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멸종한 거대 초식동물이 만들었다

조홍섭 2019. 0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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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뿔사슴 등이 통째로 삼켜 씨앗 퍼뜨리도록 수백만년 전 진화

ap1.jpg » 사과의 작물화 과정. 왼쪽은 오늘날 모든 사과의 기초가 된 4종의 야생사과이다. 이 야생사과를 낳은 것은 거대 초식동물이었다. 오른쪽은 이를 바탕으로 인류가 지난 2000년 동안 다양한 품종으로 개량한 사과를 나타낸다. 슈펭글러 (2019) ‘식물학 최전선’ 제공.

사과나무는 왜 ‘쓸데없이’ 그토록 크고 달콤한 열매를 매달까. 수천 년 동안 인류가 기울인 육종 노력의 결과라는 게 통설이었다. 사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형질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최근 새로운 증거를 토대로 파격적인 주장이 나온다. 사과나무는 사람의 육종에 앞서, 수백만년 전 지금은 멸종한 거대 초식동물이 열매를 삼켜 씨앗을 퍼뜨리도록 크고 맛좋은 열매를 진화시켰다는 것이다.

로버트 슈펭글러 독일 막스 플랑크 인류 역사학 연구소 박사는 28일 과학저널 ‘식물학 최전선’에 실린 리뷰논문에서 사과의 기원에 관한 최근 이론의 흐름을 짚으면서 이렇게 밝혔다.

그는 “대부분의 장미과 식물은 버찌와 산딸기 등에서 보듯이 작은 열매를 맺지만 사과와 배, 복숭아 등은 열매가 매우 크다”며 “작은 열매는 새가, 큰 열매는 대형 초식동물이 삼켜 씨앗을 퍼뜨리기에 좋다”고 이 연구소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그는 “화석과 유전자 증거로 볼 때 이들 대형 과일이 인간이 재배를 시작하기 수백만년 전 이미 진화했다”고 덧붙였다. 논문은 그 시기를 신생대 마이오세 말(약 600만년 전)이라고 밝혔다.

ap2.jpg » 마지막 빙하기 때 유라시아 전역에 분포했던 큰뿔사슴. 큰 열매의 야생사과를 퍼뜨렸을 것이다. 파벨 리하,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큰 열매가 달린 야생사과를 먹던 거대동물의 예로 그는 마지막 빙하기 말까지 산 큰뿔사슴과 야생말을 들었다. 역대 최대 사슴이었던 큰뿔사슴은 키가 2.1m인데 뿔은 폭 3.6m에 무게 40㎏에 이르렀으며 유라시아 전역에 분포했다.

그러나 거대 초식동물은 지난 빙하기가 끝나면서 대부분 멸종했다. 씨앗을 퍼뜨릴 동물이 사라지면서 지난 1만년 동안 큰 열매가 달리는 야생사과의 분포지는 위축됐다. “빙하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피난처에서 근근이 살아남았고 멀리 확산하지 못한 것은 그 증거”라고 그는 밝혔다.

ap3.jpg » 우즈베키스탄 수도 부하라의 노점에서 전통 품종인 작고 달콤한 노란 사과를 팔고 있다. 로버트 슈펭글러 제공.

사과를 되살린 것은 사람이었다. 슈펭글러 박사는 “열매 크기에 견줘 씨앗이 작은 사과는 작은 사슴, 곰 등 잡식동물을 통해 확산이 가능했다”면서 “그러나 거대동물을 이어받아 사과를 고대 교역로인 실크로드 전역에 퍼뜨린 주체는 사람이었다”고 밝혔다.

사과는 2000년도 더 전에 남부 유럽에서 재배했음을 보여주는 그림이 남아 있다. 또 고고학 유적은 1만년 이상 전에 유럽과 서아시아에서 야생사과를 채집했음을 보여준다.

또 유전자 연구를 보면, 현대 사과는 적어도 4종의 야생사과가 교잡된 결과인데 그 장소는 실크로드였다. 고대 교역로 곳곳에서 보관된 사과 씨앗과 묘목이 나오고, 그 요충인 카자흐스탄 톈산 산맥은 사과 유전 물질이 기원한 곳이기도 하다.

ap4.jpg » 톈산 산맥의 야생사과. 다 익어도 떨어지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 거대 초식동물을 위한 형질이다. 마틴 스티치 박사 제공.

사람들은 1000가지가 넘는 사과 품종을 만들어냈고 오늘날 경제적·문화적으로 가장 중요한 과일 중 하나가 됐다. 그러나 사과는 벼나 밀이 작물화한 것과 같은 경로를 거친 것은 아니라고 그는 주장했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사과는 기본적으로 가장 뛰어난 사과가 달리는 나무의 씨앗을 오랜 기간 선발과 증식을 통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오히려 “잡종화와 접붙이기를 통해 단기간에 또 우발적으로 형성”된 것이 오늘날의 사과라는 것이다.

그는 “사과와 같은 과수의 작물화는 곡물이나 콩의 작물화와 다르다”고 주장했다. 사과의 한 세대는 20년이어서 인류가 수천 년을 재배했다 하더라도 곡물처럼 2000∼3000세대에 이르지 않는다. 고고학 증거는 사과가 작물화한 지 100세대 미만임을 가리킨다. 인간의 재배로 진화를 이루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슈펭글러 박사는 “작물화 과정은 모든 식물에 동일하지 않다. 우리는 세대가 긴 나무의 작물화 과정을 아직 잘 모른다”고 말했다.

ap5.jpg » 톈산 산맥의 야생사과 낙과를 먹는 말. 과거에는 야생말이 야생사과를 먹고 씨앗을 퍼뜨렸을 것이다. 아르투르 스트로셔러 제공.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Spengler RN (2019) Origins of the Apple: The Role of Megafaunal Mutualism in the Domestication of Malus and Rosaceous Trees. 
Front. Plant Sci. 10:617. doi: 10.3389/fpls.2019.0061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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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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