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먹고 통통하게 살찌는 수수께끼의 벌레 발견

조홍섭 2019. 06. 25
조회수 8759 추천수 1

필리핀 개울 석회암에 구멍 뚫고 서식…10㎝ 길이, 배좀벌레조개 일종

 

t0.jpg » 필리핀 보홀 섬 아바탄 강에서 석회암에 구멍을 뚫고 그 속에서 암석을 먹으며 사는 동물이 새로운 속의 배좀벌레조개로 밝혀졌다. 왼쪽 끝이 조개껍데기가 축소돼 드릴의 날처럼 바뀐 모습이다. 마빈 알타미아, 루벤 쉽웨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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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벌레처럼 나무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 사는 독특한 조개를 배좀벌레조개라 한다. 목선을 비롯해 양식용 막대기나 해안구조물, 어구 등에 무수히 많은 구멍을 내는 주인공이다.

 

세계적으로 연간 수십억 달러의 손해를 끼치는 배좀벌레조개는 모두 바다에 살고 하나같이 나무를 갉아먹는다. 그런데 민물에서, 나무 대신 돌을 갉아먹는 배좀벌레조개가 발견됐다.

 

배좀벌레조개가 피해만 끼치는 것은 아니다. 나무의 단단한 섬유질을 분해하고 물고기나 다른 무척추동물이 살 ‘주택’을 제공해 주는 ‘생태계 기술자’ 노릇도 한다. 필리핀에서 처음 발견된 돌 먹는 배좀벌레조개도 강바닥의 석회암 암반에 구멍을 뚫을 뿐 건물이나 구조물의 석재를 갉아먹는 벌레는 아니다. 오히려 희귀하고 생태적 가치를 위해 보전이 필요한 생물이다.

 

t1.jpg » 새로운 속의 배좀벌레조개가 발견된 필리핀 아바탄 강 서식지. 강바닥에 구멍이 숭숭 뚫린 바위가 이 동물의 서식지이다. 마빈 알타미아, 루벤 쉽웨이 제공.  

 

루벤 쉽웨이 미국 노스이스턴대 생물학자(현 앰허스트대) 등 미국과 필리핀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영국 왕립학회보 생물학’ 최근호에 실린 논문을 통해 필리핀 아바탄 강에서 발견한 이 배좀벌레조개를 새로운 속 동물로 보고했다.

 

그는 “이들은 석회암 암반에 정교한 터널을 뚫어 결과적으로 강의 흐름을 바꾸어 놓기도 하고 다른 수생 생물에게 풍부한 환경을 제공한다”며 “이 강이 우리가 아는 한 이 생물의 유일한 서식지”라고 앰허스트대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바다에 사는 배좀벌레조개는 나무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 그 속에서 편안하게 섬유질을 갉아먹기 위해, 두 개의 패각으로 몸을 보호하는 조개의 전통적 몸 구조를 바꾸었다. 조개껍데기는 급격히 축소돼 몸 앞쪽 끄트머리에 배치돼, 섬유질을 갉아내는 드릴의 날처럼 쓴다.

 

t2.jpg » 연구자가 석회암을 망치로 깨어내 구멍을 뚫고 들어가 사는 배좀벌레조개를 채집하고 있다. 루벤 쉽웨이 제공.  

 

새로 발견된 조개도 기본적으로 같은 얼개를 지녔다. 조개껍데기는 드릴의 날이 됐지만 갉아내는 대상이 목재보다 단단한 돌이어선지 톱니의 크기가 더 크다. 쉽웨이는 “대개 배좀벌레조개는 손가락 크기에 비쩍 말랐지만, 돌을 먹는 조개는 통통하고 커서 아주 다르게 생겼다. 대체 어디서 필요한 영양분을 구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강바닥 여기저기엔 이 동물이 벌집처럼 구멍을 뚫어놓은 석회암이 놓여있다. 연구자가 해머로 단단한 석회암을 쪼개자 작은 터널 속에서 희고 통통한 벌레가 나온다. 연구자들은 10㎝ 길이의 조개를 확인했다.


t4.jpg » 바위를 갉는 드릴의 날로 쓰이는 조개의 축소된 껍데기 전자현미경 사진. 루벤 쉽웨이 외 (2019) ‘영국 왕립학회보 생물학’ 제공.

 

그렇다면 이 조개는 어떻게 돌을 갉아먹고 살 수 있을까. 바다에 사는 동료는 나뭇조각을 갉아 삼킨 뒤 특별한 주머니에 보관하고 그곳에 공생하는 세균이 분해한 영양분을 섭취한다.

 

연구자들이 주사전자현미경으로 확인한 결과 이 벌레의 위에서 암반과 같은 광물이 발견돼, 이 동물이 실제로 돌을 갉아먹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렇지만 돌가루는 닭의 모래주머니처럼 다른 먹이를 분쇄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 자체에 영양분은 없다.

 

연구자들은 돌과 함께 섭취하는 조류, 세균, 식물체 등이 영양원이 될 것으로 추정했다. 또 몸길이 만큼 긴 아가미와 그곳에서 사는 세균도 발견해 공생을 통한 먹이 섭취 가능성도 제시했다. 그러나 이 동물이 무얼 먹고 사는지는 수수께끼로 남았다.

명한 건 이 동물이 생태계를 풍부하게 한다는 점이다. 석회암에 뚫어놓은 구멍에서 게, 새우, 다슬기 등 다양한 무척추동물이 발견됐다. 이런 구멍은 하천의 침식에도 영향을 끼쳐 장기적으로 강의 유로를 바꿔놓을 수도 있다.

 

t3.jpg » 돌 먹는 배좀벌레조개로 인해 침식된 석회암 암반(a). 바위에 뚫은 구멍에 나와 있는 조개의 입수공과 출수공(b). 배좀벌레조개가 뚫어놓은 수많은 터널이 어지러운 석회암 암반. 침식을 통해 결국 하천 유로가 변경될 수도 있다(c). 루벤 쉽웨이 외 (2019) ‘영국 왕립학회보 생물학’ 제공. 

 

이번 발견은 고생물학에도 영향을 준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이제까지 화석이나 고고학 유적지에서 배좀벌레조개가 뚫어놓은 구멍들이 나오면 과거 바닷가 환경이었던 것으로 간주했지만, 이제부터는 담수환경도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돌을 먹는 배좀벌레조개가 서식하는 곳이 이 강 일부 지점이 전부여서 보전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돌을 갉아먹는 형질이 언젠가 생태계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유용할 가능성도 있다. 연구자들은 “이 동물은 석회암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 암석을 먹은 뒤 뱃속에 간직하다 미세한 돌 입자로 배출한다. 이런 전략은 우리가 아는 한 동물계에서 유일하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Shipway JR, Altamia MA, Rosenberg G, Concepcion GP, Haygood MG, Distel DL. 2019 A rock-Boring and rockingesting freshwater bivalve (shipworm) from the Philippines. Proc. R. Soc. B 286: 20190434. http://dx.doi.org/10.1098/rspb.2019.0434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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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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