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범고래를 보고 제돌이를 생각하다

육근형 2019. 03. 11
조회수 8216 추천수 0
“보호구역 지정 시급…먹이 확보, 환경 개선, 재원 마련 뒤따라야”

01.jpg » 미국 워싱턴 주의 내면인 푸젯 사운드에서 범고래가 물 위로 뛰어오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바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다 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녀석이 있다. 바로 고래다. 아마도 고래는 인간이 가장 친근하게 느끼는 바다 생물이 아닐까? 그중에서도 스타벅스의 고향, 미국 시애틀에서는 범고래가 유명하다. 돌고래보다 둥근 머리에 검은색과 흰색의 무늬가 몸통을 둘러싸고 있어 마치 중국 쓰촨 성에 사는 자이언트판다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범고래를 산 채로 잡아 아쿠아리움에 전시한 곳이 바로 시애틀이다. 지금으로부터 50년도 더 된 1965년 7월의 일이었고, 그 범고래를 산 채로 잡은 테드 그리핀은 당시 언론에 대서특필되며 영웅 대접을 받기도 했다.

범고래는 학명이 오르키누스 오르카(Orcinus orca)여서, 쉽게 오르카로 부른다. 그런데 이 녀석의 영문 이름이 흥미롭다. ‘킬러 웨일(Killer Whale)이란 듣기에도 섬뜩한 이름을 갖고 있다. 범고래의 학명은 로마 신화에서 죽음의 신인 오르쿠스(Orcus)에서 왔다고 한다. 북미 인디언 중 하나인 하이다 부족은 범고래를 죽음의 악마라는 뜻의 ‘스캐나(skana)’라고 부르고, 알류샨 열도의 원주민은 무서운 것이라는 뜻의 ‘폴로사틱(polossatik)’이라고 부른다.1)

하지만 범고래는 사실 그렇게 무시무시한 바다 동물은 아닌 것 같다. 적어도 야생에서는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가끔 다른 고래나 물개 등을 사냥하는 모습이 다큐멘터리에 찍히기도 하지만, 대부분 물고기를 잡아먹고 산다. 시애틀 사람들에게 자기들 앞바다에 사는 범고래는 친구 같은 존재이다. 시애틀은 태평양에 가까운 대도시이지만, 실제로는 태평양에 직접 접하지 않고 푸젯 사운드2)라는 큰 만 안에 들어서 있는데, 이 만 안에 사는 범고래는 주로 연어를 먹이로 삼아 가족 단위로 정착해 산다. 태평양 먼 바다로 나가지 않고 오랜 기간 푸젯만의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는 무리이다.

그런데 작년 8월 이 무리 중 한 마리가 시애틀은 물론 전 미국 국민의 이목을 끌었다. 어미 범고래가 낳은 지 30분 만에 죽은 새끼를 끌고 다니는 장면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J35로 명명된 이 암컷은 무려 17일간이나 죽은 새끼를 품고 다녔다(어미가 새끼를 입에 물거나 머리로 밀어가며 새끼를 놓지 않았다).3) 처음 어미 범고래의 소식이 전해진 시애틀은 물론 이후 미 전역에서 많은 이들이 이 어미 범고래와 새끼의 마지막 여정에 공감하고 안타까워했다(▶관련 기사: 동물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02.jpg » 죽은 새끼를 포기하지 않고 물 위로 들어 올리며 헤엄치는 암컷 범고래 J35. 켄 발콤, 고래연구소 제공.

그런데 범고래 J35의 죽은 새끼와의 마지막 동행만큼 안타까운 사실은 최근 3년간 푸젯 만에는 새로운 새끼가 태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4) 새끼는커녕 상당수의 범고래가 영양실조에 걸려 머리 부분이 땅콩처럼 휘는 현상을 보였다.5) 작년에만 먹이 부족으로 범고래 세 마리가 죽으면서 무리의 숫자는 74마리로 줄었다. 가족관계를 이뤄 생활하는 범고래는 어미가 죽으면 그 새끼들도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미를 잃은 다른 새끼들을 비롯해 여러 마리의 범고래에서 체중 감소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6)

왜 푸젯만의 범고래가 영양실조에 걸리는 것일까? 당연히 푸젯 만에 이들의 먹이가 없기 때문이다. 푸젯 만에 서식하는 범고래는 주로 태평양 연어 중 가장 크기가 큰 왕연어(치누크 연어)7)를 먹이로 삼는다. 범고래들은 왕연어의 이동을 쫓아 함께 움직인다.8) 어미 범고래가 아니면 그 경로를 알 수 없다고 한다. 어미를 잃은 새끼 범고래가 오래 버티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왕연어가 태평양 연안, 특히 푸젯 만에서 갈수록 줄어든다는 점이다. 반면 푸젯만 북쪽의 캐나다 연안과 알래스카를 오가며 사는 다른 범고래 무리는 푸젯만의 범고래 무리와 비슷한 먹이를 먹고 유전적으로도 동일하다. 캐나다 연안의 범고래는 현재 309마리로 관찰을 시작한 1974년 이후 약 두 배 이상 늘었다.9) 이곳에서는 영양 부족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03.jpg » 푸젯만 범고래의 주 먹이인 왕연어. 연어 가운데 가장 큰 종으로 길이 150㎝, 무게 60㎏ 가까이 자란다. 미국지질조사국(USGS),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푸젯만 범고래 먹이가 부족한 원인은 푸젯만의 주변 환경에서 찾을 수 있다. 시애틀과 밴쿠버, 이 두 대도시 모두 푸젯 만에 위치한다. 주변 인구가 600만에 이른다. 과거에 푸젯만의 수질은 매우 좋지 않았다. 다행히 1970년대 이후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수질관리를 한 덕분에 지금은 비교적 청정한 상태로 개선됐다. 그런데도 범고래 먹이가 되는 연어는 늘지 않고 있다. 문제는 바다가 아니라 육지에 있었다. 과거에는 푸젯만 곳곳에 발달한 작은 하천이 왕연어에게 좋은 산란지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점점 더 숲 깊이 들어가 집을 짓고, 댐과 보를 지으며 하천에 손을 댄다. 이 때문에 강을 따라 올라와 산란해야 할 연어의 숫자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연어 부화장을 여러 곳 두고 인공부화를 통해 어린 연어 새끼를 매년 수없이 방류하지만 정작 회유하는 연어는 갈수록 줄고 있다. 

먹이만의 문제도 아니다. 푸젯만의 범고래는 사람의 간섭이나 교란으로부터 가림막이 되는 보호구역 하나 없이 주변 해안이 대부분 개발된 바다에 산다. 해안은 항구와 도시의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컨테이너와 석유를 실은 대형 선박은 커다란 프로펠러를 돌리며 수없이 푸젯만을 드나든다. 푸젯만은 땅 위의 시애틀만큼 크고 시끄러운 ‘바다의 대도시’인 셈이다. 소리로 의사소통을 하고 먹이를 잡는 범고래에게 수중 소음은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04.jpg » 푸젯 사운드 북서쪽 스페이스 니들에서 바라본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반면 푸젯만의 범고래와 달리 캐나다와 알래스카까지 퍼져있는 북쪽의 범고래는 다른 대접을 받고 있다. 주변에 인구가 적고 자연이 잘 보전되어 있기도 하지만 캐나다 정부는 범고래의 주 서식처에 오직 범고래 보호만을 위한 보호구역도 설정했다. 롭손 바이트 생태보전구역은 범고래의 주 먹이인 연어가 육지를 향해 이동할 때 지나야 하는 좁은 해협에 설정되어 있다. 캐나다는 이곳에서 범고래에게 영향을 주는 선박의 통항도 금지하고 있다. 

그동안 이곳 주 정부나 연방정부, 지자체 역시 푸젯만의 범고래를 보호하기 위해 나름으로 열심히 노력해 왔다. 1970년대 후반 처음으로 푸젯 만에 사는 범고래 무리의 숫자를 약 68마리로 파악했다. 범고래의 흑백 무늬를 사진으로 하나하나 식별해 파악한 결과였다.10) 이미 40마리가 넘는 범고래가 포획된 후였지만11), 처음으로 범고래의 수 확인되면서 이후 태평양과 푸젯 만에서 범고래 포획은 금지되었다. 1972년에는 연방정부 차원의 해양 포유류보호법이 시행되었다. 1976년 68마리였던 푸젯만의 범고래는 1995년 98마리까지 늘어났다. 또 푸젯만을 공유하는 캐나다와 미국은 이곳의 범고래를 각각 2001년과 2005년에 보호종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이후 범고래의 수는 더는 늘어나지 못하고 2018년 말 기준으로 74마리에 그친 상태다. 

05.jpg » 푸젯만 범고래 무리의 개체수 변화

2018년 여름에 전해진 범고래 어미와 죽은 새끼의 안타까운 모습은 범고래 보전 정책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지난해 말 워싱턴주 주지사인 제이 인슬리가 적극적으로 범고래 보전을 위한 예산을 마련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인슬리 주지사는 미국 내에서도 대표적인 환경론자로 얼마 전 2020년 미 대선 민주당 후보경선에도 출마 의사를 내건 인사다. 그는 범고래와 연어 보전을 위해 향후 2년간 11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조 3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경제규모 자체가 우리와 다른 미국이지만 이 정도 규모의 예산을 새로 설정하는 것은 지도자의 의지만으론 가능하지 않다. 지역에서 이에 대한 강력한 지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워싱턴 주의 범고래 보전 정책에서는 핵심 과제 세 가지를 꼽고 있다. 회유하는 연어 개체수의 회복을 비롯해 푸젯만 수중의 독성물질 관리, 선박에서 발생하는 수중 소음의 관리가 그것이다. 연어의 회유를 늘리기 위해 어도를 놓거나 복개한 하천을 자연형 하천으로 만드는 데 약 4000억 원, 연어 양어장을 늘리는 비용 200억 원도 포함되어 있다. 하천이나 연어 관리 외에도 예산 항목 중 흥미롭게도 연어를 잡아먹는 또 다른 포식자인 물범이나 바다사자 같은 기각류에 대한 관리 필요성도 제기했다. 1972년 해양 포유동물보호법 제정 이후 이들의 수가 북미 연안에서 급격히 늘어났고, 그 결과 이들이 잡아먹는 연어의 수도 많이 늘어났다. 결국 같은 먹이를 쫓는 범고래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시각이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이들 기각류에 대한 개체수 관리도 하겠다는 입장이다. 

06.jpg » 2018년 10월 7일 ‘연어의 날’을 맞아 개방한 연어 양어장 모습. 육근형 박사 제공.

또한 푸젯만 내 선박에 대한 관리도 빼놓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고래가 나타날 경우 주변 200야드(183m) 이내로 선박이 접근할 수 없는 규정이 있는데, 이번에 이를 강화해 400야드(366m)로 그 범위를 늘리고, 그 이상 800m(0.5해리) 거리 내에서는 저속 항행구역을 신설해 선박의 이동속도를 줄이도록 할 예정이다. 이에 더해 지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범고래 관광 상품을 향후 3년간 한시적으로 금지하고, 푸젯만을 오가는 대형 페리12) 3척의 디젤엔진을 전기 엔진으로 바꿔 소음과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겠다고 한다. 여기에만 약 1200억 원이 책정되어 있다. 

07.jpg » 선박 접근금지구역 강화(안). 인슬리 주지사실(Office of the Governor graphic) 제공.

08.jpg » 시애틀항에 정박 중인 대형 페리(https://twitter.com/zargoman).

범고래를 잡아온 사람을 영웅 대접한 지 50년이 흘렀다. 이젠 그 범고래를 보호하겠다고 무려 1조 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하겠다고 한다. 그 사이 범고래는 더는 바다의 포악한 살인자나 사냥의 대상이 아니게 되었다. 사람들의 인식도 변했다. 범고래는 지역을 대표하는 마스코트이자 바다 생태계 보전의 상징으로 위상이 달라졌다. 

시애틀의 범고래에서 우리 제주의 돌고래가 떠오른다. 한때 제주에서도 산 채로 잡힌 남방큰돌고래가 전국의 아쿠아리움과 테마파크로 팔려갔다. 이들 돌고래 중 처음으로 바다로 돌아간 녀석이 제돌이였다. 2013년 제돌이 이후 돌고래 여러 마리가 아쿠아리움에서 제주 바다로 돌아갔다. 다행히 제주의 남방큰돌고래의 개체수는 100여 마리가 넘는다. 푸젯만의 범고래보다는 많다. 그러나 이들 역시 해상에 들어서는 풍력발전과 오가는 대형 선박을 피해 서식범위가 점차 좁아지고 있다. 서식범위가 좁아지자 인근의 육상 양식장 주변을 맴돌며 배출구 근처에서 먹이를 구하곤 한다. 서식처가 갈수록 교란되고 먹잇감이 부족해지는 형편은 제주 남방큰돌고래나 시애틀의 범고래가 다르지 않아 보인다.

09.jpg » 제주 바다로 돌아간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등지느러미에 1번 표시가 된 개체). 김병엽 교수 제공.

제돌이와 그 무리에게도 우선 사람의 간섭에서 피할 수 있는 보호구역부터 마련해 줘야 한다. 바다의 건강성을 대표하는 생물을 보호종으로 지정하는 것은 모든 일의 시작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먹이가 되는 어류의 서식환경도 살펴봐야 한다. 낚시나 어구가 너무 많이 설치되지는 않는지, 육지에서 오염물질이 흘러가 서식처가 훼손되고 있지는 않은지 우선 알아야 한다. 

미국이 범고래를 두고 개체수 확인, 포획 금지, 보호종 지정, 보호구역 설정, 먹이 관리, 서식환경 개선 계획까지 고민하는데 걸린 시간이 대략 50년이다. 그들 역시 아직 미완성의 길을 가고 있다. 우리 제주 남방큰돌고래의 경우 이렇게 보면 처음 몇 단계까지 오는 데 불과 5년밖에 안 걸렸다. 경제성장만큼 압축적으로 이런저런 고려를 하자니 숨이 차긴 하다. 하지만 필요한 일은 명확하다. 

또한 그 일에는 돈이 든다. 돌고래 보호구역을 설정하면 때로는 어민들의 조업구역이 줄어들 수 있다. 또는 재생에너지로 주목받는 해상풍력 중 일부는 사업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이미 해상풍력단지로 제안된 사업구역이 남방큰돌고래 서식처와 겹치는 곳도 나온다. 어선이건 풍력발전 회사이건 거기에는 이해관계자가가 있고 또한 그들은 생계를 유지하거나 투자를 위해 자금을 투자했다. 이들을 설득하고 다른 대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돈이 필요하다. 미국 워싱턴주처럼 2년간 1조 원이 넘는 막대한 규모의 재원을 우리가 당장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보호종이나 보호구역 지정이 행정문서에서만 효력을 내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자를 설득하고 필요한 대안을 마련하는 데 재원이 필요하다. 

하늘 아래 공짜도 없고, 기회비용 없이는 뭘 얻을 수도 없다. 부디 푸젯만 범고래 J35의 안타까운 모습을 우리 바다에서 보지 않았으면 한다.

육근형/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연구위원, 환경과 공해연구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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