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에서 귀촌 연습, 막걸리에 해롱해롱

김성만(채색) 2012. 0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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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색과 유하의 한반도 도보여행 ⑦ 제천 마을 이야기 학교

학생은 없지만 마을 이야기가 익어가는 학교

운동장 텃밭에서 '삽질' 선배 수연씨의 한 수 가르침

 

 

‘제천 수산면 대전리 마을 이야기 학교에 머물 수 있어요.‘라며 양철모 작가가 나의 페이스북 소식에 댓글을 남겼다. 그는 사진작가였지만 다른 활동도 매우 활발한 이다. 그와는 4대강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몇몇 예술가들이 4대강을 돌아본 뒤 전시를 하며 ‘현실’을 알리려 했다. 그 ‘대 방랑 프로젝트’ 마지막 대화마당에 내가 일종의 패널로 참여한 것이 계기였다.

마을 이야기 학교는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천에 있지만 단양에 더 가까웠다. 월악산 자락 바로 아래인 만큼 우리의 도보여행길과는 거리가 꽤 멀어 ‘가기 힘들 것 같아요.’라며 답글을 달았다. 그런데 강추위에 벌벌 떨면서 쉴만한 곳을 찾다가 그의 댓글이 생각났던 것이다.

나의 연락에 그는 흔쾌히 “오래 있어도 돼요. 거기 수연씨도 있으니까 재미있을 거에요.” 라고 답했다. ‘수연씨’가 누군지는 몰랐지만 “그래요?”라며 좋아했다. 우린 이미 여행중이었지만 마을 이야기 학교에 가는 것은 여행 중 또 다른 여행에 나서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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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리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제천 시내에서 그곳까지 가는 시내버스가 하루 세 번이었다. 버스 시간을 잘못 알아 정류장에서 삼십여분을 보낸 뒤 수산면까지 가는 버스를 탔다. 다시 그곳에서 한 시간 반 정도를 기다린 뒤 대전리 가는 버스에 탑승 완료. 버스 차창 밖으로는 충주호가 간간이 보였는데 마음이 쓰렸다.

다른 마을에 잘못 내릴까봐 조마조마했지만 그 버스의 종점이 대전리다. 여전히 날씨는 차가웠지만 바람 대신 고요가 흘렀다. 남한강에서 흔히 보았던 ‘전원주택’은 눈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일순간 “와~”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즉시 내가 살고 싶은 동네의 조건이 하나 추가되었다. ‘하루 버스 두 세대만 다닐 것!’ 교통이 편리하면 그 만큼 파괴도 빠르기 때문이다.

내리막에서 보았던 학교가 '마을 이야기 학교'임을 직감하고 그곳으로 주저없이 걸어갔다.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는 학교.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일반적인 ‘폐교’와 다를 바 없었다. 잘못 왔나 싶어 돌아가려는 찰나, 교문 한쪽 벽에 귀여운 모양으로 ‘마을 이야기 학교’라는 글씨를 발견했다. 잡풀이 자라나 있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삐걱거리는 마루를 지나 교실을 둘러보았다. “계세요?” 큰 소리를 냈다. 인기척이 없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교실을 구경했다. 아이들이 없는 학교에 무엇이 있을까? 교실 하나에 무언가 이쁘게 꾸며두었다. 안의 설명을 대강 보니 마을 이야기 박물관이다.

입구에는 작은 이름표가 붙은 상자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상자는 마을 사람들 한명 한명의 이야기들이 담겨진단다. 그러니까 마을의 이야기들이 박물관이 되어 가는 상태인 것이다. 기발하다고 여겨질 찰나 깔끔하게 생긴 얇은 잡지책이 눈에 들어왔다. 잡지 이름이 <뒷싯골 지나 방아다리 건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마을 이야기들이 가득한 책이었다. 이번호의 주제는 ‘집’이었다. 소박한 이야기들임에도 예술가들의 손을 거친 뒤라서 그런지 굉장히 아름답게 느껴졌다. 주변엔 아름다움이 차고 넘치지만 그것를 보는 ‘눈’이 아직까지 없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모든 것에 다 관심을 둘 수는 없겠지만 그런 ‘눈’을 가져야겠다는 건 공감했다. 어느 집 앞 돌덩이들이 집 주인에겐 ‘아름다운 돌정원’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없을 테다.

‘마을 이야기 학교’는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예마네)’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네트워크 대표인 김정헌님은 예마네 네트워크 제안문에서 ‘어느 순간에 예술은 마을이라는 삶의 영역에서 스스로 떨어져 나왔습니다.’라고 운을 뗀 뒤 ‘우리의 삶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아수라장’이 된 까닭은 ‘삶의 최소단위인 ‘마을’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라고 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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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이야기 학교의 교문.

즉 마을을 살리려면 ‘떨어져 나간’ 예술을 ‘다시 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마네 사람들은 이곳 마을 이야기 학교에서 마을 사람들이 ‘예술’을 스스로 찾아나갈 수 있도록 갖은 노력을 하고 있다.

동굴이나 바위에 그렸던 그림이나 농사를 지으며 불렀던 노래나 모두 공동체를 잇는 중요한 매개체였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을 정도로 우리의 예술은 사라져가고 있고, 그와 더불어 공동체도 해체되어 가고 있다. 마을회관이나 경로당이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라는 건 우숩긴하다.

장작을 태우는 난로 앞에서 한참을 씨름했다. 연통이 고장난 줄도 모르고 나는 나무를 넣느라, 유하는 쇠꼬챙이를 들고 불을 쑤시느라. 서로 핀잔 주기를 반복했다. 불 피우는 일은 누구든 주도권을 잡고 싶은 것이다. 불을 피우면 피울수록 교실 안은 연기로 가득 찼다. 

그러던 중 수연씨가 들어왔다. 불장난 하다가 들킨 아이들처럼 벌떡 일어나 그녀를 쳐다보았다. 연기를 없애보려 손을 휘둘렀지만 그 많은 연기가 어디가랴. 인사도 잊은 채 그녀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갔다. 잠을 자는 곳은 학교 선생님들이 쓰던 사택이었다. 정사각형의 빨간 벽돌로 된, 열 댓평의 사택은 두 개의 방과 작은 주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 사택이 마을 이야기 학교에 두 개 딸려 있다고 했다.

대강 보아도 우리 또래의 그녀, 금세 궁금한게 많이 쌓였다. “혼자 살고 있나?”,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나?”, “심심하지 않나?”, “어떤 농사를 짓나?” 등등, 우리의 질문공세가 이어졌다. 그녀는 일종의 학교 지킴이로 학교 주변 채소 텃밭을 일구며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예마네 사람들은 주로 주말에 오기 때문에 주중에는 대부분 혼자 보낸다고 했다.

저녁엔 그녀가 마을사람에게 얻어온 김치로 김치전을 만들었다. 그리고 소백산 막걸리도 함께 준비했다. 우리 둘과 그녀, 이렇게 셋은 고요한 마을 사택에서 막걸리판을 벌였다.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대강 비슷한 성향인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녀도 ‘자연스럽게 살고 싶은 사람’인 것이다. 

사실 수연씨는 우리보다 더 빨리 도시를 떠났다. 이십대 중반이 넘은 뒤 변산반도에 있는 생태공동체를 찾아가 그곳에서 2년여를 보냈다. 농삿일을 열심히 한 것은 물론이고 그곳 아이들의 ‘교사’가 되어 보기도 했단다. 아이들과 함께 했던 무전여행을 떠올리며 이야기하는 그녀의 눈이 초롱초롱했다. 짙은 쌍거풀이 큰 눈을 더 돋보이게 만들었다.

미술이 전공이라던 그녀, 어떻게 그 방향으로 이끌렸는지는 듣지 못했다. 아무래도 본능적으로 ‘생태적 삶’에 끌렸을 것 같다. 그녀도 나처럼 부모님은 ‘이런 삶’에 대해 많은 반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두물머리의 강한방울님의 이야기가 도마에 올랐다. ‘어머니 대지와 낳아주신 어머니 사이의 갈등’ 이야기 말이다. (두물머리 편 참고)

그런데 수연씨는 우리를 많이 부러워했다. 자신은 혼자지만 우린 커플이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여자 혼자 사는 일은 힘들어요.” 그녀의 말에 우린 서로를 쳐다보았다. 유하는 ‘우리가 부러워할만한 사이인가?’라는 눈빛이다. 서로가 아니었다면 직장을 금세 그만두고 이렇게 여행을 떠나는 일따윈 없었을 것이다.

다음 이틀 동안 수연씨를 도았다. 첫째날은 사택 앞 텃밭의 수로를 팠다. 수연씨가 먼저 시범을 보인 뒤 우리가 그대로 따라했다. 그녀는 남자인 나보다 훨씬 더 앞서서 수로를 팠는데 그녀에게서 ‘연륜’이 느껴졌다. 유하는 수로를 너무 깊고 반듯하게 파 수연씨의 칭찬은 받았지만 내가 보기엔 무리한 것 같았다.

곡괭이질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수시로 돌뿌리에 걸려 ‘응~ 응~’ 힘을 쓰며 돌을 걸러냈다. 지나가던 할머니는 파낸 흙을 바깥쪽으로 뿌리는 날 보며 “아까운 흙을…. 안쪽으로 부어.”라며 한탄했다. 그러고 보니 수로의 흙도 검정의 찰기가 듬뿍 돌고 있다. 벌써 늙어버렸는지 곡괭이질을 하다가 다른 쪽으로 걸으려면 ‘꼬부랑 할머니’처럼 허리가 굽은 채로 가야 했다.

금세 할당량을 다 해버린 수연씨에게 “정말 잘 하시네요!”라고 말했더니 “변산 공동체에서 처음 할 때도 그랬어요. 저는 처음이었는데 다른 분들이 잘 한다고 칭찬을 하더라구요.”라며 스스로 농삿일에 소질이 있다는 걸 강조했다. 하지만 “제가 잘 하니까 남자들이 다른 여자들은 도와주는데 저는 내버려 두더라구요.”라고 푸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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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를 파고 있는 유하(바로 앞)와 수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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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 작은 운동장을 텃밭으로 활용하고 있다.


다음날은 “부엽토를 밭에다 갖다 부을 건데요.” 하며 일을 부탁했다. 부엽토는 숲에서 자연스레 쌓인 기름진 흙이다. “숲은 비료를 주지 않는데도 울창하게 유지가 되잖아요?”라는 그녀의 말에 속으로 ‘와~!’하고 감탄했다. 밭을 숲의 흙으로 덮는다는 건 생각조차 못해 봤기 때문이다. 다만 너무 넓은 지역의 부엽토를 긁어내면 숲이 황폐화 될 것이지만, 작은 텃밭 정도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았다.

부엽토는 멀리 있지 않았다. 바로 학교 뒤뜰! 깊게 파지 않아도 시꺼먼 색의 기름진 흙이 쌓여 있었다. 이 때도 그녀의 ‘삽질’은 노련했다. 힘으로 따지자면 내가 훨씬 더 셀 터, 그러나 그녀의 속도에는 반도 못미쳤다. 남자라고 우쭐했다가는 혼쭐이 나겠다 싶었다. 작은 포대 네댓개를 채운 뒤 외바퀴 수레에 담아 밭으로 가져갔다. 

처음엔 수연씨 혼자 수레를 몰고 갔다. ‘그리 어렵지 않나보군~’ 했는데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유하는 물론이고 나마저도 비틀거리며 쏟을뻔 했다. 결국 양편에서 잡아주어 간신히 가져갔다. 우린 아직 귀촌한 것도 아니거니와 농삿일을 배운 적도 없는 상태. 이 짧은 경험으로도 앞날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녀의 농사는 예상했던 대로 ‘자연농업’이었다. 농약을 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비료도 주지 않는다. 게다가 잡초가 자라지 말라고 이랑을 덮는 검정 비닐 멀칭은 아예 하지 않는다. 대신 김매기로 잘라낸 주변의 잡풀을 덮어주는 소위 ‘풀 멀칭’을 한단다. 물론 “작은 텃밭은 그렇게 해도 괜찮은데, 큰 밭은 어림도 없어요. 정말 힘들 거에요.” 한다. 아쉬운 것은 그녀도 혼자서 하는 농사는 오래 되지 않았다고. 변산공동체에서는 모두가 힘을 합쳐서 했기 때문에 좀 다르단다.

일을 3분의 2 정도 했을까? 막걸리와 김치로 참을 먹었다. 땀을 흠뻑 흘린 뒤라서 그렇게 맛날 수가 없었다. 서로 “허,허,허” 웃으며 맛있는 참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유하와 나는 금세 얼굴이 시뻘게지고 어지러움이 찾아왔다. 몸 생각을 못하고 즐거운 마음에 단숨에 몇 잔을 들이킨 것이다.

비틀거리며 몇 포대를 더 가져온 뒤 옆집에 들려 점심을 먹었다. 5년 전 귀촌을 했다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흥미로운 이야기는 해롱거리는 정신속에 제대로 듣지도 못했다. “밥 먹고 냉이 캐러 가기로 했는데….” 유하가 말했다. 우리 스스로도, 남들이 보기에도 움직인다는 건 불가능했다. “오랫만에 낮잠이나 주무세요.” 수연씨가 답했다. 

비실비실 웃으며 그렇게 낮잠을 청했다. 땀 범벅이 되었던 옷은 옆 집 구들방에서 밥 먹으며 다 말라버렸다. 꽤나 쾌적한 상태다. 도시의 시끄러움, 번잡함, 스트레스 그리고 교통소음. 아무것도 없었다. 햇살이 비집고 들어온 방 안에서 달콤한 낮잠을 즐겼다.

 

글·사진 김성만(채색)/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생태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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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만(채색) 생태활동가
녹색연합 자연생태국, 4대강 현장팀에서 활동했었다. 파괴를 막는 방법은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라 믿고 2012년 3월부터 '생태적인 삶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여행을 떠난다. 중국 상하이에서 포르투갈의 리스본까지 자전거로 여행하고 <달려라 자전거>를 냈고, 녹색연합에서 진행한 <서울성곽 걷기여행>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메일 : sungxxx@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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