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늑대는 왜 보호구역 대신 군사기지 택했나

조홍섭 2019. 03. 05
조회수 28195 추천수 0
교란됐지만 밀렵 걱정 없어…확산 징검다리로 이용 밝혀져

w1.jpg » 늑대의 귀환은 보호론자에게 반갑지만, 사슴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사냥꾼은 달갑지 않다. 독일에서 복원된 늑대가 군사 훈련장을 선호하는 배경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가축을 해치는 해로운 짐승이라는 적개심 탓에 유럽 늑대는 일찌감치 몰락의 길을 걸었다. 잉글랜드는 법으로 늑대를 퇴치해 16세기 초까지 씨를 말렸다. 숲이 울창한 스웨덴의 늑대마저 1966년 사라졌다. 

폴란드 등 동유럽과 핀란드 북부의 깊은 숲에 살아남은 늑대가 다시 유럽에 퍼지고 있다. 1980∼1990년대 유럽 차원의 보호조처 덕분이다.

그 가운데 독일은 늑대 복원의 모범국이다. 19세기에 늑대가 멸종한 뒤 동독에선 복원을 금하는 정책을 폈고, 서독은 보호정책을 폈지만 들어오는 늑대가 없었다.

w2.jpg » 독일 바바리아주 국립공원에 출현한 늑대.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통일 이후 1990년대 말 비로소 늑대가 폴란드 국경을 통해 유입됐고 2000년 독일 땅에서 첫 새끼를 낳았다. 현재 독일 16개 주 가운데 7개 주에서 73개 무리와 30쌍의 늑대가 번식하고 있다. 2000∼2015년 사이 독일의 늑대는 연평균 36%의 빠른 증가세를 기록했다.

유럽에서도 인구가 밀집해 있고 숲이 조각난 독일에서 이처럼 늑대 복원이 성공을 거둔 이유는 뭘까. 독일 전역에 퍼져 있는 군사기지가 보호구역보다 중요한 구실을 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일카 라인하르트 등 독일 연구자들은 이 기간에 늑대가 어디서 번식하고 어떻게 퍼져나갔으며 어떤 이유로 죽었는지 등을 분석했다. 늑대가 처음 독일 동부의 폴란드 국경지대 숲을 통해 들어와 번식한 곳은 작센 주의 군사 훈련장이었다.

w3.jpg » 독일의 늑대 개체수 증가 추세(a)와 유입된 늑대의 정착 장소(마름모꼴)(b). 라인하르트 외 (2019) ‘컨서베이션 레터’ 제공.

이곳에서 증식한 늑대와 추가로 폴란드에서 들어온 늑대들은 특이한 양상으로 퍼져나갔다. 보호구역에서 인근 지역으로 차츰 확산한 것이 아니라 군 훈련장을 징검다리 삼아 먼 거리의 군사시설로 건너뛰어 증식했다. 

라인하르트 등은 “놀랍게도 군 지역이 재정착을 위한 디딤돌 구실을 했다”며 “새 주에 출현한 늑대 한 쌍은 언제나 군사 훈련장에 자리 잡는다. 두 번째, 세 번째 쌍도 군사시설을 찾아간다. 그 다음부터 번식한 쌍은 보호구역 등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다”고 과학저널 ‘컨서베이션 레터’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설명했다.

탱크 사격장 등이 자리 잡은 군사 훈련장은 교란된 곳이기는 하지만 식물, 무척추동물, 조류 등의 생물 다양성이 종종 국립공원에 견줄 정도로 높다. 늑대는 사람이 변형시킨 경관에 잘 적응하는 동물로 유명하다.

w4.jpg » 독일 베르겐-호네 탱크 사격 훈련장의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그러나 정작 숲이 가장 울창한 독일 북동부 폴란드 국경지대의 대규모 산림지대에 늑대가 진출한 것은 2015년이 되어서였다. 왜 늑대는 보호구역보다 군사기지를 선호하는 걸까.

연구자들은 숲의 질은 보호구역과 군사기지 사이에 별 차이가 없지만, 밀렵이 늑대의 선택에 가장 큰 요인이었을 것으로 보았다. 군 훈련장은 울타리로 둘러치지 않아 늑대와 그 주요 먹이인 사슴이 자유롭게 드나든다. 산림 당국이 사슴의 수를 조절하지만, 일반인의 출입은 통제한다. 

반면 국립공원이 아닌 소규모 보호구역은 개별적으로 관리된다. 지주와 허가받은 사냥꾼의 태도에 따라 밀렵이 벌어지기도 한다. 연구자들은 “늑대 한 무리가 사냥꾼 100명과 영역을 공유하기도 한다”며 “군 훈련장은 연방정부가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가장 큰 토지여서 늑대에게는 일종의 피난처 구실을 한다”라고 논문에 적었다.

w5.jpg » 사슴을 사냥한 늑대. 사냥꾼은 늑대가 사슴의 씨를 말릴까 봐 걱정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라인하르트는 “많은 자연보호구역에서 사슴의 수를 민간 사냥꾼이 조절하는데, 같은 사슴을 두고 경쟁 관계인 늑대와 포수 사이에 불화가 빚어질 소지가 커진다”며 “사람들은 늑대가 사슴의 씨를 말릴 것을 우려한다”라고 ‘사이언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Ilka Reinhardt et al, Military training areas facilitate the recolonization of wolves in Germany, Conservation Letters. https://doi.org/10.1111/conl.12635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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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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