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대멸종 순간 ‘화석 묘지’에 고스란히 재현

조홍섭 2019. 04.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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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돌과 동시 거대 물결 휩쓸려…공룡, 철갑상어, 암모나이트 떼죽음

k1.jpg » 대충돌 직후의 퇴적층에서 철갑상어와 주걱철갑상어 등이 포개진 채 화석으로 발견됐다. 데팔마 외 (2019) PNAS 제공.

중생대 말 미국을 동서로 가르는 내해의 끄트머리에 있는 강하구는 여느 때처럼 평화로웠다. 뿔 달린 초식공룡 트리케라톱스가 강변에서 풀을 뜯고 있었고, 강물 속에서는 철갑상어와 주걱철갑상어가 큰 입으로 물을 빨아들인 뒤 아가미에 걸린 작은 동물을 삼켰다. 갑자기 높이가 10m에 이르는 거대한 파도가 벽처럼 밀어닥쳤다. 동물들은 물살에 휩쓸려 육지 안쪽에 내동댕이쳐졌다. 하늘에선 콩알만 한 유리 알갱이가 무서운 속도로 비처럼 쏟아졌다. 지구 역사상 손꼽을 만한 대재앙은 이렇게 시작됐다.

6600만 년 전 지금의 멕시코 유카탄반도에 지름 11∼81㎞의 거대한 소행성(또는 혜성)이 떨어졌다. 이 충돌의 직·간접 영향으로 공룡을 포함한 지구 생물의 75%가 멸종했고, 지구는 새로운 지질시대인 신생대로 접어들었다.

Impact_event.jpg » 소행성과 지구의 충돌을 그린 상상도. 미 항공우주국(나사) 제공.

1980년 알바레스 부자가 충돌 가설을 제시한 이래 충돌설은 중생대 말의 대멸종 사태를 설명하는 학계의 정설로 자리 잡아 많은 후속 연구가 이뤄졌다. 그러나 충돌 직후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다. 충돌 1시간 이내에 벌어진 재앙의 양상을 사진으로 찍듯 보여주는 화석 산지의 연구결과가 나왔다.

로버트 데팔마 미국 플로리다 팜비치 자연사박물관 학예사 등 국제 연구진은 2일 과학저널 ‘미 국립학술원 회보(PNAS)’에 실린 논문을 통해 지난 6년 동안 노스다코타주 보우만에 있는 대충돌의 흔적이 남아있는 경계 지층인 헬 크리크 층의 화석을 분석한 결과를 밝혔다. ‘태니스’라고 이름 붙인 이 화석 산지는 대충돌 당시의 ‘킬링 필드’로 알려져 있다.

r1.jpg » 대충돌 당시 미국은 큰 내해로 나뉘었고, 북쪽 끝(별 모양)에 화석지 ‘태니스’가 있다. 데팔마 외 (2019) PNAS 제공.

철갑상어와 주걱철갑상어 등 고대 물고기가 차곡차곡 포개진 채 화석으로 굳었다. 불탄 나무둥치와 침엽수 가지도 나왔고, 죽은 포유류와 트리케라톱스, 해양 파충류인 모사사우루스의 골격도 발견됐다. 이 밖에 곤충과 암모나이트 등 바다 무척추동물의 흔적도 확인됐다.

데팔마는 “이제까지 대충돌 경계층에서 큰 동물이 떼죽음한 것은 발견된 적이 없다”며 “다른 연령대와 다른 생활사 단계를 나타내는 수많은 종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죽은 현장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화석 산지는 소행성이 떨어져 생긴 유카탄반도의 칙술루브 분화구로부터 3000㎞나 떨어져 있다. 어떻게 충돌의 충격이 그 먼 곳까지 실시간으로 전달된 걸까.

k2.jpg » 대충돌의 여파로 몰아닥친 거대한 물살에 트리케라톱스가 휘말리는 모습을 그린 상상도. 로버트 데팔마 제공.

칙술루브에 떨어진 소행성은 지름 150㎞ 깊이 20㎞의 분화구를 바다 밑에 남겼다. 엄청난 충돌 에너지로 지반의 바위는 순식간에 증발했고, 산산이 조각난 소행성 파편과 함께 대기 속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녹은 암석은 작은 유리 알갱이(테크타이트)로 굳어 땅 위로 쏟아져 내렸다. 마치 탄도미사일처럼 유리 알갱이가 지상에 도달할 때의 속도는 시속 160∼320㎞에 이르렀고, 그 막대한 에너지로 지구 전역에 산불을 일으켰다.

테크타이트 비는 대충돌 45분∼1시간 사이에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태니스에서도 다양한 곳에서 지름 0.2∼1.4㎜의 테크타이트가 발견됐다.

k3.jpg » 녹은 바위가 대기 속에서 유리로 굳은 테크타이트를 손바닥에 올려놓은 모습. 데팔마 외 (2019) PNAS 제공.

연구자들은 “만일 쓰나미라면 이 정도 거리에 도달하는데 10시간 이상 걸렸을 것”이라며 “대충돌과 함께 규모 10∼11의 지진이 발생했고 그 지진파가 10분 안에 태니스에 전달돼 ‘정진’(세이시)을 일으켰을 것”으로 추정했다. 정진은 지진 때 지진파가 정지상태인 먼 곳에 갑자기 일으키는 진동으로, 규모 9의 일본 도호쿠 대지진 때는 30분 뒤 8000㎞ 떨어진 노르웨이에 1.8m 높이의 정진이 나기도 했다.

리처드 알바레스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지진파는 충돌 9∼10분 뒤에 일어나기 시작했을 것”이라며 “따라서 모든 테크타이트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기 전에 이미 이 지역엔 물이 들어오고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큰 물살이 형성된 퇴적층에 초고속으로 떨어진 유리 알갱이가 박힌 모습이 발견됐다. 또 침엽수 송진에 박혀 호박으로 고스란히 보존된 테크타이트와 주걱철갑상어가 마지막 식사로 삼켰다 아가미에 걸린 테크타이트 모습도 확인됐다.

충돌 현장을 담은 화석층 위에는 충돌 뒤 가라앉은 먼지 등을 포함한 퇴적층이 쌓여 있다. 퇴적층에선 지구엔 드물고 소행성이나 혜성에 풍부한 고농도의 이리듐이 검출돼 대충돌의 흔적임을 증명하고 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Robert A. DePalma et al, A seismically induced onshore surge deposit at the KPg boundary, North Dakota, PNAS, www.pnas.org/cgi/doi/10.1073/pnas.1817407116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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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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