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액 분출해 둥지 지키는 ‘자폭 진딧물’의 비밀

조홍섭 2019. 04. 19
조회수 8613 추천수 0
손상된 둥지를 체액으로 응고시켜 막아…‘사회적 면역’ 사례

ap1-1.jpg » 진딧물 유충이 침입자가 뚫어놓은 구멍을 막기 위해 흰 체액을 분비해 막고 있다. 구쓰카케 마야코 제공

사회성 곤충 가운데는 무리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극단적 이타주의 행동을 하는 종이 있다. 침입자를 끌어안고 뱃속의 독물을 뿜는 개미(▶관련 기사: 자기 배 터뜨리고 죽는 ‘자폭 개미’가 있다)나 수백 마리의 꿀벌이 죽음을 무릅쓰고 강력한 말벌을 둘러싸 쪄 죽이기도(▶관련 기사: 꿀벌, 무법자 장수말벌 공처럼 말아 ‘열 폭탄’) 한다.

침입자가 망가뜨린 둥지를 재빨리 수리하기 위해 수십 마리가 체액을 모두 짜내 구멍을 막는 진딧물의 행동이 발견됐다. 우리 몸이 세포 차원에서 하는 일을 확장한 듯한 이런 행동은 ‘사회적 면역’으로 불린다.

구쓰카케 마야코 일본 산업기술총합연구소 연구원 등 일본 연구자들은 17일 미 국립학술원회보(PNAS)에 실린 논문에서 넓은잎조록나무에 만든 혹 속에 사는 가슴진딧물의 일종(학명 Nipponaphis monzeni)이 둥지를 보호하기 위해 사회적 면역으로 해석되는 행동을 한다고 밝혔다.

ap2.jpg » 분비한 체액을 이겨 혹의 구멍을 수선하는 병정 진딧물 유충. 왼쪽에 체액을 모두 분출하고 쪼그라든 병정 진딧물이 보인다. 구쓰카케 마야코 제공

우리 몸에 상처가 나 병원체가 침입하면 체액이 흘러나와 응고해 출혈과 추가 침입을 막고 결국 딱지가 생겨 아문다. 내부에서는 면역체계가 작동해 병원체를 죽인다. 연구자들은 “진딧물의 서식지인 혹에 생긴 손상을 병정 진딧물이 체액을 분출해 급속히 응고시킨다”며 “생물의 개별 면역과 사회적 면역 사이의 놀라운 진화적 공통점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 진딧물은 조록나무에 커다란 혹을 만들고 안전한 혹 안에서 수백∼수천 마리가 모여 수액을 빨아먹으며 산다. 그러나 봄이 되면 나비나 나방 애벌레가 혹의 껍질을 뚫고 들어와 안의 진딧물 유충을 잡아먹는다.

침입자가 들어오면 병정 진딧물 유충은 애벌레에 덤벼들어 침을 쏘아 죽인다. 이어 침입자가 혹에 뚫어놓은 구멍의 수리작업에 들어간다.

구멍 주변에 몰려든 수십 마리의 진딧물은 저마다 꽁무니에서 지방이 풍부한 흰 분비물을 뿜어낸다. 체액을 모두 내보내 쪼그라든 진딧물들은 솜씨 좋게 발을 휘저어 점액을 구멍에 발라 나간다. 

점액은 금세 굳어 검은색으로 바뀐다. 혹의 상처가 아무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 수리 과정에서 진딧물은 혹 밖으로 밀려 나가거나 점액 속에 파묻혀 질식하기도 하는데 데 이에 개의치 않는다”며 “어차피 혹 안에 살아남더라도 체액을 모두 분출해 곧 죽고 만다”고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Mayako Kutsukake et al, Exaggeration and cooption of innate immunity for social defense, PNAS, www.pnas.org/cgi/doi/10.1073/pnas.1900917116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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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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