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비둘기, 박새, 청딱따구리…유리창에 희생된 텃새들

조홍섭 2019. 0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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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널리 분포, 건물과 무작위로 ‘쿵’…첫 충돌조사, 연 800만 마리 폐사

b0.jpg » 국도 5호선 투명 방음벽에 충돌해 죽은 되지빠귀. 철새보다는 텃새, 겨울철새보다는 여름철새의 피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조홍섭 기자

유리창에 반사된 하늘 속으로 멧비둘기가 시속 70㎞의 빠른 속도로 날아들다 충돌했다. 두개골이 순간적으로 부서지면서 새는 목숨을 잃었지만, 기름샘에서 터져 나온 기름이 몸과 깃털의 윤곽을 유리창에 판화처럼 남겼다. 

우리나라에서 건물 유리창과 투명 방음벽에서 이런 사고로 죽는 새는 연간 800만 마리 가까운 것으로 국립생태원은 추산했다. 이배근 국립생태원 박사 팀이 환경부의 용역을 받아 수행해 최근 발간한 연구 결과다. 우리나라에서 인공구조물로 인한 야생 조류의 폐사 실태를 전국적으로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관련 기사: 사람 보기 좋은 투명 방음벽, 새들에게는 ‘죽음의 유리벽’)

b1.jpg » 멧비둘기가 유리벽과 충돌한 흔적. 기름샘의 기름이 흩뿌려 몸과 날개의 윤곽을 벽에 남겼다. 국립생태원 (2019) ‘인공구조물에 의한 야생 조류 폐사 방지 대책 수립’제공.

이번 조사에서 인공구조물 가운데 건물 유리창에 충돌해 죽은 새가 대부분을 차지해, 765만 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국의 건물이 712만 동에 이르는 등 수가 많기 때문으로, 평균적으로 한 건물에 연간 부닥쳐 죽는 새는 1마리 정도였다. 

그러나 외벽에 반사도가 높은 유리를 사용하거나 녹지에 위치하는 등 일부 건물은 매우 높은 폐사율을 나타냈다. 예를 들어 서울 관악구 서울대 캠퍼스에 있는 고층건물 2개 동은 전국 평균보다 수십 배 많은 연간 27∼80마리의 새가 충돌해 죽었다. 연구자들은 “건물의 유리창은 수가 많고 전국적으로 분포해 우발적인 피해를 늘 일으킨다”고 설명했다.

b6.jpg » 유리창에 부닥쳐 죽은 호랑지빠귀. 국립생태원 (2019) ‘인공구조물에 의한 야생 조류 폐사 방지 대책 수립’제공.

건물 유리창 다음으로 최근 급증하고 있는 도로변 투명 방음벽이 새들의 ‘무덤’이 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고속도로변의 투명 방음벽에서 폐사하는 조류는 연간 3만5000여 마리, 그 밖의 도로변 방음벽에서는 연간 18만7000여 마리가 죽는 것으로 추정됐다.

투명 방음벽이 설치된 도로 1㎞마다 연평균 164마리의 새가 폐사하는 셈이다. 도로 가운데도 새들에게 특히 위험한 곳이 있어, 대전시 유성구에 있는 일반국도는 전국 평균보다 18배 많은 새가 죽음을 맞았다.

b7.jpg » 투명 방음벽과 충돌해 폐사한 오색딱따구리 수컷. 조홍섭 기자

연구에 참여한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병원 부장은 새들이 투명 방음벽과 충돌하는 이유를 “새들에게 투명 방음벽은 나뭇가지 사이의 빈 공간처럼 보이기 때문”이라며 “에너지를 절약하고 천적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새들은 방음벽 위를 훌쩍 넘는 것이 아니라 방음벽 사이의 ‘틈’을 빠져나가려는 습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전국적으로 해마다 788만 마리의 새가 유리창과 투명 방음벽에 부닥쳐 죽는다면 하루에 2만 마리꼴이다. 해마다 환경부의 겨울철새 센서스에서 추정하는 우리나라에 도래하는 겨울철새의 전체 개체수가 약 150만 마리임에 비춰 엄청난 수이다.

그 많은 죽은 새가 다 어디로 갔을까. 연구자들은 사체의 평균 발견율을 33%라고 밝혔다. 고양이, 개, 너구리, 까치 등이 죽은 새를 옮기거나 먹는 모습을 확인했고, 환경미화원이나 건물 관리인이 치우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일반인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충돌 사고가 잦은 투명 방음벽이라도 바닥의 풀숲을 세심하게 살펴야 폐사한 새를 찾을 수 있다.

b2.jpg » 유리창에 충돌한 새의 사체를 찾아온 너구리의 적외선 사진. 국립생태원 (2019) ‘인공구조물에 의한 야생조류 폐사 방지 대책 수립’제공.

유리와 충돌은 새에게 치명적이다. 김 부장은 “유리문이 빈 공간인 줄 알고 들어가다 부닥쳐 본 사람이라면 그 충격을 알 것”이라며 “새들은 비행에 필요한 체중 감소를 위해 뼈에 구멍이 많기 때문에 유리와 부닥치면 쉽게 치명적인 골절상을 입는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 유리 충돌로 인한 피해는 철새보다는 텃새, 겨울철새보다는 여름철새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건물 유리창에 부닥쳐 죽은 새 가운데 개체수가 많은 종은 멧비둘기, 박새, 집비둘기, 청딱따구리 등으로 모두 텃새였다. 보고서는 그 이유로 “텃새는 널리 분포하고 연중 서식하므로 무작위로 건물과 충돌할 확률도 높다”고 분석했다.

투명 방음벽에 충돌해 폐사한 새로도 멧비둘기가 가장 많았고 이어 직박구리, 참새 순이었다. 이 밖에 물까치, 박새, 오목눈이, 붉은머리오목눈이, 까치 등 텃새들의 피해가 두드러졌다. 이처럼 흔한 텃새 말고도 참매, 긴꼬리딱새, 황조롱이, 소쩍새, 솔부엉이 등 법정 보호종도 충돌 사고를 피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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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5.jpg » 매 그림 하나가 덩그러니 그려있는 충돌방지 무늬 아래 참새가 충돌 사고로 죽었다. 이런 방지 무늬는 제구실을 못 한다. 국립생태원 (2019) ‘인공구조물에 의한 야생조류 폐사 방지 대책 수립’제공.

한편, 유리창 조류 충돌조사를 하는 미국에서는 연간 6억 마리, 캐나다에서는 약 2500만 마리가 폐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나라에서 투명 방음벽 피해는 조사된 적은 없다. 연구자들은 “도로변 투명 방음벽이 급격히 늘어나는 데다 피해가 방음벽 양쪽에서 일어나 위험성이 크고, 공공기관이 주로 관리해 저감 대책을 마련하기 쉽다”며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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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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