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한 병 뜨면 생물지도 나온다…놀라운 디엔에이 검출법

조홍섭 2019. 03.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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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장어 조사서 기존 배터리 포획법보다 뛰어나…시간 절약, 희귀종 보호도

Kobe University.jpg » 한국 등 동아시아 하천과 강하구에서 성장한 뒤 태평양 마리아나 제도에서 산란하는 뱀장어는 서식 범위가 넓고 야행성이어서 조사가 어렵다. 환경 디엔에이 기법이 뱀장어를 조사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주목받는다. 고베대 제공.

범죄현장에 범인이 남긴 머리카락 등 생체정보가 유력한 수사 단서가 된다. 마찬가지로 생물이 물속에 남긴 배설물, 피부 조각 등에서 디엔에이(DNA)를 추출해 분석하면 어떤 생물이 사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유전 정보를 통해 생물을 조사하는 이른바 ‘환경 디엔에이(eDNA)’ 기법이 생태조사의 유력한 도구로 떠오르고 있다. 강이나 호수, 연못 속에 어떤 생물이 사는지 해당 분야 전문가가 일일이 붙잡아 동정하는 대신 물을 떠 그 속에 든 유전자를 분석하면 훨씬 빠르고 효과적으로 생물상 조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천의 뱀장어 조사에 이 기법을 적용했더니 전통적 조사법보다 오히려 나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어류학자가 하천에 어떤 물고기가 사는지 조사하려면 투망, 반두, 자망 등으로 물고기를 잡는다. 이런 식으로 서식 실태 조사가 어려운 대표적인 어종이 뱀장어다. 개체수가 많지 않은 데다 야행성이어서 낮 동안에는 돌 틈이나 구멍, 펄 속에 깊숙이 숨어 있다. 

이럴 때 동원하는 도구가 배터리다. 일반인이 쓰면 불법 어구이지만 어류 조사에 허용된다. 강한 전류를 물에 가해 깊이 숨어 있던 뱀장어가 놀라 뛰쳐나오면 그물로 붙잡는다.

히카루 이타쿠라 일본 고베대 연구원 등 일본 연구자들은 일본의 강 10곳에서 하류부터 상류까지 125곳에서 전기포획과 디엔에이 분석 두 가지로 뱀장어 서식 실태를 조사해 두 기법을 비교했다. 모두 61곳에서 뱀장어를 전기로 잡았는데, 그 가운데 92%인 56곳에서 뱀장어의 디엔에이가 확인됐다. 또 전기로 뱀장어를 잡지 못한 64곳 가운데 절반이 넘는 35곳에서 뱀장어의 유전자를 찾았다. 전기로 잡지 못한 곳은 대부분 뱀장어 개체수가 적은 하천 중·상류였다.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수생 보전: 해양 및 담수 생태계’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이번 연구로 eDNA 분석이 기존 조사보다 뱀장어를 훨씬 예민하게 찾아낸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에서는 또 뱀장어 포획 개체수가 많은 곳일수록 물속의 뱀장어 유전자 농도도 높은 상관관계가 드러나, 새로운 조사기법이 생물이 얼마나 풍부한지를 알아내는 데도 유용하다는 것을 보였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Kobe University2.jpg » 뱀장어 생물상 조사를 하는 연구자들. 왼쪽은 전기를 이용한 전통적 조사법이고 오른쪽은 환경 디엔에이를 채취하기 위해 물을 뜨는 모습이다. 고베대 제공.

환경 디엔에이 기법은 기존 조사에 견줘 매우 간편하다. 이번 조사에서 뱀장어의 디엔에이를 확보하기 위한 작업은 연구자가 하천 가운데로 걸어가 수심 10㎝ 깊이에서 1ℓ들이 병에 물을 담은 뒤 간단한 약품처리를 한 뒤 연구실로 가져오는 게 전부였다.

연구자들은 한 하천에서 전기 조사를 할 때 3명 이상이 적어도 사흘 이상을 채집하는 데 보냈다면, 환경 디엔에이 조사에서는 2명이 반나절 동안 시료를 채취한 뒤 연구실에서 1명이 1.5일 동안 데이터를 처리했다고 밝혔다.

시간과 노력을 절약할 뿐 아니라 포획 과정에서 멸종위기종에 해를 끼치는 않는 것도 장점이다. 연구자들은 이런 이유로 멸종위기인 어류, 조개류, 양서류를 조사할 때 조사대상을 죽이지 않는 환경 디엔에이 조사법이 널리 쓰이고 있다고 밝혔다. 뱀장어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 널리 분포하지만, 남획과 서식지 파괴로 급감해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2014년 멸종위기에 놓인 ‘적색목록’에 올렸다(▶관련 기사: 3천km 여정의 비밀…뱀장어는 여전히 신비롭다).

연구자들은 이밖에 환경 디엔에이 기법을 통해 육안으로는 구분이 힘든 외래종 뱀장어의 서식 여부를 알 수 있고(▶관련 기사: 외래종 뱀장어 3종 출현…소양호엔 유럽산, 청평호엔 미국산), 디엔에이 농도 변화를 통해 뱀장어의 이동을 가로막는 장벽이 하천에 있는지 등 환경 요인을 가려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환경 디엔에이를 이용한 수생 생태계 조사는 조사 정확도가 높은 호수, 연못 등 고인 물을 비롯해 강, 바다 등에서도 인기 있는 조사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또 물뿐 아니라 눈 위에 찍힌 발자국에서 지나간 포유동물의 디엔에이를 검출하고, 꽃에 앉은 꽃가루 매개곤충의 디엔에이를 추출하는 등 응용범위를 넓히고 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Hikaru Itakura et al, Environmental DNA analysis reveals the spatial distribution, abundance, and biomass of Japanese eels at the river‐basin scale, Aquatic Conserv: Mar Freshw Ecosyst. 2019;1–13., DOI: 10.1002/aqc.305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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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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