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메기도 뻐꾸기처럼, 태어나자마자 ‘살생’

조홍섭 2019. 04. 04
조회수 10353 추천수 1
입속 번식하는 시클리드에 탁란…먼저 깨어 숙주 새끼 차례로 ‘꿀꺽’

co1.jpg » 먼저 깨어난 뻐꾸기 메기가 숙주의 입속에서 갓 부화한 숙주 새끼를 삼키는 모습. 노란 부위는 새끼의 난황이다. 코헨 외 (2019) ‘필로소피컬 트랜스액션 비’ 제공.

숙주의 둥지에 슬쩍 알을 낳아 양육 부담을 온전히 떠넘기는 ‘탁란’은 매우 강력한 기생 방법이다. 탁란은 새들 사이에서 7번이나 독립적으로 진화했을 정도로 유력해, 뻐꾸기 등 100종의 새가 이런 행동을 한다.

새 말고 벌 등 일부 곤충도 탁란하지만 물고기 가운데는 아프리카 동부 탕가니카 호에 서식하는 뻐꾸기 메기가 유일하게 이런 기생을 한다. 뻐꾸기 메기가 탁란하는 대상은 시클리드라는 민물고기로, 동부 아프리카 호수에서 2000종이 산다. 이들은 대부분 암컷이 입속에서 어린 새끼를 양육하는 방법으로 번식한다. 안전한 육아로 번성했지만, 뻐꾸기 메기가 그 허점을 파고들었다.

c6-1.jpg » 탁란으로만 번식하는 탕가니카 호의 뻐꾸기 메기. 라딤 블라주에크 제공.

시클리드 암컷은 모래 둥지에 알을 낳고 수컷이 수정하면 곧바로 입에 담아 새끼가 알에서 깨어나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몇 주일 동안 입속에서 보호한다. 뻐꾸기 메기는 시클리드가 수정란을 입에 담기 전 짧은 기회를 틈타 자신의 수정란을 섞어 넣는다.

이제까지 과학자들은 탁란 기생을 당한 시클리드의 입속에 결국 뻐꾸기 메기 새끼만 남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 이런 탁란을 회피하려고 시클리드가 수상한 수정란을 뱉어내는 등 두 종 사이에 ‘진화 군비경쟁’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밝혔다(▶관련 기사: 탁란 뻐꾸기 메기와 입속 번식 물고기의 ‘진화 전쟁’).

co2.jpg » 이번 연구에서 뻐꾸기 메기의 탁란 대상인 시클리드의 일종. 입으로 번식한다. J. 그린,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마르쿠스 코헨 등 미국 콜로라도대 연구자들은 영국 왕립학회가 발간하는 과학저널 ‘필로소피컬 트랜스액션 비’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시클리드 입속에서 벌어지는 뻐꾸기 메기의 초기 발생과정을 규명했다. 개개비 둥지에서 부화한 뻐꾸기 새끼가 아직 깨지 않은 개개비 알이나 늦게 깨어난 개개비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 떨어뜨리듯이 뻐꾸기 메기가 시클리드 새끼를 먹어치우는 과정을 상세히 밝혔다.

시클리드 입속에서 뻐꾸기 메기 알은 숙주 알보다 사흘 먼저 깨어난다. 메기 치어는 배에 달린 영양 덩어리인 난황을 모두 섭취하는 나흘 뒤부터 먹이 사냥을 시작한다.

co3.jpg » 뻐꾸기 메기의 알은 숙주의 알보다 작고 일찍 깨어난다. 메기가 난황을 모두 섭취했을 때(수정 6일 뒤) 숙주 새끼가 태어난다. 코헨 외 (2019) ‘필로소피컬 트랜스액션 비’ 제공.

이때쯤 시클리드 새끼가 알에서 깬다. 늦게 태어나 메기 치어보다 상대적으로 몸이 작고 큰 난황을 달고 있다. 연구자들은 시클리드 입과 비슷한 크기의 수조 실험에서 메기 치어가 숙주 치어를 차례로 잡아먹는 모습을 확인했다.

메기는 큰 턱과 발달한 이로 갓 태어난 시클리드의 머리에 입을 부착한 뒤 6시간에 걸쳐 삼켰다. 곧이어 다른 새끼도 잡아먹었다. 연구자들은 “숙주 새끼를 모두 잡아먹은 뒤에는 형제인 메기 새끼를 동종 포식했다”고 밝혔다.

co4.jpg » 숙주 새끼를 포식한 뻐꾸기 메기 치어. 입과 이가 발달했다. 코헨 외 (2019) ‘필로소피컬 트랜스액션 비’ 제공.

연구자들은 메기의 입 구조가 숙주의 알이나 치어의 다른 부위는 물지 못하게 되어 있어 머리부터 삼키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만일 메기가 너무 일찍 알에서 깨어나 숙주가 알 상태라면 동족끼리 잡아먹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숙주 새끼를 모두 잡아먹고 시클리드의 입을 빠져나온 뻐꾸기 메기 새끼는 식성을 바꿔 복족류 등 소형 무척추동물을 잡아먹고 산다. 

연구자들은 “탁란을 하지 않는 뻐꾸기 메기의 가까운 친척뻘 메기와 비교했더니 탁란을 하는 메기 쪽이 턱과 이가 먼저 발달해 탁란을 위해 적응했음을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메기가 숙주의 새끼를 모두 잡아먹은 뒤에도 시클리드가 계속 이들을 입속에서 보호하는지, 또는 메기 새끼가 뻐꾸기 새끼처럼 숙주 어미에게 먹이를 간청하는 행동을 하는지 등은 앞으로의 연구 과제로 남겼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Cohen MS, Hawkins MB, Stock DW, Cruz A. 2019 Early life-history features associated with brood parasitism in the cuckoo catfish, Synodontis multipunctatus (Siluriformes: Mochokidae). Phil. Trans. R. Soc. B 374: 20180205. http://dx.doi.org/10.1098/rstb.2018.0205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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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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