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순록이 기후변화 이기는 법, 다시마 먹기

조홍섭 2019. 05. 03
조회수 13077 추천수 0
겨울비 땅에 얼어붙으면 스발바르순록 먹이 찾아 해안으로

r1.jpg » 비가 얼어붙어 지표의 먹이를 찾기 힘들자 해안으로 나와 해조류를 먹는 스발바르순록. 브라게 B. 한센(NYTNU) 제공.

스발바르순록은 지구 최북단에 서식하는 순록이다. 기후변화의 타격을 가장 심하게 받는 이 동물은 생존을 위해 기발한 대응책을 마련했다.

이례적으로 더운 겨울, 바다가 얼어붙지 않아 작은 섬에 고립된 순록은 눈 위에 내린 비가 얼어붙자 이끼마저 구하기 힘들어졌다. 순록은 바닷가로 이동해 파도에 떠밀려온 다시마를 먹기 시작했다.

r2.jpg » 춥고 척박한 환경에 적응한 스발바르순록의 여름철 모습. 파르홀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유라시아와 북아메리카에 널리 분포하는 순록 가운데 스발바르순록은 약 5000년 전 이 섬에 고립돼 고유종이 된 아종이다. 섬의 부족한 먹이 때문에 보통 순록보다 몸 크기가 절반에 불과하고, 포식자가 없는 데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장거리 이동을 포기해 다리가 짧고 추운 날씨에 적응해 털이 두껍고 통통하다.

스발바르순록을 장기 연구해 온 브라게 브렘셋 한센 노르웨이 과학기술대 생물학자 등 국제 연구진은 과학저널 ‘에코스피어’ 4월호에 실린 논문을 통해 이 순록이 “기후변화 영향으로 해빙이 사라져 외딴 섬과 반도에 고립됐지만 유연한 행동과 보조 자원을 이용해 충격을 누그러뜨리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r3.jpg » 겨울철 해안으로 내려와 필사적으로 먹이를 찾는 스발바르순록. 라리사 T 보이메 제공.

연구자들은 스발바르제도 북쪽 스피츠베르겐 섬에서 눈 녹은 얼음층 실태와 함께 2199마리의 순록에 위치 추적 장치를 부착해 데이터를 축적해 왔다. 또 해안과 내륙의 순록 배설물을 분석해 이들이 실제로 해조류를 먹이로 섭취하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눈에 내린 비가 두껍게 얼어붙은 해일수록 해안으로 이동하는 순록이 많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해안에 온 순록의 배설물 속에서 다시마 등 해조류 성분이 다량 검출됐다.기후변화의 영향은 고위도로 갈수록 커진다. 

북위 79도에 있는 스발바르제도에서는 이상 난동이 문제다. 2009∼2010년 겨울엔 특히 그랬다. 바다가 완전히 녹은 데다 험한 산과 대규모 빙하로 고립된 순록은 섬 안에서 먹이를 찾아야 했다.

r4.jpg » 스발바르제도 북서쪽에 있는 스피츠베르겐 섬의 모습. 해빙이 녹으면 순록은 이 섬에 고립돼 먹이를 찾아야 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그러나 영구동토에 내린 비는 지표면에서 얼어 얼음층을 형성했다. 연구자들은 “얼음층을 파 땅속의 식물과 이끼를 먹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매우 힘들어진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설명했다. 이 겨울 모든 순록 개체수의 3분의 1이 해안에서 해조류를 먹는 것이 목격됐다.

그렇다면 다시마 등 해조류는 순록의 대체식량이 될 수 있을까. 연구자들은 “기존 연구를 보면 단백질 등 해조류의 영양가는 육상식물과 비슷하다”며 “그러나 해조류는 주 식량은 아니고 보조적인 칼로리 원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주 저자인 한센은 “순록이 해조류만으론 살 수 없어 보인다. 매일 해안과 얼지 않은 식물이 있는 곳을 오가는 것으로 보아, 정상적인 먹이를 함께 섭취해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조류를 많이 먹은 순록에서 염분 과다 섭취 탓인지 설사가 많았다. 순록이 해조류로 기근을 이긴다는 것은 전통적으로 순록을 치는 사미족 원주민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다고 논문은 적었다. 연구자들은 “지구온난화로 다시마는 더욱 많아질 것이기 때문에 해조류는 스발바르순록이 갈수록 심해지는 이상기상에서 살아남는 점점 더 중요한 생명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r5.jpg » 지표면이 얼음으로 덮이자 먹이를 찾지 못해 굶어 죽은 어린 스발바르순록. 이런 이상기상이 연달아 찾아와도 튼튼한 성체는 무사히 넘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브라게 B. 한센 외 (2019) ‘네이처 커뮤니케이션’ 제공.

스발바르순록의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주는 다른 연구도 있다. 한센은 다른 연구진과 함께 최근 과학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발표한 논문에서 극단적인 기후변화로 얼음층이 덮이는 사태가 빈발할 때 순록 집단이 어떤 타격을 입는지 모의 연구했더니 오히려 집단이 안정화하더라는 결과를 밝혔다. 얼음층이 덮이면 취약한 어리거나 늙은 순록이 죽으면서 집단 규모는 작지만 강건해지는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Brage Bremset Hansen et al,  Reindeer turning maritime: Ice‐locked tundra triggers changes in dietary niche utilization. Ecosphere 10(4):e02672. 10. 1002/ecs2.2672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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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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