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초원의 마지막 ‘극한 방랑자’ 몽골가젤 무사할까

조홍섭 2019. 04. 03
조회수 9072 추천수 0
1년에 남한 절반 면적 돌아다니기도…철도, 국경선이 이동 가로막아

512.jpg » 몽골 동부 대초원 지대에 서식하는 몽골가젤. 수천 마리가 무리 지어 최고 시속 65㎞ 속도로 12∼15㎞를 달릴 수 있다. 야생동물보전협회(WCS) 몽골 지부 제공.

몽골 동부에는 한반도 면적의 대초원이 펼쳐진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온전한 마지막 온대 초원이다. 이곳에는 하루 200∼300㎞를 거뜬히 주파하는 ‘극한 방랑자’ 몽골가젤 100만 마리가 산다. 몽골가젤은 어깨높이 80㎝에 몸무게 40㎏인 중형 영양이다.

평범한 몸집의 이 가젤이 상상을 넘어서는 이동 행동을 보인다는 사실이 장기 현장연구 결과 밝혀졌다. 데이드 난딘쳇첵 독일 괴테대 생물학자 등 국제 연구진은 ‘응용 생태학 저널’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몽골가젤 22마리에 위성 추적장치를 붙여 1∼3년 동안 이동 경로를 추적한 결과를 밝혔다.

512 (1).jpg » 몽골가젤 서식지. 푸른 곳은 분포 지점, 푸른 선은 이동 경로, 초록색은 보호구역, 붉은 선은 관통 철도 계획 지점을 가리킨다. 난딘쳇첵 외 (2019) ‘응용 생태학 저널’ 제공.

몽골가젤 한 마리가 연간 이동하는 범위는 평균 1만9346㎢로 경상북도 면적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생 움직이는 범위는 평균 10만㎢로 남한 면적과 같았다. 개체마다 차이도 커 1년에 5만㎢ 이상의 범위를 다닌 가젤도 있었다. 몽골가젤의 이동 면적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120만 마리의 누가 철 따라 이동하는 아프리카 세렝게티-마라 생태계보다 4배나 넓다.

몽골가젤은 여름철 지역적 강우로 풀이 돋아나는 곳에서 새끼를 낳고 겨울에는 눈이 적게 쌓여 이동과 먹이 찾기가 쉬운 곳을 찾아다닌다. 그러나 번식과 월동지를 정해 반복적으로 이용한다는 이제까지의 통념과 달리 가젤은 한 장소를 고집하지 않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무리의 이동장소가 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2015년 극심한 가뭄 끝에 혹한과 폭설이 내렸는데, 가젤 무리는 먹이를 찾아 언 강을 건너 300㎞ 이상을 이동했다. 만일 이런 이동이 가로막힌다면 가젤 집단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

512 (2).jpg » 몽골가젤 수컷(앞)과 암컷 그림. 필립 스클레이터,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가젤 서식지 안에는 중국과 러시아와의 국경선이 지나고 철조망 울타리가 쳐 있어 가젤이 통과할 수 없다. 위성추적 기록을 보면, 가젤 한 마리는 울타리에 가로막히자 59일 동안 울타리를 따라 80㎞를 걸어갔다. 

이 가젤은 절박하게 뚫고 지날 통로를 찾았고, 쉽사리 그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평균적으로는 가젤은 열흘에 걸쳐 11㎞ 거리의 울타리를 따라가며 통과할 길을 모색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무선 추적한 가젤의 80%가 국경에 의해 이동이 영향받았다.

512 (3).jpg » 철조망은 장거리 동물의 이동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직접적인 피해를 주기도 한다. 야생동물보전협회(WCS) K. 올손 제공.

연구자들은 “자원이 조금씩 여기저기 일시적으로 분포하는 곳에서 유랑하는 동물은 모든 경관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꼭 필요하다. 그래야 극한 상황이 벌어지는 지역을 피할 수 있다”라고 논문에 적었다. 연구자들은 적어도 11㎞에 한 군데는 가젤이 국경을 통과할 수 있는 이동통로를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국경뿐 아니라 다른 선형 장애물도 가젤을 위협한다. 몽골에는 광산 개발이 붐이어서 곳곳에 철도가 건설되고 있다. 몽골 정부는 서식지를 관통하는 5683㎞의 철도를 건설할 계획이다.

512 (4).jpg » 몽골가젤 서식지를 관통해 장거리 철도가 건설될 예정이다. 사진은 고비사막을 가로지르는 몽골관통철도의 모습이다. 피에르 안드레,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사냥과 밀렵,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 이변, 수족구병 등 질병, 가축과의 경쟁, 개발로 인한 서식지 분단 등도 가젤의 위협 요인이다. 물론 이 지역 곳곳에 몽골가젤 보호구역이 설정돼 있지만, 이번 연구에서 보호구역은 가젤 이동 경로의 8%를 커버할 뿐이었다. 가젤은 광산 등 훼손지역을 회피했지만, 보호구역을 선호하지도 않았다.

연구자들은 “몽골 동부 스텝은 세계에서 온전하게 보전된 가장 큰 온대 초원지대의 하나이고 최대 규모의 유제류 집단이 사는 곳”이라며 “특히 철도, 고속도로, 국경 울타리 등 선형 구조물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대책을 개발계획 단계부터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Dejid Nandintsetseg etal, (2019) Challenges in the conservation of wide-ranging nomadic species. Journal of Applied Ecology, https://doi.org/10.1111/1365-2664.13380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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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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