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 사용 해달, ‘동물 고고학’ 연다

조홍섭 2019. 0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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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 조개 내리친 독특한 흔적 남아…지금은 절멸한 과거 서식지 규명 가능

ot1.jpg » 멸종위기종인 해달은 두툼한 모피가 아니라 고고학적 유물을 남기는 도구 이용 행동으로 주목받는 동물이 됐다. 마셜 헤딘,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18세기 중반 대대적인 모피사냥이 시작되기 전 바다에 사는 수달인 해달은 홋카이도부터 알래스카를 거쳐 멕시코에 이르는 북태평양에 널리 분포했다. 15만∼30만 마리에 이르던 해달 개체수는 사냥으로 붕괴해, 현재 5000마리로 복원된 캘리포니아 해달 집단은 한때 50마리만 남기도 했다.

멸종위기종인 해달은 이제 모피가 아니라 귀여운 모습과 행동으로 인기를 끈다. 배 위에 새끼를 올려놓은 채 물에 떠 있거나 조류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해조로 몸을 감고 낮잠을 즐기는 모습은 절로 미소를 띠게 한다.

so2.jpg » 물에 떠 새끼를 가슴 위에 안은 해달 어미. 마이클 베어드,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so3.jpg » 손을 맞잡고 물에 떠 낮잠을 즐기는 어린 해달. 조 로버트슨,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무엇보다 해달은 해양 포유류 가운데 유일하게 돌을 도구로 쓰는 동물로 유명하다. 돌을 이용해 바다 밑 전복을 캐고, 가슴에 올려놓은 조개 등을 쳐 깨거나 반대로 돌을 가슴에 얹고 조개를 쳐 깬다. 또 해안의 바위를 모루 삼아 조개를 내리치기도 한다. 이런 해달의 도구 이용은 ‘동물 고고학’이란 새로운 학문 분야를 여는 계기가 되고 있다.

고고학이란 “유물과 유적을 통하여 옛 인류의 생활, 문화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을 가리킨다. 그런데 해달도 돌을 도구로 이용하는 행동이 ‘유적’을 남기고, 그것을 연구해 과거 해달의 서식지 등을 알 수 있음이 드러났다.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 고고학자와 미국 몬터레이 만 수족관 생태학자 등 연구자들은 지난 10년 동안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해달의 행동과 유적을 연구했다. 이들은 15일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린 논문에서 “해달이 같은 바위를 모루로 이용해 반복적으로 조개를 쳐 생긴 독특한 마모 흔적과 주변에 형성된 특징적으로 쪼개진 조개껍데기 무덤이 확인됐다”며 “지금은 절멸했지만, 과거 해달이 서식한 유사한 지역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so4.jpg » 썰물 때 조사해안 암반에 드러난 해달이 조개로 친 흔적(바위 모서리에 희게 마모된 부분). 밀물 때 드러난 암반 모서리에 해달이 조개를 내리친다. 바다에 홍합이 보인다. 마이클 하슬람 외 (2019) ‘사이언티픽 리포트’ 제공.

조사 지점에 가장 풍부한 먹이는 홍합이었는데, 수달들은 해안 암반에 이 조개를 내리쳐 알맹이를 꺼내 먹었다. 연구자들이 고고학적 방법으로 조사한 결과 바위에 난 손상 흔적은 사람이 낸 것과 분명히 구별됐다. 바위의 뾰족한 부분이나 길쭉하게 튀어나온 부분에 대고 물속에서 조개를 내리친 흔적이었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또 바위 주변에 쌓여있는 13만여 개의 조개껍데기도 양쪽이 붙은 상태에서 한쪽이 대각선 방향을 쪼개진 매우 일관된 양상을 나타냈다. 연구에 참여한 나탈리 우오미니 막스 플랑크 연구소 고고학자는 “조개껍데기가 깨진 형태가 사람이나 다른 동물이 아닌 해달이 바위에 홍합을 두드려 생긴 것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고 이 연구소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so5.jpg » 해안 암반에 조개를 내리치는 해달의 모습. 제시카 후지이, 몬터레이 만 수족관 제공.

따라서 해안에서 발견한 패총의 양상과 주변 바위의 손상 흔적 등을 통해 과거 해달이 살았는지 아닌지 등을 알 수 있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제시카 후지이 몬터레이 만 수족관 연구자는 “과거 동물 행동의 흔적을 복원하는 것은 바위 모루 이용 등의 행동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이번 연구는 동물 고고학 발달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고 말했다.

동물 고고학은 영장류의 행동에서 출발했다. 예컨대 브라질의 꼬리감기 원숭이의 일종은 바위 모루에 견과류를 놓고 깨 먹는데, 이런 행동은 적어도 600년 전부터 100세대에 걸쳐 전해 내려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 새와 물고기도 도구를 사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Michael Haslam et al, Wild sea otter mussel pounding leaves archaeological traces, Scientific Reports, volume 9, Article number: 4417 (2019), http://dx.doi.org/10.1038/s41598-019-39902-y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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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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