 박사 제공.

식물 이름엔 아름답고 향토색 짙은 것이 적지 않지만, 모두 아름다운 건 아니다. ‘개불알풀’ ‘며느리밑씻개’ ‘중대가리나무’처럼 아이들에게 가르치거나 방송에서 입에 올리기 민망한 이름도 있고, 학교에서 배우는 한글 맞춤법에 어긋나거나 최신 연구결과와 맞지 않는 것들도 수두룩하다.

민간 연구소인 동북아생물다양성 연구소(소장 현진오)는 28일 우리나라에 자생하거나 외래종으로 들어온 식물 5392종의 우리말 이름과 학명을 재검토해 정리한 ‘한반도 관속식물 목록’을 공개했다.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에 대한 제안을 담은 이 목록은 1일부터 이 연구소 누리집을 통해 내려받을 수 있다.

512 (1).jpg » 요즘 중부 지방에서 꽃이 핀 큰개불알풀. 큰봄까치꽃으로 순화했다. 현진오 박사 제공.
 
512 (2).jpg » 잎 뒤에 잔가시가 잔뜩 달린 며느리밑씻개. 가시모밀로 순화했다. 현진오 박사 제공.

새 식물목록에는 비속어가 들어간 이름인 ‘개불알풀’을 ‘봄까치꽃’으로, ‘며느리밑씻개’는 ‘가시모밀’로, ‘소경불알’을 ‘알더덕’으로, ‘중대가리나무’는 ‘구슬꽃나무’ 등으로 순화했다. 연구소 쪽은 가시모밀은 원로 식물학자인 고 박만규 교수가 1949년에, 봄까치꽃과 알더덕은 1974년에 사용한 예가 있고, 구슬꽃나무란 이름도 고 이영노 교수가 1996년 제안한 바 있다고 밝혔다.

최신 과학연구로 이름 변경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 ‘원조 논쟁’이 끊이지 않은 벚나무가 그런 예다. 현진오 소장은 “국립수목원 주도로 여러 대학 식물학자가 참여해 최근 연구한 결과 한국과 일본의 벚나무는 유사하지만 별개의 기원을 지닌 완전히 다른 종임이 밝혀졌다”며 “제주에 자생하는 천연기념물 왕벚나무는 그대로 ‘왕벚나무’로, 우리나라 공원과 가로수로 널리 심은 일본산 벚나무는 일본에서의 표기법을 따 ‘소메이요시노벚나무’로 부를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산 벚나무도 40∼50년 뒤 자연 수명이 다하면 차츰 도태돼 한국 특산의 왕벚나무로 대체될 것”이라며 “일본 기원임을 분명히 해 대체를 촉진하고 일제 청산이란 의미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512 (3).jpg » 제주도의 특산 식물인 왕벚나무. 서로 다른 자생 벚나무 종의 잡종으로 탄생한 종으로 일본의 벚나무와 유사하지만 전혀 다른 종이다. 현진오 박사 제공.

벚꽃 원산지 논란은 1960년대 제주도에서 왕벚나무 자생지가 발견되면서 일본 벚나무의 원조는 제주 왕벚나무라는 주장으로 자리 잡았고, 일본에서는 반대로 일본 벚나무가 제주도로 옮겨왔다는 주장으로 맞서며 계속됐다. 이에 따라 일본 기원의 벚나무도 ‘왕벚나무’로 표기하면서 제주산 특산 왕벚나무와 혼동을 불렀다. 그러나 최근 유전자 분석 결과 제주와 일본의 왕벚나무는 각각 그 지역 야생 벚나무 사이의 잡종으로 생겨났음이 밝혀졌다(▶관련 기사: 한·일 ‘벚꽃 원조’ 논란 끝? 제주 왕벚나무 ‘탄생의 비밀’ 확인).

이번 목록에서는 또 난초과 식물을 우리말 뒤에는 ‘난’, 한자어 뒤에는 ‘란’으로 적는 맞춤법에 따라 ‘지네발란’은 ‘지네발난’, ‘탐라난’은 ‘탐라란’ 식으로 난초과 식물의 표기를 바꾸었다.

512 (4).jpg » 개화한 소경불알. 알더덕으로 순화했다. 현진오 박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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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복의 관인 족두리를 닮은 꽃을 피우는 식물인 ‘족도리풀’도 ‘족두리풀’로, 난장이붓꽃’은 ‘난쟁이붓꽃’으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한편, 일반인과는 직접 관련이 없지만 식물 학명에도 처음 이름을 붙인 명명자를 포함해야 하는 규약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등의 오류가 많아 바로잡았다고 연구소 쪽은 밝혔다.

하지만 오랫동안 써오던 이름을 굳이 바꿀 필요가 있냐는 의견도 제기된다. 이웅빈 용인대 생명과학과 교수(전 식물분류학회장)는 "맞춤법이 달라지는 경우 그에 맞춰 식물 이름을 조금씩 고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예로부터 사용해온 이름을 굳이 바꿀 필요가 있느냐"고 28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에 대해 현진오 소장은 “벚나무 외에는 이미 기존에 나와 있던 대안을 받아들인 것이어서 이미 상당히 알려진 것이 많다”며 “식물의 우리말 이름은 식물학자뿐 아니라 언론인과 국어학자 등이 참여해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구소 쪽은 “이번에 제안한 목록에 대해 일반인은 물론 학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지속해서 고쳐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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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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