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박쥐의 장수 비결은 마비와 ‘피 나누기’

조홍섭 2019. 0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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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체중 포유류보다 4배 이상 오래 살아…체온 조절로 에너지 절약

b1.jpg » 흡혈박쥐는 유연한 체온 조절과 사회적 협동 덕분에 장수한다. 제럴드 윌킨슨 제공.

포유동물의 수명은 대개 몸 크기와 비례한다. 211살까지 산 북극고래가 있는가 하면 아프리카코끼리는 70년을 산다. 하지만 집쥐는 기껏 1∼3년 빠르고 짧은 생을 보낸다. 

사람은 이런 규칙에서 예외여서, 같은 무게의 포유동물보다 4배 오래 산다. 또 다른 예외가 박쥐인데, 큰윗수염박쥐의 수명은 같은 몸무게의 다른 동물보다 8배나 긴 40살에 이른다. 일부 박쥐가 왜 장수하는지를 밝힌 연구결과가 나왔다.

Myotis_brandti.jpg » 같은 체중의 포유동물보다 8배나 장수하는 것으로 밝혀진 큰윗수염박쥐.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제럴드 윌킨슨 미국 메릴랜드 대 생물학 교수 등은 과학저널 ‘바이올로지 레터’ 10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세계의 박쥐 67종의 디엔에이(DNA)를 계통 유전학적으로 분석해 네 계통의 박쥐가 유난히 장수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관박쥐, 귀박쥐, 긴수염박쥐와 흡혈박쥐 등 4가지 계통에서 같은 체중의 다른 포유동물보다 4.2∼8배 오래 사는 장수 형질이 독립적으로 진화했다.

주 저자인 윌킨슨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가까운 종이면서 수명에 차이가 나는 많은 사례가 나왔는데, 이들을 비교하면 일부 종이 어떻게 그렇게 오래 살 수 있게 됐는지 알 수 있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먼저 4가지 장수 계통 가운데 앞의 세 계열은 모두 고위도에 서식하는 종들로 겨울에 동면했다. 겨울잠은 혹독한 기간을 잠으로 넘겨 사망률을 낮추는 구실을 한다. 연구자들은 “겨울잠이 박쥐의 체온 조절 능력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고 밝혔다.

b2.jpg » 장수 박쥐로 밝혀진 관박쥐. 겨울 동안은 동면한다. 수전 엘리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그렇다면 중·남미의 열대·아열대 지역에 서식하는 흡혈박쥐는 어떻게 장수하는 걸까. 연구자들은 이 박쥐가 동면하지는 않지만 하루 중에도 체온과 대사율이 떨어져 마비·무기력 상태에 빠지는 사실에 주목했다. 윌킨슨 교수는 “흡혈박쥐는 포유류 가운데 특이하게 흡혈하지 않는 동안 체온을 낮추다 활동을 시작하면 체온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흡혈박쥐의 이런 습성은 애초 온대지역에 살다 대사율이 낮고 저온에 약해 아열대 지역으로 밀려났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흡혈박쥐는 주로 밤중에 가축의 다리에 기어올라 날카로운 이로 상처를 내고 흘러나온 피를 혀로 핥아 먹는다. 

그러나 사람과 가축이 들어오기 전 중·남미에는 무리 지어 사는 대형 동물이 거의 없었고 흡혈박쥐는 먹이 구하는 일이 힘겨웠을 것이다. 실제로 카리브해 지역에서는 거대한 초식동물인 자이언트 땅늘보가 멸종하자 흡혈박쥐도 자취를 감췄다.

b3.jpg » 잠자리에 모인 흡혈박쥐. 같은 혈족뿐 아니라 동료 사이에서도 먹이를 나누는 사회적 협동 행동을 한다. 우베 슈미트,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먹이부족을 이기기 위해 흡혈박쥐가 택한 생존전략은 체온을 떨어뜨려 에너지를 절약하는 마비와 함께 협동이다. 암컷 흡혈박쥐는 흡혈하지 못하고 잠자리로 돌아오면 동료 암컷이 섭취한 혈액을 토해 나눠준다. 덕분에 암컷은 수컷보다 오래 산다. 연구자들은 “흡혈박쥐의 극단적인 장수는 유연한 체온 조절과 협동적인 사회 행동 덕분인 것으로 보인다”고 논문에 적었다.

체온 조절을 할 수 있는 포유류는 그런 능력이 없는 종보다 감염과 잘 싸운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사람도 이런 능력을 부분적으로 지니고 있는데, 체온을 올려 열이 나면 면역계가 바이러스나 세균을 퇴치하는 것을 돕는다. 

한편, 이번 연구에서 수컷이 암컷보다 훨씬 큰 종이 그렇지 않은 종보다 수명이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박쥐는 임신 상태에서 비행해야 하므로 암컷이 수컷보다 크다. 연구자들은 일부 열대 박쥐에서 암컷을 차지하려는 싸움 때문에 수컷의 덩치가 켜졌고, 싸움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아진 것으로 풀이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Wilkinson GS, Adams DM. 2019 Recurrent evolution of extreme longevity in bats. Biol. Lett. 15: 20180860. http://dx.doi.org/10.1098/rsbl.2018.0860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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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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